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이다. 절기상으로는 봄의 시작이다. 벚꽃이 예년에 비해 조금 일찍 만개한다는 소식이 있다. 아직 추위가 남아 있을 것 같은데 잦은 비날씨로 예측을 벗어나고 있다. 아무래도 불안하다. 그러나저러나 시간은 흐르고 있고, 다들 봄이라며 새롭게 마음 단장을 하고 있다. 뭔가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기분인 것이다. 

산에 나무는 눈발을 발에 묻히고 서 있다. 계곡물에도 살얼음이 끼었다. 무언가를 틔우기엔 조심스러운 날씨다. 하지만 인근 야산에서 냉이를 캐왔다는 이웃이 있는 걸 보면 온갖 생명들은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제 할 일을 한다는 것이 소중하게 와 닿는 계절이다. 

어떤 이들은 삶이 너무 무겁다고 고민하고, 어떤 이들은 가볍다고 서러워한다. 같은 분량의 햇살이나 빗방울이 한 사람에게는 코끼리처럼 힘들고, 다른 이에게는 홀씨처럼 가볍다. 무겁거나 가볍거나 무게를 느끼는 건 다행이다. 그건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무게에 무심하다면 그건 읽혀지지 않은 채 낡아 먼지 속에 갇힌 책뚜껑만큼 슬픈 일.

사랑하는 일은 얼마나 고단한가. 견디고 싶은 멀미처럼, 우리는 창을 열고 먼 산을 바라본다. 그래서 사랑은 바라보기다. 희망도 그러하다. 그 잴 수 없는 무게를 우리는 매일 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외롭기만 하다. 그저 외로우면서도 맑은 꽃 한 송이 피워 본다.

"살아 있는 무게에 무심하다면 그건 읽혀지지 않은 채 낡아 먼지 속에 갇힌 책뚜껑만큼 슬픈일"이라는 구절이 자꾸 맴돌았는지 헌책방에서 신동엽, 최승호의 시집과 신경림의 『민요기행』 두 권을 사고 와서 밤새 뒤척였다. 기행문에는 '술수다'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많다. 또한 '술수다'라고 하기에는 꽤 진지하고 현실적인 아픔도 많다. 예를 들면, "이곳도 농업의 기계화 바람은 예외가 아니어서 70퍼센트 이상이 기계농업이다. 농약의 피해도 엄청나서, 작년까지만 해도 그가 택시로 실어나른 농약 중독자가 4∼5명이 되는데, 농약 살포 기계와 기술이 나아져서 올해에는 훨씬 줄었다 한다. 박태산 기사는 이 고장도 관광지로 개발되기를 희망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또 서울사람들이 몰려들어 짓밟을 일을 걱정하기도 했다."와 같은 내용들이다. 실명이 자주 언급되고, 사람 냄새 풍기는 지역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딱히 누군가의 편이 아니라는 것이 오히려 편하게 읽히며 솔직하게 와닿는다. 이런 문학이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저기서 무를 갖다 먹으라고 연락이 온다. 무값 폭락으로 땅을 갈아엎어야 하는 처지가 되면서 무 나눔이 부쩍 많아졌다. 얻어 먹는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농민의 입장에선 죽을 맛이다. "대개 물량이 늘어야 시세가 하락하는데, 올해는 생산량이 줄었음에도 가격이 내려가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한철 농사를 버려야 한다는 것은 살을 에는 아픔일 것이다. 여기저기서 한숨이 깊다. 소비부진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그것만이 원인이랴. '주요 채소류 생산정보 시스템'에 의존하기보다는 '최저가격보장제' 등이 현실화 돼야 할 것이다. 또한 잠재적으로 기후위기는 지구 전체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는 농민의 삶에도 직격탄을 예고하고 있다. 

이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시대에 당장 필요한 게 있다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우선, 욕망을 줄이라는 말이 최선의 지혜처럼 들린다. 무언가를 소유하려고 하기보다는 있는 것을 잘 활용하며 사는 삶이 지금으로선 최선이라는 조언이다. 일부 맞는 말이라 여겨지면서도 욕망에 최적화된 삶에 익숙해져버린 사람으로선 비현실적인 말로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모처럼 희망을 얘기하는 영화 상영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시카모토 준지 감독의 영화 '오키쿠와 세계'라는 영화다. '오키쿠와 세계'는 일본 최고 권위 영화전문지 키네마준보 선정 2023년 일본 영화 1위로 꼽혔다고 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19세기 에도 시대,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딸 '오키쿠'(쿠로키 하루 역)와 인분을 사고파는 분뇨업자 '야스케'(이카메츠 소스케 역)와 '츄지'(칸이치로 역)의 사랑이야기다. 사랑이야기는 그렇다 치고 '똥'이야기는 정말 흥미롭다. 시카모토 준지 감독은 말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가 어수선하고 고통스러워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세계'라는 단어에 주목할 수 있었다. '내일 세계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고 싶다.'는 심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국에는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똥'이 있다. 가장 낮고 더러운 곳에서 제 할 일을 하는 민들레꽃을 피워내는 똥의 서사다. 같은 차원에서 얘기할 바는 아니지만 '똥'으로 상징되는 가장 낮고 더러운 존재들의 삶이 어떻게 피어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중요한 화두다. 생태와 순환의 세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되어야 이 세계는 그나마 안전하게 흘러갈 것 같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자신이 싼 똥을 자주 본다는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오키쿠와 세계' 제작진도 "소품 담당이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매일 자신의 배설물을 들여다보고 연구했다"고 한다. 내가 먹은 음식은 똥으로 나오고, 그 똥에는 나의 삶이, 이 세계가 담겨 있다는 것은 진실이다. 그만큼 책임감 있는 삶이 중요하다는 말인데, 그 책임성을 다하기엔 이 세계가 많이 병들었다는 것이 문제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치는 노인과 변통(便桶)의
다정함을 그 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 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 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시, 「그날」 부분)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말처럼 무서운 말은 없다. "살아 있는 무게에 무심하다면 그건 읽혀지지 않은 채 낡아 먼지 속에 갇힌 책뚜껑만큼 슬픈일"과 같은 맥락이다. 삼월의 시작 즈음에, 내 삶과 이 세계에 무심하지 않으려면 찬물에 세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춥다는 말이 입에 붙은 나 자신을 채찍하며, 찬물에도 몸서리치는, 살아있는 감각을 발견하고 싶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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