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주파(派)’] 16.공연예술가 이가영·민경언 부부

정신을 차려 보니 '무대'였다. 미친 듯 앞만 보고 달렸던 부부의 눈에 '제주'가 꽂혔다. '뭔가 해야 겠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본능을 내려놓고 '예술'에 대한 초심찾기에 나선 젊은 예술가들은 지붕과 조명이 있는 극장 대신 섬을 딛고 섰다. 걸음마 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여기 저기 문을 두드렸다. 예상대로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이 더 많았지만 제주 바람을 품고 예술로 뿜어내겠다는 계획에 하나 둘 동행이 생기기 시작했다. 꼬박 3년을 섬을 굴러다니며 배운 그대로 '예술놀이터'를 만드는 일이다.

▲ 공연예술가 이가영·민경언 부부
△한계를 기회로 삼다

30대 초반. "한창 때 무슨"이라는 만류를 뒤로 하고 제주행 비행기에 오른 부부가 있었다. 공연예술가인 아내 이가영씨(35)와 배우인 남편 민경언씨(36)다. 공연차 제주 무대를 밟았던 길에 약속이나 한 듯 눈이 맞았다. 그 다음은 속전속결 짐부터 쌌다. 벌써 3년전 일이다.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았고, 원하는 것은 다 찾을 수 있었던 서울과 달리 제주에서의 생활은 좌충우돌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회색 빌딩숲과는 전혀 다른 푸른 바다가 눈 앞에 보이는 서귀포에 터를 잡은 것 까지는 좋았지만 어느 것 하나 채워지는 것이 없었다.

이씨는 "공연을 기획해도 무대에 설 배우를 구할 수 없었고, 사소한 장치 하나 구하는데 진을 빼야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급한 마음에 서울에서 활동중인 지인들까지 섭외해야 했던 순간도 있었다.

힘든 만큼 진화도 있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발을 돌리는 대신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연극이나 뮤지컬 같이 잘 갖춰진 무대 예술 대신 다양한 시도로 '소통'의 길을 터 나가기로 했다. 제주에서 초연 한 '무쇠인간'과 '딴따라쇼' 어느 것 하나 장르를 특정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법환 문화거리 잠녀의 길 만들기 프로젝트' 는 무대 밖 외출의 일환이었다. 날씨 등 자연과 부대끼기는 했지만 하나의 주제를 매주 다른 주제로 연결하는 시도는 '다음'을 위한 긍정 에너지가 됐다.

△제주에서 받은 기운
'제주다움'의 배경

이들의 입에서 '제주다움'이란 말이 나온다. 남원읍 하례리를 중심으로 한 '빈집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 역시 제주다움의 일환이다.

제주에서 자주 듣는 말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라는 정의가 내려지지 않았고 젊은 도전 정신에 불이 당겨진 까닭도 있다.

'제주다운 작품'이라며 제주의 신화나 설화를 배경으로 한 공연 기획을 이야기 하고, 제주에 대한 고착화된 시선에 있어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보탠다.

이씨는 "제주에서 받는 기운으로  또는 제주에서 떠올린 영감으로 만들어진 소재나 작품에 '제주다움'이란 말을 붙이는 것이 맞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며 "서울에 있었다면 쉽사리 떠올리지 못했을 것들이지만 제주에서는 저절로 연상된다면 그것은 모두 제주의 것"이라고 말했다.

▲ 법환문화거리 잠녀의 길 만들기 프로젝트.
이들의 제주에서의 삶은 슬슬 정착기에 들어섰다.

'빈집 프로젝트'에서 부부는 마을 안팎의 사람들과 소통하기에 여념이 없다. 눈인사를 하고 마음을 튼 마을 어른들을 작업실로 초대해  부부가 꿈꾸는 '일상 속 예술과 가까워지기'를 실천하고 있다. 실천한다기 보다 배우고 있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서울에서와 달리 작업속도도 느리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도 크지 않지만 내주는 것 보다 받는 것이 더 많다. '예술'이라는 딱딱함을 벗고 만난 삶이 그대로 예술이 되는 기분좋은 경험이다. 그만큼 쌓인 시간이 주는 깊이감도 만족스럽다. 고혜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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