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원이다] <2부> 제주의 혼을 심는다 : 한종훈 아프리카 박물관장

[사람이 자원이다] <2부> 제주의 혼을 심는다 : 한종훈 아프리카 박물관장
'박물관 천국' 제주 알리기 '혼신'

한종훈 관장(66)에게는 고향이 셋 있다고 했다. 그가 태어났던 평양이 첫 번째 고향이라면 두 번째 고향은 10살부터 자라온 서울이다. 그리고 제주는 그의 3번째 고향이자 종착점이다. 유유자적 남부럽지 않은 황혼기를 보낼 수 있었지만 이를 거부하고 제주를 제3의 고향이자 삶의 귀결점으로 택한 순간, 그의 인생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했다.

   
 
  ▲ 아프리카 박물관 전경  
 

# 인생의 귀결점, 제주

한 관장이 제주에 정착한 것은 정확히 2005년 1월 서귀포시 중문에 아프리카 박물관을 개관하면서다.

아프리카 상징적 건물인 젠네 사원을 본떠 만든 아프리카 박물관은 적잖은 규모, 독특한 외관, 방대한 유물량 등으로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그의 사재는 물론 평생을 바친 땀방울, 그의 일생이 이곳에 집결됐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한 관장은 젊은 시절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린 이다.

외국의 선진 인테리어 디자인을 경험하기 위해 각국을 돌아다니며 우연히 접한 아프리카 문화가 자신을 매료시켰다고 했다. 아프리카를 또 다른 삶의 화두로 품게 된 그는 어느덧 아프리카 문화 수집가라 불리게 됐고, 결국 1998년에는 서울 대학로에서 아프리카 미술박물관을 개관했다. 2002년 3월에는 아프리카 문화원도 개원했다.

적자 투성이인 사립박물관의 열악한 현실에 부대끼면서도 그의 열정은 그치지 않았다.

아니면 평생의 열정을 다 쏟아내기에는 서울이 제주보다 좁았던 것일까. 한 관장은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들을 직원들에게 물려주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넣기 위해 마지막 키를 제주로 돌렸다.
# “무한한 가능성의 섬, 제주”

처음부터 제주를 택한 것은 아니었다. 전국 방방곳곳을 뒤지며 박물관 적지를 물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주’이어야할 이유는 많았다. 5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는 국내 최대 관광지라는 점, 국제자유도시 추진 등은 제주가 충분히 발전 가능성 있는 지역임을 점치게 했다.

무엇보다 제주는 천혜의 청정자연과 독특한 민속문화가 살아 숨쉬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는 “제주는 폐가 좋지 않았던 나에게 맑고 깨끗한 공기를 줄 수 있는 지역이고, 아프리카만큼이나 독특한 문화와 민속이 살아 숨쉬고 있는 지역”이라고 방점을 찍는다.

그러나 제주정착 생활이 녹록한 것만은 아니다. 사립박물관이란 것이 적자가 불가피한 구조인데다 박물관을 문화관광 자산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적인 인식, 박물관 운영에 걸림돌이 되는 행정·법률적 한계 등은 여전히 그가 넘어야 할 과제다.

문화에 대해 야박한 제주의 행정도 고민거리다. 제주도박물관협의회 회장이기도 한 한 관장은 “문화관광부지사가 필요하다”며 “난립하는 박물관에 대해서도 적절한 관리와 지원을 통해 제주의 이미지를 높여야 하며, 이를 위한 도 조례 등의 제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제주는 박물관이 밀집되는 외양적인 성장이 아닌 타 지역보다 모범적이고 월등한 이름 그대로의 ‘박물관 천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 “박물관을 위해 제주를 찾을 때까지”

아프리카 박물관 개관과 함께 그가 추진한 것이 바로 박물관협의회다. 제주는 ‘박물관 천국’으로만 불리고 있지만 정작 박물관에 대해서는 그 어떤 관리도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전국적으로 10개 지역의 박물관협의회가 운영되고 있지만 2005년 당시만 해도 경기도가 막 박물관협의회를 출범할 때였다.

제주가 뒤를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박물관협의회를 출범시켰으며, 현재 그 어느 지역보다 왕성한 활동으로 ‘제주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제주에 정착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한종훈 관장이 제주도박물관협의회 초대회장이 됐고 올해 6월 2대 회장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외지인에 대해 거리감을 두는 지역특성을 감안할 때 그가 쌓은 신뢰감은 그만큼 두터운 것이었다.

박물관협의회가 구성되면서 제주도 박물관들은 스스로의 알을 깨기 위한 움직임으로 분주해졌다.

박물관 비전과 발전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세미나가 잇따라 열렸고, 전국 박물관을 돌며 의견을 교환하는가 하면 올해는 자체 재원을 마련해 해외 탐방도 나선다.

2006년에는 공동홍보팸플릿을 발간했으며, 지난 5월에는 지역의 박물관을 한데 모은 박물관홍보엑스포를 개최해 제각각 홍보로 분산됐던 홍보 역량을 한데 모으기도 했다.

올해 말에는 경기도박물관협의회와 MOU를 맺어 공동 협력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난 6월 개최했던 박물관엑스포는 제주가 아닌 타 지역에서 하는 게 그의 꿈이다. 많은 이들이 박물관을 보기 위해 제주를 찾도록 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일본 한류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비장의 계획도 수립하고 있다. /박미라 기자 mrpark@jemin.com , 사진 조성익 기자 ddung35@jemin.com



   
 
  ▲ 한종훈 아프리카 박물관장  
 
●한종훈 관장은…

1940년 평양에서 출생, 10살 이남해 서울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 후 실내 인테리어 사업을 해왔으며 1998년 서울 대학로에서 아프리카 미술박물관을 개관해 아프리카 문화수집가로 이름을 알렸다.

2002년 한국사립박물관협회 부회장으로 활동, 구조적으로 열악한 사립박물관 활성화에 힘써왔으며 2005년 1월 제주에 서울의 아프리카 박물관을 이전해 확대 개관했다. 같은 해 년 6월 제주도박물관협의회 초대회장, 2007년 6월 협의회 2대 회장을 연임하면서 도내 박물관들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2006년 5월 대통령상 표창(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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