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새해맞이가 낯설다. 포근한 날씨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다들 어렵다는데 추운 날씨가 더해졌다면 새해를 맞는 아침이 더욱 힘겨웠으리라. 검은 토끼의 해라니, 평화와 풍요, 지혜의 나날들을 기대해본다. 하얀토끼는 길러 봤어도 검은 토끼는 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나에게 반려동물은 개나 고양이보다는 토끼였다. 들에서 풀을 뜯어다 하얀 토끼에게 먹이면 오물거리는 입놀림이 귀여워 한참을 쳐다봤다. 그러던 토끼가 한 해에 한 번씩 사라져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주범이 아버지였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솔직히 검은 토끼보다 익숙한 것은 검은 고양이이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의 소설로 처음 검은 고양이를 만나서인지 검은 고양이를 떠올리면 으스스하다. 마녀사냥에 대한 광신이 유럽을 휩쓸었을 때 고양이들은 마녀의 하수인으로 인식돼 여성들과 함께 화형에 처해지곤 했다. 수 세기 동안 고양이 씨가 말려졌다. 하지만 루이 8세의 '고양이 불태우기 금지'로 고양이 수난사는 일단락됐다. 그 죄책감에서인지 요즘 고양이는 반려동물로 각광 받는 존재가 됐다. 

창문 너머로 고양이가 자주 드나들었다. 책을 보거나 자판을 치고 있는 나를 한참 쳐다보다 어슬렁어슬렁 다른 곳으로 이동하곤 했다. 가끔씩 들리던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지자 은근히 걱정됐다. 그러던 차에 우르르 새끼고양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기염을 토했다. 생명 있는 것들의 위대함은 변화와 생성에 있다. 잎사귀가 누렇게 변해가고, 무거움을 다 토해버리고 나서 피어나는 꽃잎, 꽃잎, 꽃잎. 여름 지나면서 시클라멘이 서서히 시들어가더니 다시 붉은 꽃잎이 벙글어지고 있다. 겨울에 피어나는 꽃, 시클라멘. 언젠가 고양이의 눈빛은 시클라멘 꽃잎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고양이의 눈이 커지면서 시클라멘 꽃잎도 함께 벙글었다. 야오오옹~하는 소리에 꽃도 이에오옹하고 화답한 것이다. 눈빛만으로도 교신할 수 있는 신의 소통이란 게 그런 것이다.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입안의 비린내를 헹궈내고
달이 솟아오르는 창가
그의 옆에 앉는다

이미 궁기는 감춰두었건만
손을 핥고
연신 등을 부벼대는
이 마음의 비린내를 어쩐다?

나는 처마 끝 달의 찬장을 열고
맑게 씻은
접시 하나 꺼낸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여기 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
 -송찬호 시, 「고양이가 돌아온 저녁」 전문

"처마 끝 달의 찬장을 열고 맑게 씻은 접시 하나" 내어놓고 고양이를 불러들이는 저녁이 오늘이었으면 좋겠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변변찮은 저녁일 텐데, 빈 접시에 내려온 달이 나와 고양이의 손등을 핥아줄 것만 같다. 모두가 가난한 시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로의 손등을 핥아주는 따스함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 '휘파람의 노래'에서 시밸처럼 말이다. 

터키 산악지대의 외딴 마을에 살고 있는 시벨(담라 쇤메즈 역)은 어렸을 때 열병을 앓아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휘파람 소리로 소통한다. 언어장애는 이웃들에게는 부정을 뜻한다. 결혼을 앞둔 친구는 그녀가 옆에 오는 것을 꺼린다. 그렇게 소외당한 그녀가 자존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늑대사냥이다.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늑대를 사냥해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숲에서 도망 다니던 부상병을 만난다. 부상병을 치료하면서 남자에 대한 호기심과 연민의 감정이 생겼다. 그가 거처하는 오두막에 날마다 들렀고, 둘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마을에 퍼진다. 그 일로 인해 동생의 결혼마저 파혼당하게 된다. 급기야 시벨은 마을에서 마녀가 되고 만 것이다.  

혐오의 시선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는 거듭되는 마녀사냥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잔 다르크(1412~1432)가 그렇고, 엘자 플라이나허(1513~1583)가 그렇다. 나혜석(1896~1948)은 또 어떻고. 재능있고, 남다른 호기심과 감수성을 지닌 여성들이 용기를 낸 덕에 화형당하거나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글과 그림으로 시대의 강물을 따라 흘러 우리에 전해지고 있다. 몸은 불에 타 죽었으나 목소리는 영원히 살아남은 것이다. 새해에는 타인의 목소리를 함부로 짓밟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검은 토끼가 상징하는 평화와 풍요, 지혜의 미덕이 온누리에 퍼지길 기대한다. 살얼음 위에 발을 디딘 것 같은 공포가 전반적으로 만연해지고 있다. 조금의 자극에도 살얼음판이 깨질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심호흡을 깊고 느리게 해야 할 것이다. 호이~호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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