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슈퍼태풍 '하이옌' 후폭풍]
타클로반 지역 죽음의 도시로 변해

▲ CNN 캡처. 사진=쿠키뉴스
죽음의 도시로 변한 타클로반에 가보니…
 
밤 8시가 넘으면 통행이 금지되지만 사람들은 물에 젖은 집안에 머물지 못하고 거리에 나와 잠을 청했다. 가로등 하나 없지만 달빛 비치는 거리가 전기도 물도 끊겨 칠흑같이 어두운 집안보다 차라리 더 밝았다.
 
"이곳이 타클로반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에요. 밤 10시가 넘어도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인데 지금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네요."
 
타클로반 중심가에서 빵집을 운영하던 알베르트 델 카스틸로(47)씨는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던 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해안가에 위치한 이곳에 사람 키보다 높은 파도가 몰려들어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그날부터 카스틸로씨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그는 굶주린 사람들이 빵집에 몰려왔을 때 순순히 가게 문을 열어주었다고 했다. "무엇이든 가져가라. 대신 사람이 다치지 않게 해 달라"고 당부했을 뿐이다. 골목 모퉁이에 있던 그의 빵집은 이제 문을 닫았다. 해변의 가장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유명 햄버거와 도너츠 가게는 태풍에 완전히 부서졌다.
 
최고급 호텔도 장작불을 피워 요리를 했다. 어차피 냉장고도 꺼져버린 상황이어서 보관하던 닭고기를 모두 구워 이재민에게 나눠줬다. 주민들은 부서진 차에 걸터앉아 달빛 아래에서 닭고기를 뜯고 있었다.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갑자기 어두운 거리 한쪽에서 들려왔다. 밤새 타클로반 곳곳에서 살인·약탈 등 사건이 이어졌다. 상점의 식량이 바닥나자 민가를 습격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타클로반 시내 골목골목으로 나눔과 약탈이 동시에 확산되고 있었다.
 
중심가 반대편의 바닷가 빈민촌은 더 처참한 모습이었다. 나무판자로 만든 집은 무너지고 날아가 쓰레기더미로 변했다. 부지런한 주민들이 망치를 들고 태풍에 사라져버린 지붕을 다시 만들고 있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무너진 집에서 부패하고 있는 시신 냄새가 진동했다.
 
판잣집 앞에서 장작불에 물을 데우고 있던 사만다 타이사마(61)씨는 "빗물을 받아 빨래도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있다"고 말했다. 무너진 집들 사이로 들어가려 하자 아이를 안고 있던 젊은 엄마가 "노! 노!"라며 한 손으로 목을 쓰윽 그었다. 동네 안으로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현장을 둘러본 한국기아대책의 서상록 기아봉사단원은 "식량을 가지고 와도 어떻게 나눠줘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타클로반 시청 주변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임시 천막 앞에는 인터넷으로 자신이 살아 있다는 얘기를 전하기 위해 수백명이 줄을 서 있었다.
 
세바스찬 로드 스탬파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아시아·태평양 조정관은 13일 "우리가 가진 차량은 모두 4대뿐이라 오가는 사람을 태워주기도 바쁘다"며 "구호단체도 알아서 자신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물품을 운반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랑이 이길 것인지, 생존본능이 이길 것인지. 타클로반은 운명의 갈림길에 선 것처럼 보였다. 타클로반(필리핀)=김지방 기자 <쿠키뉴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