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정말 잊지 못하는 15살의 소녀환자가 있다.

정기적으로 치과를 방문하던 환자인데, 볼 때마다 늘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워하는 환자였다. 스페인 계통으로 대체적인 외모는, 손은 안쪽으로 휘어지고 손목 부분에서부터 손가락까지 가늘어져 어떤 물건을 잡기가 무척 어렵다. 발은 뒤쪽으로 휘어지고, 걷는 것도 불가능해 기어다니면서 이동하는 것이 고작이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 벌써 시력은 원시가 와서 커다란 돋보기를 껴야 겨우 보인다는 것이 엄마의 말이다.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너무나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가슴이 내려앉고 한동안 말문이 막히고 너무 가련하여 볼 수가 없었다.

집에서 물건을 집으려고 허리를 굽히는 순간 휠체어에서 얼굴부터 땅바닥에 쾅 하고 앞으로 넘어져 윗 입술이 찢어지고 앞니 한 개는 통째로 빠져 나왔고, 나머지 3개의 치아는 반쪽씩 부러지고, 치아를 받쳐주는 뼈가 몹시 상한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은 팔과 손이 먼저 닿게 되어 잘 안 다치는 것이 상례인데 이 아이는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있는 기능이 없어 이 같이 큰 부상을 입게됐다.

더욱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그렇게 피범벅이 됐는데도, 이 아이는 아파하거나 울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고 돋보기 너머로 껌벅거리는 눈망울로 나를 응시했다.

가슴이 아림과 동시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죄도 없는 아이에게 더 큰 벌을 내리고, 손 발이 멀쩡하고 정신이 쾌청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부조리엔 상을 주는 엉뚱한 세계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이것도 잠시, 나는 현실속에서 아이의 상태를 진단하고 있었다. 인간의 한계, 나의 좁은 시야에 원통함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아이의 치료를 위해 고무 장갑을 끼고 말았다.

그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차후의 현재와 같은 삶을 살지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고통이 없는 실질적 치유, 그리고 무형의 치료는 두 손을 합장하고 저 높은 곳을 향하는 것이라는 점, 이런 사실이 나를 더욱 왜소하게 만들어버렸다.

진흙탕에서 기어다니는 지렁이가 오물을 삼켜 맑고 고운 황토 흙으로 토해내듯이, 아이의 장애와 고통과 하찮은 나의 가슴앓이를 한데 묶어 집어 삼켜달라고 보잘것없는 지렁이에게 부탁하고 싶다.

<안창택·치과의사·제민일보의료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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