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컴퓨터와 씨름했더니 머리가 묵직하고 거북목 증후군도 있는 것 같아 콧바람을 쐬러 길을 나선다. 무릎이 아픈 핑계로 걷기를 게을리 한 것도 있고 조금은 강도 높은 걷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나마 얕다고 하는 마보기 오름을 오르기로 한다. 오며 가며 한 나절 정도 소요될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선택한 코스이기도 하다. 여느 때 같으면 동행할 사람을 찾았을 텐데, 조금은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에 혼자 걷기를 선택한다. 몰입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이다. 

다소 쌀쌀한 날씨지만 나처럼 봄바람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제법 있는지 저 멀리 앞서가는 서넛의 사람이 보인다. 삼나무 숲과 편백나무 숲, 억새밭을 지나니 정상이다. 정상에서는 산방산과 형제섬, 가파도, 마라도, 모슬봉, 한라산이 보인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오름 들도 숱하다. 날 좋은 날이면 아마도 애월읍과 한림읍, 한경면, 서귀포시 대정읍, 안덕면 등에 이르는 제주 절반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것 같다. 시쳇말로 가성비 높은 오름이다. 마보기, 혹시 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쌍바위를 일컫는 말인가 싶어 검색을 하니 '남쪽에서 복이 온다'는 뜻이란다. 아마 남풍에 곡식들이 무럭무럭 자라듯이 마보기 오름은 아랫마을 사람들에게는 먹을 것, 뗄 것 등이 많은 보고였지 않았을까 싶다. 상천리 마을은 화전민이 일군 마을이라고 알고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하듯이 허허벌판을 일구어 삶의 터전을 일구어온 화전민들에게는 그리 높지 않은 이 곳 오름이 더없이 고마운 터(地)였을 것이다. 

집독골, 늘악골, 용네미, 엄장골…손바닥처럼 쪼개져있던 화전들을 1년 열두 달 가꾸던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으로 익어가던 수수, 조, 밭벼, 콩, 기장, 고구마, 참깨, 들깨, 옥수수, 녹두, 감자-밭갈 때 한번, 씨앗 뿌릴 때 또 한 번, 초벌 김맬 때 한 번, 두 벌 김맬 때 또 한번, 세 벌 김맬 때 한 번, 추수 거둘 때 또 한 번, 화전 구석구석을 어루만졌던 아버지. 곡식들과 함께 익어갔던 아버지.

평생 리어카, 경운기 한 대 부려본 적이 없는 아버지. 작두를 대신한 카터기와 유신 때의 탈곡기(발기계)에 모터를 장착한 것이 새천년 농법의 전부였던 아버지. 하여튼 지게, 삼태기, 소쿠리, 종다리키는 폼 나게 만들었던 아버지. 언제나 짐이 가득한 지게를 지고 일소 두 마리를 앞세워서 풍경 좋게 농사를 지었던 아버지. 아버지란 일소를 앞세우고 부쩍부쩍 자라던 자식들. 끝까지 가난한 부모를 향해 투덜거렸던 화전민 자식들. 그래도 웃기만 하던 아버지. 군수도 면장도 이장조차 쳐주지 않았지만 진짜 화전민이었던 아버지. 밭에만 서면 달을 알고, 해를 알고, 비를 알고 바람을 알고, 흙의 마음을 알았던 아버지. 소를 부릴 힘이 없자, 호미로 밭을 엎으며 농사를 짓던 아버지. 세상에서 속죄할 단 한 사람이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자 하염없이 하늘만 몇 년 쳐다보던 아버지-, 또 습관적으로 화전에 몸을 담그던 아버지. 점점 기운을 잃어, 화전이 점점 산이 되어 갈 때, 불현 듯 흙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그렇게 자연스러웠던 아버지.
(서상영 시, 「어느 화전민의 일생」부분)

오름 아래에는 골프장이 있다. 드넓은 오름 줄기를 미끈하게 터를 깎고 길을 내어 골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시국에도 골프관광객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제주를 다녀간 골프 관광객이 코로나19 확진으로 밝혀져 접촉 직원들이 검사를 받고 격리되는 사태도 발생했다고 한다. 이 시국에 골프 치러 오는 관광객이 있다니, 개인의 취미 생활을 존중해야 한다지만 좀 개념 없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오름 아래 마을에 호텔이 들어서고 골프장이 생긴 걸 보며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2007) 한 장면이 떠오른다. 주인공 다니엘 플레인뷰(다니엘 데이 루이스 역)가 아들을 데리고 선데이 목장이 있는 곳으로 석유를 캐러 등장한 장면 말이다. 다니엘의 아들 'H·W'(딜런 프리지어 역)는 그가 광부 시절 사고로 죽은 동료의 아들이다. 다니엘은 아들을 거두어 키움으로써 동료에 대한 의리를 다하고 있다고 자족하는 캐릭터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석유 개발로 부자가 된 다니엘 플레인뷰의 욕망과 악마적 파멸을 다루고 있다. 광부 다니엘 플레인뷰는 우연한 기회에 선데이 가문의 황폐한 땅에 유전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선데이 목장에 나타난다. 메추리 사냥을 빙자해 목장에 나타난 그는 지진으로 벌어진 땅 틈에서 석유가 나온다는 것을 확인한다. 다니엘은 헐값에 땅을 사들이기로 한다. 그에게 정보를 준 폴 선데이의 쌍둥이 형제 일아이 선데이(폴 다노 역)는 매매를 거부하지만 석유가 개발되면 일아이의 교회에 5천달러를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석유를 개발하는 공사 중에 불의의 사고로 아들은 눈이 멀고 만다. 눈이 먼 아들을 고아원에 맡겨놓고 다니엘은 사업에 매진한다. 아들은 눈이 멀었고, 아버지 다니엘은 돈에 눈이 멀고 만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욕망과 그로 인한 감정의 격분은 인간성의 바닥을 보여주고 만다. 다니엘은 아들에게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경쟁자일 뿐이지"라는 말함으로써 이제 '내 눈에는 돈 밖에 없어'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돈에 눈이 먼 것은 다니엘만이 아니라 그에게 이부동생이라며 속이고 접근한 헨리(케빈 오코너 역), 마을의 종교 지도자인 일라이 선데이(폴 다노)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모두 다니엘에게 죽임을 당한다. 제목처럼 자본의 노예가 된 인간의 마을은 석유개발로 온통 피로 물들이게 된다. 

다시 원래의 풍경으로 돌아와 오름 아래를 내려다본다. 오름과 나무, 풀과 꽃,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을 배경으로 드넓게 펼쳐진 골프장은 오히려 사족처럼 보인다.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생명들이 자라는 숨골이 골프장으로 막히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숨통도 막히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영화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돈에 눈이 멀면 가족도, 우정도, 양심도 악마로 돌변한다는 것을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실을 보는 눈이 어두울 때 가끔은 영화를 보면 현실을 실재에 가깝게 직면하게 된다. 객관적 거리를 두고 직면하게 하는 것. 그것이 예술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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