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잠녀] 고성.신양리

72. <2부>발로 딛는 잠녀들의 삶 (43)고성·신양리

   
 
  ▲ 세개탈의장에서 본 신양 바다  
 


성산읍은 바다와 가깝다. 성산일출봉을 대표하는 시인 이생진의 말마따나 이 곳 여성들은 바다 가까이에 살고 있다. 그 때문인지 제주도 서쪽 바다에 비해서는 풍족한 느낌이다. 성산일출봉을 뒤로 하고 남쪽으로 달리면 고성리가 나온다. 그런데 고성리는 단일 어촌계가 아니다. 고성리와 신양리를 포함한 2개 마을이 하나의 어촌계를 이루고 있다.


# 원래는 하나의 마을

고성리와 신양리는 왜 하나의 어촌계에 속할까. 답을 이해하려면 19세기로 올라가야 한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신양리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이후 바다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 곳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고성리 출신들이었다.

“옛 어른들은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을 난산리에서 왔으면 ‘난미방’이라 부르고, 외갱이(표선)에서 왔으면 ‘외갱이방’이라 불렀지”

김경택 고성·신양 어촌계장의 설명이다. 알고보니 김 계장의 선조도 고성리 출신이다. 신양리로 건너온 이들은 어류와 해조류를 채취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일제 때는 고성리는 1구, 신양리는 고성2구로 불렸다. 현재의 신양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건 1953년에 와서다. 행정명칭은 두 마을을 달리 부르지만 지금도 신양리의 번지는 고성리로 돼 있다. 그만큼 두 마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하지만 잠수회는 연락의 편리성 등을 이유로 고성리와 신양리가 따로 운영하고 있다.

고성·신양바다는 매우 넓다. 북쪽으로는 성산리와 경계인 광치기를 시작으로, 온평리와의 바다를 나누는 새개까지다. 그런데 그들의 삶에서 신양바다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고성리의 바다는 광치기에 불과하지만 신양리는 섭지코지를 주변으로 꽤 많은 물건을 잠녀들에게 나눠준다.

# 더 좋은 바다에 대한 꿈을 꾼다

“요즘은 돈 될게 없지. 소라값도 나가질 않고. 과거엔 성산포수협 관내에서 최고였는데…”

잠녀들의 푸념이 이어진다. 하지만 지금도 고성·신양리의 바다는 좋은 물건이 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물량도 넘친다. 일부 어촌계는 총허용어획량(TAC)이 1만㎏도 되지 않는 곳이 많지만 신양리는 한때 4만~5만㎏까지 물량을 채우기도 했다. 지금도 2만㎏은 거뜬히 해낸다.

그러나 바다만 좋다고 삶의 질도 그러길 바랄 수는 없다. 삶의 영속성을 위해서는 바다 또한 좋은 물건이 넘쳐나야 한다.

고성·신양 어촌계는 전복 종패를 해도 효과를 보지 못해왔다. 소라인 경우도 지난해 5000㎏을 바다에 뿌렸으나 잘 될 것이란 믿음이 서질 않는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무얼까. 바로 통제가 되지 않는데 있다.

“바다가 넓으니까 통제가 잘 되질 않지. 1년은 통제를 해야 물건을 건질 수 있는데 말이야”

좋은 물건을 건지려면 바다관리를 해야 한다는 그들의 목소리다. 그러면 어떤 방안이 적당할까. 고성·신양 어촌계는 그에 대한 답을 ‘자율어업공동체’로 찾았다. 얼마전 어촌계 회의를 거쳐 자율어업공동체로 신청하기로 합의를 봤다.

김 어촌계장은 “2개 마을이기에 바다가 넓다. 자율어업공동체로 신청하려는 이유는 규제를 통해 해산물을 잘 키우기 위해서다. 지금까지는 통제를 한다고 하더라도 강제성이 없었기에 제대로 안됐다”고 말했다.

또한 통제가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뱃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먼 바다에 나가 조업을 한다면 잠녀들의 활동이 제약을 받지만, 바닷가에서 곧바로 이뤄지는 곳물질은 그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 성산읍 신양리 작은보름알  
 

# 불턱의 고장

개발은 성장의 단면으로, 파괴를 늘 동반한다. 해안 개발은 더더욱 그렇다. 해안도로가 생기면서 수많은 비지정문화재들이 사라진 현장을 우린 목도해왔다.

그런데 신양리에는 귀중한 잠녀들의 문화가 잘 보존돼 있다. 잠녀들의 쉼터였던 불턱이 신양리만큼 잘 보존된 곳을 찾기 힘들다.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는 불턱이 5곳이나 된다. 신양해수욕장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오등애·큰여·방애개·머릿개·배부서진알 등 5곳에 불턱이 남아 있다. 불턱이 잘 보존된 이유는 있다. 해안도로가 발달되지 않았다는 점과 함께 지금도 잠녀들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지도 참조>

한 마을에 온존히 남아 있는 불턱 1개를 찾기도 쉽지 않은데, 신양리에는 무려 5개나 있으니 ‘불턱의 고장’이라고 불러도 될 듯 싶다. 이 곳 잠녀들의 얘기를 종합한다면 예전엔 6개였다고 한다.

“새개에 있는 것만 해안도로를 뽑으면서 없어졌지. 대신 탈의장을 만들었어”

그나저나 이 곳 잠녀들은 탈의장 부족을 호소한다.

“지금 있는 현대식 탈의장 4개로는 부족해. 불턱을 없애면 임시 작업도 하질 못한다니까. 탈의장이 4개는 더 들어와야 해”

‘불턱의 고장’인 신양리는 드라마 ‘올인’이 뜨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늘 사람이 넘치고, 렌터카와 전세버스가 쉼없이 오가는 곳이다. 때문에 잠녀들이 운영하는 ‘해녀의 집’과 마을 자체에서 운영하는 ‘올인 휴게소’에서 소비하는 해산물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마을에서 운영하는 ‘올인 휴게소’는 마을 주민이어야 운영 권한이 주어진다. 그렇다면 신양리 주민 자격은 어떻게 얻을까. 본래 신양리 출신인 경우 다른 지역에 살다가 1년이 경과하면 주민 자격을 주고, 외지인은 10년후에야 신양리 출신으로 인정을 해준다. 그 때서야 ‘올인 휴게소’ 권리를 가지게 된다.




다음 ‘발로 딛는 잠녀들의 삶’ 이야기는 표선면 신산리이며, 관련 내용은 해녀박물관 홈페이지(www.haenyeo.go.kr)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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