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훈 변호사

   
 
     
 
남의 이름으로 은행에 예금을 해 둔 사람이 이름을 빌려준 사람과 다툼이 벌어져서 더 이상 예금명의인의 이름으로 예금 청구를 하지 못하게 된 경우에 실제 예금주, 즉 돈을 출연한 사람은 은행에 대해 자신이 예금자라고 주장하면서 예금 청구를 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종전 판례의 입장은, 특별한 사정으로서 출연자와 금융기관 사이에 예금명의인이 아닌 출연자에게 예금반환채권을 귀속시키기로 하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약정이 있는 경우에는 출연자를 예금주로 봐야 한다고 해 비교적 폭넓게 출연자의 예금 청구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위와 같은 판례의 태도는 2009년에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크게 변경됐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예금계약을 체결하고 그 실명확인 사실이 예금계약서 등에 명확히 기재돼 있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그 예금계약서에 예금주로 기재된 예금명의자나 그를 대리한 행위자 및 금융기관의 의사는 예금명의자를 예금계약의 당사자로 보려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경험법칙에 합당하고, 예금계약의 당사자에 관한 법률관계를 명확히 할 수 있어 합리적이다.

따라서 본인인 예금명의자의 의사에 따라 예금명의자의 실명확인 절차가 이뤄지고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해 예금계약서를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예금명의자가 아닌 출연자 등을 예금계약의 당사자라고 볼 수 있으려면, 금융기관과 출연자 등과 사이에서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서면으로 이뤄진 예금명의자와의 예금계약을 부정해 예금명의자의 예금반환청구권을 배제하고 출연자 등과 예금계약을 체결해 출연자 등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돼야 한다.

이러한 의사의 합치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작성된 예금계약서 등의 증명력을 번복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명확한 증명력을 가진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 매우 엄격하게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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