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편집위원

보름이 지났다. 거리에서 교복을 입은 아이들만 봐도 울컥하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간이었다. 온 국민이 실종자들의 생환소식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기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수학여행길에 오른 고등학생 300여명 등 476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지난 16일 최초 구조된 174명을 제외하고 현재 우리 곁으로 살아돌아온 생존자는 단 한명도 없다. 사람들은 눈앞에서 300명이 넘는 생명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넋놓고 바라보고만 있었다는 사실에 죄스럽고 절망하고 분노한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를 두고 수많은 가정들을 해본다. 애초에 당국이 20년 된 중고 여객선의 증·개축을 못하게 해서 배가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일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물살이 센 맹골수도를 3등 항해사가 아닌 1~2등 항해사가 운항했다면. 선장이 그 시각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면. 수백명 승선명단이 전산화돼 있었다면. 화물도 적정량 실리고 제대로 묶여있었다면. 여기저기 손해볼 일이 두려워 궂은 날씨를 무릅쓰고 무리한 출항을 하지 않았다면. 출항을 했더라도 위기상황에 대비해 아이들에게 선상안전교육을 시켰다면 어땠을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선장과 선원들이 공용채널 16번으로 구조요청을 하고, 자신들만 살겠다고 탈출하지 않고 승객들에게도 퇴선명령을 내렸다면. 아니, 탈출을 하면서라도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방송만 내보내지 않았다면 하고 말이다. 그리고 사고 초기 구조현장에서 좀더 상황을 급박하게 받아들이고 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다면.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이 서로 소관 타령을 하지 않고 책임있는 자세로 구조에 나섰다면. 그리고 정부가 확고한 재난 매뉴얼을 갖춰 그에 따라 구조작업이 이뤄졌다면 적어도 이 정도의 참극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끝없이 쏟아내는 이런 가정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되묻고 화를 내게 되는 것은 모두 지킬 수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꼭 지켜져야만 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대형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이랬다면"하고 후회하고 반성해왔다. 그런데도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너무 너그러운 탓일까. 너무 쉽게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1993년 282명이 숨진 위도 서해훼리호 참사, 1995년 501명의 목숨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192명이 사망한 대구지하철 참사와 성수대교 붕괴 등 우리는 그동안 적지않은 대형사고들을 겪었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마치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예전으로 돌아가버리고 당시의 충격과 슬픔은 과거의 희미한 기억으로 남을 뿐이다. 무엇이 잘못됐던 것인지, 무엇을 고치고, 어떤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는지 사고 당시 쏟아져나오던 목소리들은 언제 그랬냐는듯 사그라들고 만다.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위해 우리가 해야하는 일들을 정부도, 정치권도, 국민들도 잊어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비극을 맞았다. 정부와 국회는 부랴부랴 세월호 참사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여객선 정원을 늘리기 위한 구조 변경 금지, 여객선 안전운항관리 업무 분리, 전산 발권 및 선박용 블랙박스 탑재를 의무화한다. 또 선박 입·출항 규정 통합과 항만 관제를 강화하고, 수학여행 등 단체활동에 나서는 학생들에 대한 안전대책 마련을 의무화하는 법안 등도 마련된다. 어느것 하나 새삼스러울 것 없는 대책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대책들이 수없이 많다한들 제대로 지켜지고 시행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이번엔 잊지말아야 하겠다. 과거를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과거의 잘못은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미래의 어느날 다시 똑같은 잘못으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기는 일이 없도록, 2014년 4월16일 우리들 눈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놓쳐버린 수많은 생명들을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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