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정못은 마름이 대표 수생식물이며 북쪽에는 부들·세모고랭이·큰골군락이 있다.

◈곤물·구진물·알못·강정못·명이동물(한경면 저지리)

 한경면 저지리로 가는 길은 은빛 억새들의 향연으로 눈부시다.서부산업도로를 타고 동광검문소에서 다시 이시돌목장·한림읍 금악리를 거쳐 한경면 저지로로 이어지는 길 주변은 경사가 2∼3도에 불과한 완만한 언덕에서 억새의 무리가 흔들린다.

 특히 한라산을 배경삼아 크고 작은 오름이 얹혀있는 억새군락은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제격이다.

 제주시에서 한경면 저지리까지 국도 16호선인 중산간 도로를 꾸준하게 타지 않고 서부산업도로(국가지원 지방도 95호)와 지방도 1118호·11120호를 거쳐 돌아간 덕분에 취재팀은 은빛물결로 출렁이는 산 속의 바다를 만끽했다.

 한경면 저지리는 전형적인 중산간마을이다.한경면 관내 마을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있다.마을이름조차 ‘닥나무(楮木)가 많고 지대가 높다(旨)’고 해서 저지리다.

 특히 저지리 동쪽에 1㎞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마중오름은 설촌과 깊은 관계가 있다.남북으로 길게 뻗은 오름을 따라 곳곳에 생명수인 못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이 일대는 흔히 작지동네라고 부르고 있으며 멀리 한림읍 금악리와 안덕면 광평리·서광리의 드넓은 숲지대와 파노라마처럼 크고 작은 오름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을 한눈에 볼수 있다.한마디로 가슴이 탁 트이는 풍광이다.

 저지리는 예로부터 물이 귀한 마을이다.옛날 이 마을을 지나던 나그네가 물을 달라고 하자 물이 떨어져 대신 술을 줬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가뭄때면 멀리 한림읍 명월리 ‘문수물’까지 나가 물을 떠다 먹었다고 한다.

 강정못은 마중오름 남동쪽 해발 147m에 자리잡고 있다.못 면적은 550㎡가량 된다.못안에는 마름이 가득하고 북서쪽의 빌레에는 부들·세모고랭이·큰골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개구리와 송장헤엄치게도 눈에 띈다. 

 특히 못 입구에 서 있는 2그루의 노거수는 주변 풍광과 어우려져 한폭의 풍경화를 연상하게 한다.이 나무는 예덕나무와 팽나무로 쌍둥이처럼 서 있으며 그 밑에 정자가 마련돼 주민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또 못 앞에 도지사를 지낸 김인홍씨를 기린 공덕비가 있다.어떤 연유에서 세워진 것인지 알수 없었으나 이 공덕비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듯 균형을 위한 긴장감을 상실한 채 잡초속에 파묻히고 있다.

 강정못 맞은편 길 건너에는 구진물이 있다.못 크기는 60㎡가량되며 구진물(궂은 물)이란 못 이름에서 알수 있듯 주로 우마급수장으로 활용됐다.길 안내를 했던 저지리사무장 문화자씨(38)는 “물통은 용도에 따라 구분돼 구진물은 우마용으로,인근의 곤물은 식수용으로 활용됐다”고 거들었다.곤물은 ‘고은 물’을 의미한다.   

 저지리 중심에서 동쪽으로 1km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알못은 면적이 250m가량되며 못 정비사업이후 수량이 크게 줄어든 상태다.주민들은 예전에는 물이 많았는데 정비과정에서 못 바닥의 암반을 깨트렸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저지리의못은 대부분이 인공으로 만든 것이며 지형적으로 빗물이 잘 흘러들는 곳이며,또 이 물이 빠지지 않도록 바닥이 암박(빌레)로 돼 있는 게 특징이다.

 알못주변에는 만수국아재비와 여뀌·괭이밥·주름잎·쥐꼬리망초·애기가래·큰고랭이·방동사니 등이 서식한다.   

 명이동못은 이 동네에서 최초로 만든 인공 못이다.처음에는 식수로 사용했다.면적은 500㎡가량 된다.도로확장 공사 때문에 못이 절반가량 매립된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물풀의 왕은 수련이다.못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다.북쪽에는 세모고랭이와 개기장 군락이 눈에 띈다.

 또 명이동못에서 동남쪽으로 2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밧소랭이물’이 있다.주민들이 직접 정으로 돌을 쪼개 만든 물통이다.이 못을 만들기위해 대장간이 들어섰고 이곳에서 만든 정은 주민들에게 보급됐다.

 물을 확보하기 위한 고난의 흔적.주민들은 총동원됐다.마을 원로들은 그러나 안덕계곡의 물을 저지리까지 끌어들이기 위해 산을 뚫고 바위를 깨는 작업을 10년동안 했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취재=좌승훈·좌용철 기자·사진=김영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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