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2부>발로 딛는 잠녀들의 삶 (42)시흥리
제주도 동쪽에 위치한 서귀포시 시흥리는 서귀포시의 끝이면서도 시작이다. 제주시 종달리와 맞대고 있는 이 곳은 넓은 모래밭이 발달돼 있다. 모래밭 지형이기에 뱃물질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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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흥리 포구에서 내려 걸어가는 잠녀들 | ||
# 발달된 모래밭
시흥리와 종달리의 바다 경계는 ‘몰여’라고 부르는 곳을 기준으로 삼는다. 물이 빠질 때면 종달리에서 시작된 암반이 길게 뻗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곳이 몰여로 끝 지점에 등대가 버티고 있다.
오조리와는 너븐여를 경계로 삼는다. 너븐여는 오조리 잠녀들의 경제를 지탱하는 주요 바다이면서 시흥리 잠녀들에게도 큰 수입원이 되고 있다.
시흥리 바다 곳곳이 모래밭이기에 어촌계원 구성 역시 여성들이 중심이다. 145명의 계원 가운데 여성은 132명이며, 남성은 13명에 그친다. 하지만 132명의 여성 어촌계원 가운데 늘 물질에 나서는 잠녀는 40명선에 그치고 있다. 그것도 절반이상은 60대 이상이다.
여성이 많아서일까. 어촌계장도 여성이다. 현복자씨(51)는 성산수고(현 제주관광해양고)를 졸업, 1980년대에 어촌계에 가입했다. 그는 물질을 전문적으로 하는 잠녀는 아니다. 그는 승계를 받아 어촌계원이 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가 어촌계에 가입할 때만 하더라도 수협의 조합원이면 어촌계원이 됐기 때문이다.
모래밭은 포구의 발달도 더디게 만들었다. 물이 빠질 때는 시흥포구에 배를 대기가 무척 힘들다. 때문에 큰 배를 운영하는 이들은 대부분 성산포항을 이용하고 있다. 조그마한 시흥포구에 닻을 내리는 배는 7척에 지나지 않는다.
# 조업은 뱃물질로
모래밭은 연인들에겐 낭만을 준다. 하지만 잠녀 사회는 물건이 있는 바다로 나가야 하는 또다른 문제를 던진다. 넓게 펼쳐진 모래밭엔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여가 발달돼 있어야 해조류가 붙고, 해조류를 먹이로 삼는 패류들이 몰려든다.
시흥리는 뱃물질이다. 물건이 잡히는 바다로 나가기 위해서는 모래밭을 거쳐야 한다. 뱃물질에 쓰이는 배는 어촌계 소속의 관리선이 아니라 개인 배 2척을 빌려 조업을 한다. 개인 배를 빌리기에 배 주인에게 배삯을 줘야 하는 부담은 있다.
시흥리 잠녀들은 조금부터 8물까지 조업을 한다. 그러나 모든 잠녀들이 뱃물질을 하는 건 아니다. 나이든 잠녀들은 가까운 바다에 나간다. 나이가 들더라도 물질은 계속된다. 나이든 잠녀들은 길게 뻗은 방파제를 따라 걸은 뒤 방파제와 이웃한 너븐여쪽으로 뛰어든다.
“나이든 분들은 너븐여까지 휘어가죠. 곳군(이곳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물질을 하는 잠녀들을 ‘곳군’이라 부른다)들은 너븐여밖에 갈 데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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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흥 방파제에 있는 해녀상 | ||
시흥리에 배당된 총허용어획량(TAC)은 8000㎏이다. 잠녀들은 주로 오분자기를 잡는다. 그런데 이 곳 바다의 특징이 하나 있다. 천초를 딸 때의 모습이다. 천초는 어촌계 수입원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도내 대부분의 어촌계는 어촌계원이라야 천초 작업을 할 자격을 부여한다. 하지만 시흥리는 어촌계원이 아니더라도 천초를 캘 수 있도록 문호를 열어뒀다.
특히 시흥리는 매년 천초 작업 때 배로 이동한다. 잠녀 운반선 2척을 포함해 시흥포구에 닻을 내리는 7척이 천초 작업에 매달린다.
그런데 천초 작업 때 배를 이용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마을 사람들에게 천초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고는 하지만 7척의 배로 이동하기에 물질을 못한다면 천초 작업을 아예 할 수 없다. 따라서 시흥리 여성 대부분이 물질과 관련돼 있음을 알게 된다. 직접 물질에 나서는 잠녀들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물질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을 갖췄다는 사실을 시흥리의 사례를 통해 알게 된다.
# 해녀의 집, 그리고 임대사업
성산포수협 일대는 잠녀들이 운영하는 ‘해녀의 집’이 많다. 시흥리 역시 해녀의 집을 운영하면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1개조에 5명씩 13개조로 운영된다. 성산리 잠녀들이 해녀의 집 수익을 조별로 나누는 것과 달리, 시흥리는 개인에게 공평하게 분배된다.
이 곳 해녀의 집은 1995년부터 운영됐다. 그러다가 해안도로가 개통되면서 다소 숨통이 트였다. 해녀의 집 1층은 잡아온 물건을 보관하는 축양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2층에서 음식 등을 판매하고 있다.
물질을 하더라도 75세이상이면 해녀의 집에서 일을 할 수 없다. 75세이상으로 규정한 것은 다른 어촌계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흥리는 며느리가 해녀의 집을 승계할 때 어촌계원이 아니어도 가능하도록 돼 있다. 현재 2명의 며느리가 이런 경로로 해녀의 집 운영 자격을 승계받았다.
시흥리는 해녀의 집과 더불어 어촌종합관을 운영해왔다. 그러나 어촌종합관은 몇 년전부터 조가비박물관에 임대해주고 있다. 임대사업을 하는 이유는 있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예전엔 몸(모자반)이 많이 났죠. 몸은 어촌계에 도움이 됐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젠 몸이 사라지고, 해산물 수수료로는 어촌계 살림살이가 어렵기에 임대사업을 하게 됐어요”
그렇다면 몸이 사라진 이유는 무얼까. 이 곳 잠녀들은 성산포항을 지목한다. 성산포 외항이 길게 뻗으면서 조류의 흐름을 막았다. 이후 시흥리를 포함해 오조리의 바다가 황폐화되기 시작했다. 물이 빠질 때면 시흥리 일대 바다는 온통 초록빛의 파래가 뒤덮는다. 바로 개발이 빚은 현장이다.
다음 ‘발로 딛는 잠녀들의 삶’ 이야기는 성산읍 고성·신양리이며, 관련 내용은 해녀박물관 홈페이지(www.haenyeo.go.kr)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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