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편집위원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방황하는 칼날'은 잔혹하게 딸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극이다. 딸의 죽음이 10대 소년들의 범행임을 알게 된 아버지는 현행법상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직접 단죄에 나선다. 

딸을 잃은 아버지에서 살인자가 되는 주인공을 통해 소설은 성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미성년자들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가벼운 처벌만을 받고 풀려나는 일본의 소년법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은 역시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소년범죄의 고민을 안고있는 우리들에게도 국가가 법으로 자신들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아는 소년들이 죄에 무감각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무거운 질문과 고민을 던져주었다.

일본은 1922년 소년보호를 목적으로 소년법을 제정한다. 이후 여러차례 개정됐지만 소년보호 이념은 여전히 반영돼 왔다. 하지만 10대 청소년들에 의한 엽기적이고 잔혹한 범죄가 잇따르면서 소년법은 소년보호에서 엄벌주의로 바뀌게 된다. 2001년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면서 전면 개정, 소년범죄에 대한 최대 형량을 무기징역으로 늘리는가 하면 성인범죄와 같이 강력하게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2010년에는 소년범죄에 대해 처음으로 사형 선고가 내려지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도 소년법 논란이 뜨겁다. 지난주 SNS를 통해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이 알려지면서다. 아이들의 범죄는 너무도 끔찍했다. 피해 학생을 쇠파이프 등으로 무참히 때려 피투성이로 만들고 무릎을 꿇린 뒤 인증샷을 찍어 올리기까지 했다. 이 사건 이후 전국 곳곳에서 10대들에 의한 잔혹한 범죄들이 봇물 터지듯 튀어나왔다.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들의 범죄에 소년법 폐지와 개정 여론이 들끓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접수된 소년법 폐지 청원에는 일주일여만에 26만명이 넘게 서명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의 조사결과 국민 10명 중 9명이 소년법 개정이나 폐지를 원하고 있었다. 응답자의 64.8%가 소년법의 개정을, 25.2%는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국회에서도 의원들의 소년법 개정안 발의가 잇따르는데다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의 가해 학생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등 청소년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피해 학생과 그 가족들이 입은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국민들의 분노와 충격도 엄청나다. 현실에 맞지 않는 법에 대한 손질은 당연히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단지 법 하나를 고치거나 없앤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인지.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한다. 아이들을 보면 그 사회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TV 등 각종 미디어에서 폭력이 난무한다. 폭력을 되레 미화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경멸적인 언어로 모욕하고 공격하기도 한다. 동네 집값이 떨어진다고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고, 아파트 경비원 등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갑질도 비일비재하다. 아이들은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유명대학을 나와야 사회주류에 편승할 수 있는 구조와 관행 때문에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된다. 모두가 경쟁자인 상황에서 남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학교와 가정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은 무관심 속에 거리를 떠돈다. 

이런 사회를 아이들이 보고 배우고 자라고, 그 속에서 청소년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그러니 소년법 개정이나 폐지 못지않게 이처럼 황폐하고 잔인한 사회를 만든 어른들의 책임에 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사회시스템에 대한 점검도 필요해 보인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