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 위한 제주의 길을 말한다]

발길에 파괴된 자연, 회복 어려워
휴식년제·환경총량규제 도입 필요

"자고나면 새 길이 만들어졌다"고 할 만큼 '길 관광'이 뜨고 있다. 대형 관광시설을 구경하며 먹고 사진찍는 식의 소비적 관광에 지친 이들은 '길을 걷는다'는 단순하지만 새로운 여행 방식에 열광하고 있다. 입소문을 타고 전국을 강타하며 여행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기도 했다. 그러나 열풍 뒤에는 환경파괴와 지역주민 소외 같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길 관광이 중흥기를 맞은 지금 뒤를 돌아보고 관광객과 지역주민, 그리고 제주의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본다.

△신음하는 제주 자연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길 관광객들로 인해 제주에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들은 대부분 숨겨 왔던 속살까지 점령당했다.

송악산 붕괴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 보존가치가 높은 정상부까지 올레꾼 등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식생이 파괴되고 토사가 흘러내려 심각한 문제점으로 여러 차례 지적돼왔지만, 여전히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관광객들은 식생이 회복될 때까지 출입을 삼가달라는 팻말에도 개의치 않고 올라가 정상부는 현재 몸살을 앓고 있다.

개장한지 두 달도 채 안된 한라산 둘레길도 늘어나는 관광객으로 인해 서서히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길 전체가 삼나무 잎으로 덮여 푹신푹신 했던 것이 길이 난 후 급속도로 사라져 비만 오면 진흙탕이 되고 있다. 길가의 나무들은 나뭇잎 옷을 빼앗기고 뿌리까지 드러냈고, 주변에 살던 동물들은 사람 소리에 놀라 살던 곳을 떠난다.

생태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서둘러 개통된 탓이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이영웅 사무국장은 "둘레길을 만들기 전에 서식하는 동식물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서 이들에 대한 보호대책을 먼저 마련하는 것이 순서"라며 "행정이 주먹구구식으로 개통에만 급급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 길 내는 것만 능사는 아니

길 관광의 특성은 자유도가 높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관리·통제하기도 어렵다는 뜻이 된다.

여느 관광시설이라면 훼손될 경우 출입구를 막아버리면 그만이지만 길에는 그런 것이 없다.

송악산의 경우 훼손이 심각해지자 올레코스 구간을 일부 변경해 분화구 지대를 우회하도록 유도했지만 한번 만들어진 길에 대한 관성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았다.

처음 길을 설계할 때부터 신중히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무조건 관광객을 많이 유치해야한다는 인식도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정대연 제주대 교수가 "환경용량을 고려하지 않은 관광객 1200만명 유치 목표는 적정용량인 900만명 수준으로 조정돼야한다"고 주장하는 등 자연이 스스로 처리할 수 있도록 여유를 줘야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곶자왈사람들의 김성훈 활동가는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쉬우나 다시 회복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며 "한라산·거문오름 등에 적용하고 있는 휴식년제를 길 관광지 중 훼손이 심한 일부만에라도 적용해야한다"고 말한다.

△ 지역은 여전히 '들러리'

최근 일부 길 이용객들의 몰지각한 행태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농민들이 애써 가꿔놓은 감귤과 감자 당근 등 농작물을 훔쳐갈 뿐만 아니라 들켰을 때도 인심 야박하다며 되레 당당한 모습을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농민들은 "한 명이 하나씩만 가져가도 이게 쌓이면피해가 막심하다"고 호소한다.


길 위의 쉼터는 쓰레기장이 됐고, 숲길에서는 종종 막걸리판이 벌어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마을 주민 입장에서는 길이 달갑지만은 않다. 개인공간인 집마당까지 함부로 들어오는 데다, 힘든 농사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관광객들이 지나가면 위화감이 들 때도 있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경제적인 이득이 있을거라고 자신들의 공간을 내줬다가 오히려 뒤치다꺼리만 하는 불편한 입장에 놓이게 된데 따른 불만의 소리도나오고 있다.


△ 모두가 만족할 대안 찾아야


길을 낼 때 생태적으로 버틸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자연이 스스로를 치유하지 못한 채 우리의 발길에 훼손된다면 후손들은 돌이킬 수 없는 댓가를 받는다는 점을 되새기며, 경제적 이익에 함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습지나 오름, 곶자왈 등 생태적으로 민감한 곳에 대해서는 자연휴식년제를 도입하거나 탐방객수를 제한하는 등 적극적인 환경총량규제가 필요하다.


이용객들도 '길'에서 개인의 자유만 내세우지 말고, 누구 하나가 아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길을 걷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면, 일부러 불편을 감수하며 걷는 것은 불편 을 통해 만족감을
찾기 때문일 것이다. 만족감은 혼자가 아닌, 모두와 함께 할 때 더욱 커진다.

지역 역시도 '길'에 공감한다면, 끌려가지 않고 주도적 입장에서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확보해야 한
다.


글·사진=김봉철 기자 bckim@jemin.com

 
▲ 고제량 제주생태관광 대표
“자연·사람 모두 상처받지 않길”
●인터뷰/고제량 제주생태관광 대표

"찾아가는 지역주민을 배려하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연이 훼손되거나 무리가 가는 일을 하지 않도록 룰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해 12월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은 ㈜제주생태관광의 고제량 대표(한국생태관광협회 부회장)는 "여행은 만남을 통해 관계를 맺고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라며 "여행객들이 지역 및 환경과 어떻게 어울릴 것인가를 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연해설사 출신인 고 대표는 "기존의 관광지 개발로 인해 환경이 대규모로 파괴되고, 또 그렇게 만들어진 관광지에서 벌어들인 수입이 외부인 위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고민하다 생각해낸 것이 생태관광"이라고 말했다.

고 대표는 "지역주민을 배려하고 환경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생태관광의 핵심"이라며 "특히 현재의 길 관광지는 전혀 규제가 없어 생태적 민감도 부분을 전문적으로 조사해 우회 및 통제 등 총량규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자연과 사람이 함께 하는 생태관광을 위한 원칙으로 △같은 장소·짧은 시간에 많은 인원이 가지 않기 △생태적으로 민감한 곳은 코스로 잡지 않기 △안내자와 산책로 등 사람 맞을 준비가 된 곳만 가기를 제시하며 프로그램 구성에 신중을 기할 것을 조언했다.

고 대표는 처음 안내를 시작할 때의 오류도 고백하며 "어느 마을에서는 돌담이 예뻐 관광객들을 데려갔었는데 사람들이 마당 안으로 들어간 적도 있다"며 "그런 실수를 겪으면서 지금은 마을 안내자가 허락하는 경우 외에는 마을안으로 들어가는 프로그램은 짜지 않는다"고 한다.

고 대표는 또 길 관광이 지역경제에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낚시·테우체험 등 마을에서 만든 프로그램이 있으면 필수코스로 활용하고 벌꿀·야생차·녹두 등 마을 특산품도 적극 구매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며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해야 마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여행이라는 것이 세상을 바꿀수도 있지만 세상을 망칠수도 있다"며 "자연과 사람이 서로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봉철 기자 bckim@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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