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close

제민일보

사이드바 열기
HOME 기획연재 걷기의 사유 사물과 풍경
기획/ 걷기의 사유 사물과 풍경 17. 바다의 문장을 읽다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입력 2018-11-26 (월) 18:00:18 | 승인 2018-11-26 (월) 18:02:21 | 최종수정 2018-11-26 (월) 20:47:54
신촌 돌코지 해변.

바닷바람을 맞으며 길을 걷는다. 썰물과 밀물의 시간차 사이에 숭어가 딸국질을 한다. 숭어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더니 마을 앞 포구에 망둥이 떼가 하늘빛에 물들어 나른한 오수를 즐기고 있다. 꼬리의 움직임이 사뭇 부드럽다. 맨발로 물에 들어서면 물고기들이 제 친구인줄 알고 달려들 듯 하다. 마치 멸치들이 원담 안 그물에 걸리듯이 말이다. 

어릴 적 새벽녘이면 "멜 들어수다."하고 외치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이곤 했다. 한 번도 멜이 든 바다로 나가본 적은 없지만 "메에에엘" 하고 길게 내뿜는 목소리의 힘만으로도 어느 정도 잡혔는지 알 수 있었다. 일시에 동네 사람들이 뛰쳐나가는 소리가 급박하게 들리고, 담 너머에 사는 성철이는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장화를 끌며 바다로 나가곤 했다. 그러다 잠이 들었는데, 바깥채 부엌에서 냄비 부딪치는 소리가 나면 그건 분명 영등막 삼춘임이 분명했다. 새벽녘에 받아온 멜을 한 됫박 나눠주러 온 것이다. 그렇게해서 끓여먹은 멜국, 성긴 배추 잎에 스며든 바다 내음은 일품 중에 일품이었다. 

최초의 인간이 흘렸던 한 방울 눈물 안에 모든 시대의 슬픔이 녹아 있듯 바다에는 소금이 녹아 있다. 뺨을 흘러내리는 최초의 한 방울이 머금고 있었던 가장 순결한 푸름, 바람이 불타는 누런 보리밭에서 낫질하는 사람 이마에서 떨어지는 땅방울 안에 바다가 있다. 낯선 도시 밤하늘 먼 별빛을 바라보는 눈에 고이는 눈물 안에 바다가 있다.

바다 안에는 어머니가 있다. 발가숭이 알몸으로 내가 최초의 물을 온몸으로 느꼈던 기억 이전의 바다. 내 목숨 최초의 열 달을 한 마리 물고기처럼 캄캄한 그 안에서 촉감으로 사귀었던 태초의 바다. 어머니 사랑처럼 한계가 없는 아, 눈부신 바다 (허만하, 「바다의 성분」 전문)

신촌리 서원 동환해장성.

환해장성을 따라 걷다가 허물어진 옛집 돌담에서 걸음이 멈췄다. 여긴가 저긴가 하다 돌담 사이에 박힌 소라껍질이 증표가 돼 이곳이 확실함을 알 수 있었다. 옛집은 바다와 2~3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잠마다 바다가 초가집을 덮길 것만 같았다. 꿈을 꾸면 내가 고래 배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꿈을 꿨다. 고래 배 속에서 나는 볏짚을 붙잡고 코로 빠져나오는데, 꼭 신발이 벗겨졌다. 아마도 초가집, 바다, 까만 고무신, 고동소리 등이 퍼즐 맞추듯 얽혀 꿈의 스토리를 구성했을 것이다. 집 앞에 바다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고 하니 누군가 "정말 멋지다"며 탄성을 내지른다. 모르는 소리다. 바다 가까이 산다는 건 일종의 공포였다. 어제든 바다가 집을 덮칠 수도 있다는. 

해안가를 배경으로 아저씨 한 분이 소형 라디오를 허리에 메고 길을 걷고 있다. 풍경과 엇박자를 내며 노래 소리를 메들리로 이어지고 있다. 남진의 '가슴 아프게'에 이어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이 방금 끝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곡,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월색만 고요해/폐허에 설은 회포를/말하여 주노라/아 외로운 저 나그네/홀로이 잠 못 이뤄/구슬픈 벌레소리에/말없이 눈물져요/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방초만 푸르러" 

하필이면, 이 노래가 흘러나오다니. 이런 걸 두고 동시성의 경험이라고 한다. 사라져버린 옛집에 와서 허물어진 '황성옛터' 노래를 듣고 있는 것이다. 

허물어져 반쯤 남은 돌담은 허연 소금기에 절어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문을 열면 오른편에 작은 고팡이 있었다. 고팡이 있던 자리에는 방가지똥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멀리서 보면 씀바귀인가 싶다. 혹시나 오래 전 흔적이라도 있을까 해서 마당이 있던 자리를 거닐어보는데, 풀들만 무성할 뿐 30년 전의 기억을 떠올릴만한 것은 없다. 바다바람이 치덕치덕 머리에 달라붙는다. 파도가 담을 넘어 구멍 난 창호지 사이로 흘러들어올 것 같은 공포를 다시 느낀다. 

산(山)턱 원두막은 비었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 심지에 아주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려 조을던 무너진 성(城)터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魂)들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크다란 산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城門)이 
한울빛 같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 
(백석, 「정주성」전문)

가끔은 구멍 난 창호지 사이로 오징어배 불빛이 스며들었다. 촘촘히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배들은 밤새도록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소리도 없이 불빛만 반짝거리는 고요가 오히려 태풍 전야를 떠올리게 했다. 어느 날은 오징어배를 타고 나간 마을 사람이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문이 들렸다. 마을 골목을 돌아 꽃상여가 나갈 때의 공포를 잊을 수가 없다. 바다는 내게 더 공포가 돼 다시는 읽고 싶지 않은 문장이 됐다. 그래서 내게 바다의 문장은 비문(悲文)이다.

하지만 어쩌랴. 바다바람에 삭은 돌담처럼 기억은 희미해지고, 공포마저도 김이 빠진 듯 조금은 유순한 귀를 가지게 됐다. 다행이다. "빨리 옵서게. 무시거 햄수과" 앞서 가던 이가 나의 걸음이 어느 시간대에 머물러 있음이 안타까운지 손사래를 치며 부른다. 허연 억새가 나대신 대답을 한다. "감수다"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webmaster@jemin.com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icon
"제민일보 네이버에서 본다"

도내 일간지 유일 뉴스스탠드 시행

My뉴스 설정방법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