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귀꽃이 피면 봄이다. 입 모양이 노루 귀를 닮아 노루귀라 한다는데, 암만 봐도 노루 귀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참에 노루의 귀를 확인하러 수목원이나 관음사 뒤편으로 가봐야 할까 보다. 노루귀 꽃말은 '인내', '신뢰' '믿음'이라고 한다. 꽃말까지 찾아볼 정도니 어디라도 기대고 싶은 불안이 있나 보다. 

우연히 듣게 된 노랫말 가사가 내 카톡사진에 담긴 사진들과 그것들이 지닌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당신의 사진은 왜 꽃인가요/예쁜 꽃인 건가요/젊은날 꽃다운 날이 문득 그리운가요"(손태진 노래, '당신의 카톡사진') 내가 찍은 꽃 사진은 별로 없지만 남들이 보내준 카톡 사진은 대부분 꽃이거나 바다거나 산이다. 왜 꽃이며, 바다며, 산일까? 그만큼 자연에 대한 사랑이 깊다는 걸까? 아니면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일까?

연초록 풀빛 번지는 산등성에 흰 구름 올려다보는 노루의 천진난만
그건 가장 투명한 생명과 자유의 상징 
노루의 머루 알 같은 눈망울 한번 들여다본 사람은 누구나 호수 같은 마음 알고 있지
가장 행복한 꽃 이름 
노루귀 그건 한번 피어 백년 가고 
꽃에 새겨 천년을 넘는 것 
동물과 식물 양쪽을 동시에 석권한 것
노루귀는 최고의 순수로 
앞만 보고 사는 사람 절대 볼 수 없지 
작은 키로 바닥에 바짝 붙어 누구나 무릎 꿇고 두 손 땅 짚어 머리 조아려야 보이는 꽃

하얀 털 뒤집어쓴 꽃대 나오고 꽃 피면 그 꽃 질 무렵에 잎 돋는다 
노루귀의 꽃말 인내와 신뢰 믿음이 나오는 지점 
그 귀로도 이 세상에 더 들을 소리 있는지 
봄이면 산과 들에 귀를 쫑긋 쫑긋 세운다 
그 노루귀 내 안에도 있다
(김완하 시, '노루귀' 전문)

"앞만 보고 사는 사람 절대 볼 수 없지", 이 시구만으로도 나는 아주 작아지고 만다. 노루기는 "무릎 꿇고 두 손 땅 짚어 머리 조아려야 보이는 꽃"이란다. 어디 꽃만 그러겠는가. 세상살이가 무릎 꿇어봐야 보이고,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세상도, 타인도, 나도 앞만 보며 달리는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대단한 물욕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닥친 현실에 과몰입한 결과일 수 있다.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느라 한 시기를 홀라당 다 태워버린 것이다. 젊은 날도, 풋풋한 감성도, 정의로운 열망마저도 재가 돼버린 것 같아 서글퍼진다. 그러나 어쩌랴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의 마음이 되면 될 것 아닌가. 

영화 '패터슨'은 일상에서의 아주 작은 발견 하나가 얼마나 풍요로운 삶은 가능하게 하는지를 보여준다. 주인공 패터슨(아담 드라이버 역)은 버스운전기사다. 매일 같은 코스를 반복하며 운전한다. 그의 일상은 퇴근하면 반려견을 데리고 동네 산책을 한다거나 동네 주점에서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전부다. 어쩌면 무료한 일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에게는 비밀노트가 있다. 매일 발견하는 일상의 시작노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날은 반려견이 그 시작노트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만다. 모든 걸 잃어버렸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우연히 공원에서 만난 일본인이 이런 말을 건넨다. "때론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라고. 

허망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때론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건 맞는 말 같다. 써 놓은 시가 다 사라지고 말았다 해도 다시 쓰면 되는 거니까. 시라는 게 그때 그 시간의 감성, 감각이 담겨진 것이기에 굳이 그거여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지금의 시를 쓰면 되는 거다. 하지만 사람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가지고 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을 잃어버리면 괜스레 애석하다. 그러고 보면 애석하다는 말 속엔 밥에 섞인 모래알 같은 감각이 느껴진다. 잘 보았으면 그런 일도 없었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봄의 첫날/혹은 겨울의 마지막/나의 다리는/계단을 뛰어올라/문밖으로 달리고/나의 상반신은/여기서 시를 쓰네 (론 패짓, '시' 전문) 

비로소 '봄'이라 말하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날이다. 햇살이 좋다. 잠시 틈을 내 산책을 해도 좋겠다. 등 뒤로 간지럽게 쏟아지는 햇살에 기운 얻고 일상의 아주 작은 발견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어디선가 '벅찬 사랑'이 수줍게 다가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은 혼탁하지만 내 마음은 새 길을 열 수 있다. 산과 들에, 세상에 귀를 열 수 있는 노루귀는 누구나의 가슴에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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