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 디자인 통한 경관 조성

[제주를 새롭게 디자인하자, 경관이 미래다] <9>고베의 도시 경쟁력
건축물 디자인 통한 경관 조성
 


   
 
  ▲ 록코산맥을 기준으로 도시경관을 형성하고 있는 고베시 전경.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46분. 일본 남동쪽 아와지섬에서 발생한 진도 7.3의 강진이 항구도시 고베를 덮쳤다. 고베 대지진으로 일컬어지는 이 재앙은 불과 20초간의 강렬한 흔들림으로 고베시에서만 4500여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많은 기업들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고 수십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6만채에 달하는 생활의 터전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처럼 사실상 폐허상태에 직면했던 고베시는 10여년이 지난 지금, 록코산맥과 해안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도시 경관을 창출해나가고 있다.

이는 산과 바다 등 지형적인 조건에 바탕을 둔 도시경관 시책이 30년전부터 착실히 마련돼왔고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시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고베시는 지난 1978년 도시경관조례를 제정해 고베다운 도시 경관을 지키고, 육성하고, 만들기 위한 시책을 추진해왔다.

이에 따라 고베다운 도시 경관을 형성하고 있는 해안 경관, 근대건축물 분포 지역, 외국인 거류지역 등 7개의 지역과 형태를 도시경관형성지역(344㏊)로 지정해 지역 특성에 맞는 건축물 기준을 마련해 시행중이다. 고베항이 지난 1868년 개항되면서 고베로 몰려든 외국인들의 업무와 거주를 위한 근대건축물이 많이 지어졌다.
   
 
  ▲ 1800년대 외국인들이 업무를 보던 건물. 고베 대지진 당시 무너진 후 원형이 복원돼 레스토랑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 전통적인 건조물과 환경을 보존할 필요가 있는 지구를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하고 역사적인 건축물이나 지역의 상징이 되는 건축물 등을 ‘경관형성 중요건축물’로 정해 개발 행위를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옛 미국 영사관 관사 등 근대서양식 건축물 11곳이 ‘경관형성 중요건축물’로 지정됐고 고베 대지진 당시, 허물어졌던 1800년대 건축물을 원형 그대로 복원해 활용중이다. 외국인들이 근무를 했던 외국인거류지역에 광고 설치를 전면 금지하고 전선을 지중화하고 가로수 지주대와 화단 규격를 통일시키는 등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건축물 디자인 기준을 마련하고 고도 제한과 색상 등을 강제 규정으로 설정해 고베시에 맞는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다.

이처럼 고베다운 도시경관을 만드는 핵심 요소인 도시경관조례가 제정된 계기중 하나는 인기 드라마의 영향이었다.

야지마 도시히사 도시계획총국 경관계장은 “NHK가 고베지역을 배경으로 만든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면서 관광객들이 크게 늘어났다”며 “‘고베는 좋은 도시’란 이미지를 관광객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도시경관조례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인기있는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 관광객들의 인기를 얻으면 당장 이용객 편의시설 등 건축행위를 벌이면서 경관을 훼손하는 우리 현실과 대조적이다.

도시경관조례의 또다른 핵심요소는 주민 참여과 지원이다. 고베로 독자적으로 ‘경관형성 시민단체 인정제’를 도입해 경관 형성을 위한 시민활동을 행·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1981년 ‘기타노·야므모토지구를 지키고 육성하는 모임’을 시작으로 아름다운 거리 오카모토협의회, 구거류지 연락협의회 등 올 7월말현재 11개 단체가 인정을 받았다.

또 ‘경관형성시민협정제’를 도입해 시민과 고베시가 일정 지역내의 도시경관에 대한 협정을 맺는 것으로 시는 보증금 지원과 전문가 파견 등을, 시민은 전문가와 협의해 관련 계획을 마련해 실천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고베 모토마치 상가 등 8개 협정(112㏊)이 맺어져 운영중이다.

   
 
  ▲ 고베시가 광고 설치를 금지하고 있는 외국인 거류지역. 유일하게 깃발 설치는 허용하고 있다.  
 



야지마 도시히사 계장은 “시가 만든 건축물 디자인을 근거로 설계를 하면 별다른 심의없이 건축 허가를 내준다”며 “단, 세계적인 건축가 등이 독창적인 건축물을 설계했으나 시의 건축물 디자인을 벗어나게 되면 심의를 통해 결정하는 특례 사항도 있다”고 말했다.

록코산맥을 정점으로 경사면 형태로 도시가 넓게 퍼져있는 데다 바다를 끼고 있는 점으로 제주와 비슷한 고베시는 도시경관의 기본 요소중 건축물 디자인을 마련해 지역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다. 또 경관 형성에 시민들의 참여를 적극 이끌어내고 있는 점은 도시 경관 조성을 추진하는 제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별취재반=이창민 자치2팀 차장, 박민호 사진팀 기자, 김경필 사회팀 기자, 김태일 제주대 교수
◆자문=정광중 제주교대 교수, 김일우 박사, 송일영 건축사

※이 연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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