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생활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 절반은 집을 떠나 객지에서 보내야 했다. 부산, 대구, 제주, 지금의 본청을 거치는 동안 힘든 점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이 모든 시간들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밑거름이 됐던 것 같다.

부산 근무 당시 서민경제 회생과 물자사랑 운동의 일환으로 우리 청에서 재활용 알뜰시장을 개최해 수익금을 지역 일간지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했다. 인근 아파트를 돌며 하루 5~6시간 발이 부르트도록 재활용 물건들을 수집하러 다녔는데,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만은 훈훈했다. 또한 퇴직 이후 봉사하며 살아가자고 집사람과 약속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내 인생에 불어 온 작은 혁신의 씨앗이라 하겠다.

객지생활 중에서 특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했던 곳은 제주였다. 거리가 멀었던 탓에 집에 자주 갈 수가 없어 한가한 주말이면 한라산 등반을 하곤 했다. 한라산은 사계절이 다 아름다웠지만 특히 눈 내린 겨울 한라산의 모습은 인간의 미사여구로는 표현이 어려울 듯하다.

매번 다른 모습으로 묵묵히 서 있는 산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도 나에게 주어진 공직자로서의 길을 우직하고 결백하게, 하지만 매너리즘에 젖어 나태해지지 않도록,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가자고 가슴 깊이 아로 새겼다.

30여년 근무 끝에 도착한 대전 본청은 지방청과는 달리 업무가 조직적·효율적으로 진행됐다. 또 본청 근무와 함께 신선한 자극제가 된 것은 최근 국가기관에 화두가 되고 있는 ‘정부 혁신’ 바람이었다.

전자정부 시대에 필요성만 느끼고 미뤄두었던 컴퓨터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고 퇴근 후 사무실과 학원을 오가며 공부를 시작했다. 늦은 나이라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결국 워드 자격증과 컴퓨터 활용 능력 자격증도 취득하게 됐다.

또한 내 자신의 삶과 개인적인 변화로 그동안 무심했던 식구들의 말에도 귀 기울여 가족간 대화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노력하게 됐으니 ‘혁신’이란 단어는 나 자신의 삶에도 많은 변화를 몰고 온 셈이다.

혁신은 어려운 것도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오랜 공무원 생활을 통해 젖어든 무사안일과 과거의 집착이라는 장벽을 허물고 작은 변화와 실천, 그리고 노력하는 행동 지향성이라 생각한다.

지나간 공직기간 보다 남은 공직기간이 훨씬 짧지만 이제부터의 공직생활은 직장·가정 모두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성공의 의미가 무엇인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늦게나마 알게 됐기 때문이다.

공직생활이 끝나는 날까지 이 깨달음으로 인한 즐거움이 가져올 눈부신 열매를 거둔다는 건 얼마나 귀한 일인가. 참으로 감사할 뿐이다.<윤종원 / 조달청 건축설비팀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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