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과 마사코의 사랑은 '휴머니즘'

필자는 지난 3회에서 ‘물고기가 그려진 소’의 주제는 ‘엿 먹어라!’이고, 이는 일본인 제국주의자들과 조선인 친일파 예술가들을 욕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중섭이 1940년 자유미술가협회전에 출품했던 ‘작품’도 이 ‘물고기가 그려진 소’와 동일한 주제를 가진다고 했다. 이토록 민족정신이 투철한 이중섭이 왜 하필이면 일본 여자 야마모토 마사코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참으로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35년 오산고보를 졸업한 이중섭은 원산(집)에서 지내다가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처음에는 가미다(神田區)에 있는 한 미술연구소를 다녔다. 그러다가 1937년 제국미술대학에 들어갔으나 지나치게 제국주의적인 학교 분위기가 싫어서 1938년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동경 문화학원으로 학교를 옮겼다. (※ 또 일설에 의하면 1935년 오산고보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제국미술대학에 진학했고 1936년 문화학원으로 학교를 옮겼다고도 한다.)

마사코도 문화학원 학생이었다. 이중섭보다 2년 후배였지만, 나이는 이중섭보다 다섯 살 아래인 1921년생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미쯔이(三井) 재단의 한 계열회사인 이쯔이 그룹의 일본창고주식회사 취체역(取締役) 사장이었다. 상류 집안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그녀는 불어를 유창하게 했고 이중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유학을 가기 위해 그 전 단계로서 문화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러한 마사코가 당시 이중섭을 만나 사랑하게 된 동기를 후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 1936년 동경 문화학원 시절의 이중섭 사진  
 


“저는 주인보다 2년 후배였습니다. 1938년인가 39년으로 기억됩니다마는, 어느 날 쉬는 시간에 남학생들이 학교마당에서 배구경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마음에 드는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키가 훤칠하고 잘 생긴 청년이었죠. 그때는 그가 조선 사람이라는 것도 몰랐어요. 그는 못하는 운동이 없었어요. 권투도 잘했고, 철봉, 뜀박질 등도 멋있게 해냈죠. 그뿐 아니라 노래도 잘 불렀어요. 가창력이 뛰어났고 제법 전통적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마 저뿐이 아니라 다른 여학생들도 그에게 관심이 있다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실기수업이 끝나고 붓을 빨게 되었는데 그도 옆에서 붓을 빨고 있었죠. 그때 우리는 단 둘이었습니다. 그가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어요. 그때부터 다방 같은 데에서 자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난 이중섭과 마사꼬가 어떻게 해서 사랑을 하게 되었는지는 고은(高銀) 저 「이중섭, 그 예술과 생애」에 잘 나타나 있다. 1973년에 출간된 이 책은 그전부터 「신동아」에 연재되어오던 고은의 글을 민음사가 모아서 펴낸 것이다. 이중섭의 예술과 생애를 편년체, 즉 연대순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은 국내최초의 이중섭 평전(評傳)이다. 이 책이 출간되기 1년 전인 1972년, 현대화랑이 개최한 '이중섭 展'이 대중적으로는 큰 관심을 끌었지만 정작 끌었어야 할 미술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처럼, 이 책 또한 미술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당시 한국화단의 주류를 이루었던 미술사조는 일제 때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프랑스산 '인상주의'와 1950년대 미국에서 직수입해온 미국 산 '추상주의' 그리고 년도와 생산지를 뚜렷이 밝힐 수 없는 '사실주의'였는데, 이중섭 그림은 그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국내산'이었기 때문이다. 국내산은 국내 미술인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외제에 비해 촌스러울 뿐이었다. 그렇지만 미술인이 아닌 일반인들에게서는 당시 상당한 관심을 끌어냈던 책으로 나는 기억한다.

   
 
  ▲ 1941년 이중섭이 엽서에 그려 마사코에게 보낸 「두 마리 사슴」  
 


고은은 이 책에서 전쟁은 어떠한 명분이든지간에 비인간적이며 그러한 전쟁사회 속에서 인간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휴머니즘'이라고 말하면서 이중섭과 마사꼬 두 청춘남녀가 국경을 초월한 세기의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휴머니즘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고은이 이 글을 썼던 시대가 바로 군사독재시절이었기 때문에 휴머니즘이 더욱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 고은의 글은 실화가 아니다. 그러나 이중섭의 가족들(조카 이영진, 조카 딸 이남화, 이종누님 이효석, 이종형 이광석, 조카 사위 김각, 이종형 이옥석)과 여러 친지들(구상, 김인호, 김창복, 박고석, 손응성, 황염수, 김종문, 이진섭, 박순녀, 유강열, 박생광, 최태응, 양명문, 장이석, 조영암, 안치열, 김충선, 김영환)의 증언을 토대로 해서 썼고, 무엇보다도 고은 선생의 높은 예술관이 투영된 것이어서 어떤 의미에서는 실화보다도 더 실화적이다. 내가 여기에 굳이 고은의 글을 인용하려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며칠 뒤, 중섭이 준명과 함께 이과전(二科展)을 보러가던 중, 길에서 우연히 마사꼬와 마주쳤다. 학교에서 보던 간편한 옷차림이 아닌 정장차림이었다. 중섭은 그녀와 별로 이렇다할 말도 없이 헤어졌다. 준명이 "멋있는데" 하며 뒤돌아보니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 "왜 함께 차라도 마시지 않고"하며 준명이 말하자, "그 여자는 달라. 뭔가를 조상(弔喪)하는 것 같잖아. 그런 여자는 건드리지 말아야해. 아무튼 여자는 건드리지 말아야 해. 여자는 그림과 같단 말이야.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게 되지 않겠어?"라고 중섭이 말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중섭은 쓰다(律田) 교수의 화실에서 나오면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녀가 말을 꺼냈다. "그림 하나 사고 싶어요." "네? 내 그림을." "네, 선생님이 굉장히 칭찬하시던데요." "부끄러운 일이군요." "꼭 하나 가지고 싶어요." "학생인 주제에 사고판다는 건 농담으로 돌립시다. 하나 드리지요. 하지만 놀림감이 되는 일이 무섭군요."

그들은 누가 말하지 않았어도 아주 자연스럽게 끽다점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학원부근의 다방이라 봉두난발의 예술지상주의 대학생들이 많았다. "조선 얘기 해주세요." "아… 하지만 나는 얘기할 줄 모릅니다. 서러운 역사를 가진 나라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중섭이 이렇게 말하자 마사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그런 나라에서는 훌륭한 예술가가 나올 거예요. 일본은 그런 역사가 없어요"

그렇게 해서 만나기 시작한 중섭과 마사꼬의 밀회장소는 때때로 신쥬꾸의 남만 다방에까지 진출했다. 당시 일본여자가 조선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일본 상류사회에서는 모험이었다. 마사꼬도 처음엔 중섭을 같은 대학 화우로서 가까이했다가 중섭의 진수에 사로잡힌 것이었다. 중섭과 마사꼬의 로맨스는 조선인과 일본인이라는 그들 사이의 격차보다는 그들 자신의 진실에 더 충실했다. 마사꼬는 심신을 다해서 중섭에게 기울어졌다. 그러나 중섭은 그녀에게 구혼을 하거나 장래를 약속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사랑을 받았고, 또 그녀를 사랑했을 뿐이다.

그런 사랑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사랑은 예술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들이 그들 사이의 격차를 극복하는 것은 예술적 일치감에 의해서만이 가능했다. 죄책감 · 심각한 고민 · 열정 · 전율 따위가 승화되어 마치 어린 아이들처럼 장난스러워졌다. 거의 '동화적인 사랑'을 함으로써 그들은 사랑을 만들어나갔다. "저어, 머리가 좋아지는 약이 있어요. 책을 읽으면 그 책 속의 지식이 다 외어지는 약이에요." "그런 약이 있을까. 우리 누이(* 이효석; 이중섭의 사촌. 당시 일본 소화약전을 다니고 있었음.)한테서도 들은 일이 없는데." "있어요." "그래?" "파예요, 파." "파?" "네, 파를 콧구멍에 한 줄기씩 넣고 한참 있으면 머리가 아주 좋아져요." "그래? 정말?" "그럼요. 정말이에요." 중섭은 이노카시라 공원 입구 골목에 있는 가게에서 파 두 뿌리를 사서 그것을 잘라 콧구멍에 찔러 두었다. 기침이 나고 머리가 아팠다. 한나절 콧구멍이 얼얼했다. 다음날 중섭은 마사꼬를 만났을 때 파 얘기를 했다. 일러준 대로 했다니까 마사꼬는 마구 웃어댔다. "장난이에요. 미안해요." "진작 그렇게 말할 일이지. 아주 혼났는걸."

위 고은의 글이 보여주는 이중섭과 마사꼬의 사랑, 그리고 당시의 분위기가 잘 나타난 그림이 바로 '두 마리 사슴'이란 그림이다.

다음 5회에서는 이중섭 그림의 특징인 상징과 왜곡과 변형이 이 '두 마리 사슴'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 작품 '사슴'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사슴'은 「이중섭 평전」의 저자 최석태 씨가 가짜라고 말한 작품이다.

※이 연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