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제주인 김시종 첫 시집 「지평선」 60여년만에 한국어 완역판 출간

제주4·3 70주년이다. 질곡의 세월을 지나고 또 지나 제주에 봄이 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완결된 과거가 아닌 진행형인 기억이다.

냉전과 분단에 이어 4·3의 회오리에 휩쓸려 평생을 타국에서 지내야 했던 노 시인은 새로운 희망의 지평이 열리기를 바라며 반세기도 더 전에 이렇게 새겨놓았다.

"나는 겨우 스물여섯 해를 살았을 뿐이다./그런 내가 벙어리매미의 분노를 알게 되기까지/100년은 더 걸린 듯한 기분이 든다./앞으로 몇 년이 더 지나야/나는 이런 기분을 모두에게 알릴 수 있으려나."(김시종 시 '먼 날'중)

재일제주인을 넘어 동아시아 최고 시인 중 한명인 김시종 시인의 시집 「지평선」이 한국어 완역판으로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평선」은 재일조선인 김시종 시인이 1955년 일본어로 출간한 그의 첫 시집이다. 당시의 상황이 각인돼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어와 맞부딪쳐 대항한다는 김시종 시의 특징을 일찍부터 드러내는 시집이기도 하다.

시집에는 당시 한국전쟁과 4·3,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미군의 오키나와 점령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마주하며 냉전과 분단을 거부하고 반핵·평화라는 시점에서 바라본 저항의 양상이 드러난다.

특히 '먼 날'에서는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존재들의 상징인 '벙어리 매미'를 통해 4·3 때 학살당한 민중과, 그 현장을 목격했는데도 표현하기 곤란했던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때가 시인의 스물여섯 때이고 시인이 4·3과의 관계를 말하기 시작한 것은 70대인 2000년의 일이니 실로 60여년이 지나서야 매미가 울게 된 셈이다.

일본문학 연구자 곽형덕씨가 번역한 완역판은 크게 1부 '밤을 간절히 바라는 자의 노래'와 2부 '가로막힌 사랑 속에서'로 구성돼 있다. 김시종 시인의 근간을 이루는 시론('시는 현실 인식의 혁명')과 오세종 류큐대 교수의 해설도 수록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소명출판·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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