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철 취재1팀 차장

지금으로부터 101년 전인 1919년 3월 1일은 한민족이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 만방에 알린 날이다.

민족대표 33인은 독립선언서를 통해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했고 지식인과 학생뿐만 아니라 노동자, 농민, 상공인 등 각계각층의 민중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독립 만세를 외쳤다. 3·1만세운동으로 당장의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했지만 나라 안팎에 민족의 독립 의지와 저력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독립운동을 체계적이면서 조직화하는 계기가 됐다. 

제주에서도 3·1운동에 앞서 일제의 탄압과 수탈에 저항한 항쟁과 독립운동이 이어졌다. 법정사 항일운동과 조천만세운동, 해녀항일운동, 제주의병 항쟁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법정사 항일운동은 3·1운동 이전 일제에 항거한 대규모 투쟁으로, 일제의 경제적 침탈에 맞선 제주도민의 국권회복운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3·1운동 한 해 전인 1918년 10월 6~7일 이틀간 700여명이 항일항쟁에 참여했다. 제주경찰서 중문주재소를 습격해 전소시키는 등 무장항일거사로 2명이 재판을 받기도 전에 옥사했고 징역형을 받은 31명 중 3명은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3·1운동 이후에는 조천을 중심으로 3월 21일 조천리 미밋동산에서 독립선언식부터 24일까지 4차에 걸쳐 만세운동이 확산됐다.

이처럼 제주에서 의미가 깊은 제101주년 3·1절이지만 올해 기념식은 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을 막기 위해 취소됐다. 

제주도는 기념식을 불가피하게 취소한 대신 민족자존과 국권회복의 기치를 드높였던 선열들의 위업을 기리고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드높이기 위해 3·1절 태극기 달기 운동을 전개했다.

의료인력이 극심하게 부족해진 대구시에서는 대구시 의사회장의 호소에 전국 각지의 의료인 250여명이 생업과 건강마저 뒤로하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기업과 개인은 방역물품과 생필품 지원에 나섰고, 경영이 어려워진 자영업자들을 위해 착한 임대인 운동도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다.

고난을 함께 극복하자는 마음은 그 시대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나'보다 '우리'를 위해 몸을 던진 진정한 영웅들이다. <김봉철 취재1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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