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줄여서 유네스코(UNESCO)로 익숙한 이 국제기구의 역사는 7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11월 영국 런던에서 44개국 정부대표가 유네스코헌장을 채택, 이듬해 11월 최초의 국제연합전문기구로 발족했다.

유네스코는 문맹퇴치와 환경문제 연구, 인권문제 연구·분석, 가치있는 문화유적의 보존 및 보수 지원 등 이름 그대로 인류의 교육과 과학, 문화 분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유네스코 등재 유산이 많은 편이다. 세계유산 12건(문화 11·자연 1), 세계기록유산 13건,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19건, 생물권보전지역 5건, 세계지질공원 2건 등 51건에 달한다.

제주와 관련해서는 세계자연유산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세계지질공원(2010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2002년) 등 이른바 '유네스코 3관왕'을 비롯해 제주칠머리당영등굿(2009년)과 제주해녀문화(2016년)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여기에 제주4·3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지난달 31일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과 중국·일본·타이완 등 9개국이 공동으로 신청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의 심사 결과 보류(postpone)됐다.

'조선통신사 기록물'과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등 3건이 세계기록유산에 새로 이름을 올렸지만 국민적 시선이 집중된 위안부 기록물은 끝내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서 빛이 바랬다.

소녀상이 세워진 미국의 어느 한적한 공원 담당 공무원까지 쫓아 다니면서 철거 로비를 해온 일본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음은 뻔한 사실이다.

최근 유네스코 분담금 1위인 미국의 탈퇴 선언에 이어 분담금 2위인 일본마저 탈퇴할 수 있다는 현실에 마주한 유네스코가 딱하기는 하지만 이번 결정은 납득하기 어렵다.

피해 할머니들이 차마 말로 담지 못할 인권 유린을 용기를 내 발언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제 전쟁범죄 진상 규명을 이끌어낸 노고가 무색해졌다.

세계기록유산은 좋은 것은 이어가고, 잘못한 것은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인류의 '거울'로 의미가 있다. 막대한 사명이 금전의 힘 앞에 무릎 꿇는 모습에 입맛이 쓰다.

김봉철 편집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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