동화작가 장수명

가을을 채 느끼기도 전에 날을 세운 겨울바람이 연일 창문을 들락거리며 옷깃을 세우게 만드는 요즘이다.

어쩌면 그 예쁜 가을이의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배웅하지도 못하게 그리도 앙칼진 바람이 연일 찾아드는지…….

형형색색으로 온 산이며 들녘을 곱게 물들이던 가을을 올해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보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란다.

무심히 지나치던 때도 있었을 터인데도 쉬이 보기 힘들다니까 더 없이 깊어진 그 모습이 눈에 밟히며 안타까운 것은 무슨 심리인지……. 집착하고 가지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 때문일까?
집착, 욕망 이런 단어의 끝을 따라가자니 문득 떠오른 한마디가 있다.

'아름다운 거리'

'아름다운 거리'우리네 세상살이가 어디 가지고 싶다고 모두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애닮은 마음을 '아름다운 거리'라고 명명해보면 어떨까?

조금은 덜 헛헛하고 덜 안타깝지 않은가?

한발자국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함께해서 부딪히며 얼굴 붉혀질 일도 차라리 조금 떨어져서 함께 한다면 언제나 애틋하고 새로움으로 또각또각 다가오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내게는 '아름다운 거리' 꼭 그 거리만큼을 유지하며 관계를 맺고 사는 분들이 있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만남에 오랜 공백기간이 있었다해도 얼굴을 대하면 언제 그렇게 오래도록 얼굴을 보지 못했었냐는 듯이 품었던 말이 술술 나오고 그간의 근황이 누가먼저랄 것도 없이 쏟아져 나와 서로의 말이 따리를 틀어 서로 엉겨버리는……, 사뭇 다정한 얼굴로 엷게 핀 미소를 담아 따뜻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다음을 기약하게 하는 그런 아름다운 거리의 사람들.

누가 먼저 그러자고 한 것도 아닌데, 꼭 그렇게 고만큼의 거리를 두고 만나고 헤어져야 세상을 탈 없이 살 수 있는 우리네의 삶이라는 것을 서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유지 되는 그런 관계를 '아름다운 거리'의 사람들이라고 나는 부르고 싶다. 내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아름다운 거리'

이렇게 쓰다보니 이 아름다운 거리의 사람이 꼭 타인이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허물없는 관계에서도 이런 거리를 가지면 참 좋겠다.

부모자식지간에 형제지간에 그리고 부부지간에 말이다. 너무나 가깝고 익숙해서 소홀해지고 편해진 내 가족들에게 적당한 거리 '아름다운 거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산을 오르기 전에 그 산을 온전히 볼 수 있었던 것처럼 한발자국 물러서서 내 가족들을 바라본다면 더 없이 살가운 바람이 새로이 휘리릭 찾아 올 것 같지 않은가!   /동화작가 장수명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