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논설위원

#어른들 잘못에 안타까운 죽음

어른들의 잘못으로 또 한명의 소중한 아이를 떠나보냈다. 지난달 제주지역의 특성화고 3학년 이민호군이 파견 현장실습 중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아직 채 피어보지도 못한 18살 꽃다운 나이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고(故) 이민호군의 명복을 빌며, 하루아침에 금쪽같은 자식을 잃은 민호군의 부모님 등 유족들께도 깊은 조의와 위로를 전한다.

민호군의 죽음은 어른들의 욕심과 무책임을 여실히 드러낸 우리의 자화상이다. 현장실습은 조기취업이라는 이름으로 묵인된 아이들의 노동력 '착취'에 다름없었다. 학생이 아니라 그저 값싼 임금에 다루기 쉬운 노동자에 불과한 실습현장에서 아이들의 안전이나 인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민호군의 사고는 또 예견된 어른들의 인재였다. 지난 7월부터 제주시 구좌읍의 한 음료제조 업체로 현장실습을 나간 민호군은 회사 직원의 퇴사로 실습 5일만에 사실상 맡고있는 업무의 책임자가 됐다. 작업현장에는 안전장치도 없었고 관리와 감독자도 없었다. 회사는 기계고장이 잦다는 민호군의 보고를 모른 채 하고, 고장난 기계를 수리하다 다친 민호군을 불러내 다시 일을 시켰다. 이런 환경에서 민호군은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하루 평균 14시간을 근무했다.    

그렇게 어른들의 업무를 18살 실습생에게 떠넘기더니 회사는 사고가 나자 그 책임마저 회피했다. 민호군이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회사는 민호군이 정지 스위치를 누르지 않고 기계를 고치러 갔다며 민호군에게 책임을 돌리려 한 것이다. 이같은 태도에 사회적 지탄이 쏟아지자 회사는 비로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고 발생 26일, 민호군이 숨진지 16일만인 지난 4일에야 업체 대표가 공개사과 했다. 

학교와 교육당국도 민호군의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학교와 교육청 모두 취업률에 우선순위를 두다보니 아이들을 기업에 보내는데만 집중하고 사후관리는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 민호군이 다니던 학교 역시 파견 기업에 두차례 지도를 나갔지만 현장실습 담당교사가 아닌 담임교사가 진행했다. 학교 수업까지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담임교사가 실습학생들에 대한 지도나 현장 점검을 제대로 하기란 사실상 어려웠다. 

교육청의 관리 감독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제주도교육청은 실습현장을 단 한차례도 방문하지 않은 채 업체와 전화통화만으로 형식적인 점검에 그쳤다. 당연히 아이들이 어떤 작업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는 민호군의 사고 이후 최근 도교육청이 실시한 도내 특성화고 등 10곳의 현장실습 점검결과에서도 사실로 드러났다. 초과·휴일근무 등 6명에 대한 근무조건 위반 사실이 확인됐고, 특히 한 학생은 실습 중 다리 인대가 파열되는 사고를 겪었지만 도교육청에 보고가 되지 않는 등 현장실습 관리에 구멍을 보였다.

#아이들 안전·인권 최우선

정부는 민호군의 죽음 이후 내년부터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전면 폐지하기로 했지만 '사후약방문' 지적은 피할 수 없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사고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6개월의 실습시간을 3개월로 줄이고 노동력 제공이 아닌 학습 중심으로 개편할 방침이다. 취업률 위주의 특성화고 평가와 예산 지원체계도 손보기로 했지만 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다.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아이들의 안전과 인권이 최우선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철저한 관리와 감시가 필요하다. 

민호군의 죽음 이후 아이들이 다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다. 아이들은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된 현장실습 곳곳이 세월호"라고 분노한다. "생애 첫 노동현장에서 죽고싶지 않다"는 아이들의 절규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더 이상 어른들의 욕심과 무책임으로 제2의 민호들이 나와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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