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훈 변호사

서명문화가 발달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계약서나 각서 같은 문서는 대부분 이름 옆에 도장을 찍어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도장도 가지각색이어서 정식으로 신고된 인감도장 뿐만 아니라 막도장이라고 불리는 값싼 나무도장도 많이 쓰인다. 
 
계약 당사자들이 중요한 계약서를 작성하면서도 본인의 이름을 자필로 기명하지 않고 제목부터 시작해 성명까지 전부 인쇄한 뒤 끝에 달랑 도장만 날인하고 끝내는 사례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이러다 보니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문서에 적힌 작성명의인이 도장을 찍었느니 말았느니, 그 인영(도장을 찍은 형적)이 작성명의인의 것이니 아니니 등을 둘러싸고 자주 분쟁이 발생한다.
 
계약서에 작성명의인의 자필로 서명이 돼 있지 않고 도장만 찍혀 있는 경우 계약서를 소지한 사람이 계약서대로 이행하라는 소송을 제기해 온다면 그 청구를 받은 피고가 계약의 효력을 부인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이 경우 피고는 우선 그 인영이 자신의 도장에 의한 것인지부터 밝혀야 한다. 만일 자신의 인영이 아니라고 부인할 경우 그것이 피고의 인영이라는 사실을 원고가 입증할 책임이 있으나, 피고가 자신의 인영임을 시인하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생긴다.
 
문서에 날인된 작성명의인의 인영이 그의 도장에 의해 현출된 것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인영의 진정성립, 즉 날인행위가 작성명의인의 의사에 기한 것임이 사실상 추정되고 일단 인영의 진정성립이 추정되면 그 문서 전체가 진정하게 성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위와 같은 사실상 추정은 날인행위가 작성명의인 이외의 자에 의해 이뤄진 것임이 밝혀진 경우에는 깨어진다. 그러므로 문서제출자인 원고는 그 날인행위가 피고로부터 위임받은 정당한 권원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까지 입증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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