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현대 군법전문가들은 민간인에 대한 발포 명령이 명백한 불법이라고 말한다.뿐만아니라 명령을 따른 병사조차도 군사법원 회부감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양민학살은 반인류적 범죄행위란 것이다.한마디로 군인은 민간인을 쏘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불법이라는 민간인에 대한 발포행위와 이로인한 참상은 비일비재ㅎ하다.가깝게는 5·18광주 양민학살에서,멀리는 제주4·3당시의 양민 대량학살들이 그것이다.이들 두사건은 전시가 아님에도 군의 명령에 의해,또는 책임있는 정부당국자에 의해 상상을 초월하는 양민학살들이 자행됐다.광주학살의 경우는 훗날 국회청문회를 통해 진상규명작업이 이뤄졌다.당시 청문회의 주요 쟁점중의 하나가 발포명령자가 누구인가였다.양민학살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었다.그러나 정작 책임을 져야 할 명령자들이 발뺌,국민적 분노를 샀다.

 광주양민학살 보다 30여년전 앞에 있었던 제주4·3 당시 양민학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공식적인 진상규명이 이뤄진 바 없다.냉전의 논리,국가공권력의 힘에 눌려서였다.하지만 지난해말 4·3특별법 제정과 함께 그 작업이 이제 막 이뤄지려 하고 있다.제주4·3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작업이 그것이다.이 역시 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 부분의 진상규명 작업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그리고 그 작업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그런데 최근 고무적인 현상들이 안팎에서 나타나고 있다.4·3 당시 강경토벌을 밀어 부쳤던 박진경연대장 동상 철거운동과,당시 양민학살과 관련한 최근 제주지법의 사법적 판단이 그것이다.

 전자의 사건은 4·3현장이 아니라, 제주 밖의 시민단체들에 의해,그것도 박진경대령의 고향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폭동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는 사람을 어떻게 동상까지 세워 기념할 수 있느냐는 인류애적 질책이란 생각에서다.제주지법에서 있었던 4·3소송에서의 양민학살에 대한 사법부 판단 또한 크게 다를 바는 없다.

 사실 판결은 양민학살이 있게한 4·3계엄령의 원초적 불법이었다는 쟁점에서는 비껴갔다.그럼에도 4·3당시 계엄령이란 이름으로,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이 있었음을 인정한 사법사상 첫 판결이란 점에서 역사에 남을 판결임에 틀림이 없다.반인류적 범죄와 관련한 판결이 있는 만큼,이제 그 학살의 책임 소재 또한 따져야 할 터.<고홍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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