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돌담의 도상학

   
 
  ▲ 행원돌담 미학  
 
# 자발적 민중문화와 부과된 민중문화
 
돌담을 보는 관점은 시·공간적으로 매우 다르다. 15세기까지만 해도 말을 잘 관리하기 위해 돌담을 쌓는 것이었고, 고려시대에는 소유권 분쟁이 생기는 밭 경계의 분할을 위해 한 판관이 돌담을 쌓도록 했다.

제주에 왔던 목민관이나 유배인들은 어느 곳보다도 돌이 많고 그로 인해 여러 고충이 많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경작을 위한 밭갈기나 해안에 배를 근접하기가 어려운 것이 과거에는 큰 고민거리였던 것 같다. 그러나 돌이 많은 것에 이점이 있었다면, 방어용 성 쌓기가 수월하였고, 목장의 잣담 쌓기, 방풍용 집 울타리 쌓기, 산담 쌓기, 우마 침입을 방지하는 밭담 쌓기는 물론 본향당, 불턱, 집짓기 등에도 돌이 이용된 사실이다.

제주의 돌문화는 민중문화의 소산이다. 이런 민중문화에는 부과된 민중문화와 자발적인 민중문화로 나눌 수 있다. 부과된 민중문화란 기본적으로 한 체제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작동되어 민중 스스로가 당연시 여기며 실행하는 문화적 행동들이다. 이와는 반대로 자발적인 민중문화란 민중 스스로가 필요에 의해서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문화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돌담을 놓고 볼 때 환해장성, 현성, 잣성 등은 기존의 민중문화 요소에다 정책적으로 민중에게 부과되어 완성된 문화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민중에게 부과된 문화의 내면에는 벌써 민중들의 생산에 필요한 돌담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돌섬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환경에 맞게 돌담을 쌓았다는 것은 설령 실증적인 기록이 없거나 그런 기록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현존 기록 이전에 이미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기록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지금껏 돌섬에 사람이 계속 살아왔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삶은 기록보다 앞선다. 따라서 김구 판관이 분쟁을 없애기 위해 밭담을 쌓았다는 것 보다 훨씬 이전에 돌담은 존재한 것이다. 돌담은 바람의 산물이다. 지금도 해안 마을에는 돌담의 옛 형태들이 많이 남아있다. 또한 과거에는 초가지붕이었지만 지붕만 슬레이트에 청색이나 황색, 초록색 등의 페인트로 개조된, 초가집담의 모습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돌담문화는 돌담집, 파도 방벽, 집 울타리 등과 같이 처음에는 삶을 보호하기 위해 민중 스스로가 이루어낸 주거용에서부터 시작하였고, 차차 마소를 키우거나, 경작 등의 생산을 위해 확대되어 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제주의 돌담 쌓기 방식은 현재, 엄연하게 제주적인 형식으로 남아있고, 그 형식이야말로 자발적인 민중문화라는 점에서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에도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돌담과 풍토

   
 
  ▲ 유목민의 겨울나기 돌담 울타리 월쩌  
 
돌담은 제주에만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돌이 있는 곳이면 어디는 있기 마련이다. 쌓기 방식도 다양한 것 같지만 실은 조밀도(稠密度)의 문제일 뿐이다. 돌담은 문화권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즉 해당 지역의 돌의 종류와 빛깔, 용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항상 풍토적인 느낌을 발산한다. 돌담은 지역적인 풍토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경관 미학적으로 각각 상이하다.

몽골의 돌담은 겨울을 나기 위한 가축 보호에 쓰인다. 수십 도가 넘는 영하의 겨울을 나기 위해 유목민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적당한 곳에다 둥지를 튼다. 이때 ‘월쩌’라는 돌담 울타리를 쌓아 말과 양, 야크 등을 겨울 내내 눈보라로부터 보호한다. ‘월쩌’의 크기는 가축을 소유한 양에 비례한다. 전체적으로 사각형이며 중간에 동물별로 나눌 수 있도록 돌담으로 칸막이를 하고 있다. 출입문은 바람이 적은 방향으로 한군데만 만든다. 돌담의 높이를 보면, 바람이 세찬 방향에는 2미터 정도, 햇빛을 받을 수 있는 곳은 1미터 미만으로 쌓았다. 돌은 주변의 잡석을 이용하는데 허허벌판에 그 많은 돌을 어디서 어떻게 주워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 오끼나와 인근 섬의 돌담  
 
오키나와는 태풍의 나라로 산호가 퇴적하여 이루어진 섬이다. 그래서 그런지 돌담은 모두 석회암이다. 석회암은 기공이 불규칙하며 패인 부분을 만져보면 거친 느낌이다. 석회암은 흰빛을 띠며 강도가 낮다. 오키나와 인근 섬에는 지금도 옛 돌담이 많이 남아 있다. 그들의 돌담은 매우 정교하리만치 촘촘하게 겹담으로 쌓는다. 또 집 입구에는 살림집을 보호하기 위해 판석으로 된 석벽(石壁)을 설치하여 큰 바람의 직풍(直風)을 피한다. 제주로 말하면 곡선으로 쌓은 올래담의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오키나와 류큐왕조 수리성의 돌담은 돌의 귀를 정교하게 맞추어 틈새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 돌담 보호운동이 시급

최근 들어 돌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돌담을 문화재로 지정해야한다는 여론이 높다. 과거 골칫거리였던 돌이 문화 자원이 되는 반전의 순간이다. 자연자원의 하나인 돌로 문화를 이루어낸 돌담은 거기에 사람의 숨결이 묻어나면서 단순한 자연자원으로 분류할 수 없게 되었다. 돌담을 문화자원이라는 인식 속에서 보면, 그 어떤 돌담도 파괴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다. 돌담은 제주의 경관을 주도한다. 문명에 의해 1차적으로 초가가 사라졌고, 머지않아 돌담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지금도 한창 제주의 숨골이자 돌의 생산지인 곶도 그린 필드로 변하고 있고, 해안에는 돌담을 헐어 공유지를 매립하면서 조간대를 도로로 만들고 있다. 마을 어디에나 온통 시멘트 건물과 조립식 건물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돌담의 수난을 막을  ‘돌담보호운동’이 시급한 때이다.<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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