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일손희생자 유족인 이도영박사(53·대정읍 하모리)가 최근 월간 말지에서 출판한 「죽음의 예비검속」은 한국전쟁 직후 군·경에 의해 불법적으로 자행된 양민학살극을 입증한다는 점에서 그 진상규명에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예비검속 학살극에 대한 증언과 일부 자료가 언론을 통해 공개된 바 있지만,이 책에는 구금에서부터 총살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생생히 보여주는 사료들이 공개·수록됨으로써 그 전모를 살피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총살극 화보 △나의 외로운 투쟁 △백조일손사건 △미군정이 본 제주4·3 △드러나는 학살의 배후 △예비검속의 책임 등 7가지 주제로 나뉘어 있는데,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자료집으로 수록한 ‘제주 예비검속 관련 경찰문서’이다.

 이는 제주경찰이 직접 작성한 1차사료라는 점에서 진상규명의 결정적 자료로 평가된다.공개된 자료는 △제주경찰서의 예비검속자 명단(A·B급) △제주경찰국장과 치안국장간에 오고간 암호전문 △제주주둔군 CIC와 경찰간의 전문 △보성국교·오현중학교 교사에 대한 예비검속 건 △신원보증서 △탄원서 등이다.

 당시 경찰은 예비검속자를 A·B·C·D급으로 분류했는데 D급을 가장 ‘중죄인’으로 취급해 총살했다.따라서 이번에 공개된 A·B급에는 한국전 전황에 따라 구사일생한 현재 생존자들의 이름도 다수 등장해 무분별하게 자행된 예비검속의 실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특히 예비검속자들은 경찰의 분류에 따라 생사가 갈렸는데,이는 경찰이 불법적으로 ‘사법권’을 행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예비구금법’과 함께 ‘경찰의 사법권’은 해방과 함께 미군정법령 제11호에 의해 폐지된 일제의 법률들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이 자료는 그 자체로 불법인 예비구금과 경찰의 사법권 행사로 무고한 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자료들 중에는 제주경찰이 육군 CIC나 치안국장에게 보낸 전문도 있어 당시 예비검속 학살극이 군·경의 합작품이며,전국적으로 자행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그리고 이도영 박사와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간의 대담을 통해 당시 CIC과장인 김창룡(金昌龍)이 예비검속 학살극이 자행됐음을 밝히고 있다.

 이밖에 백조일손사건으로 부친을 잃은 이도영 박사가 연좌제의 사슬에 묶여 군 생활과 미국 유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고초,5·16직후 경찰이 백조일손비석을 부순 과정,백조일손 유족들의 동향을 일일이 사찰한 경찰의 ‘전언통신문’ 등도 실려 있어 5·16쿠데타와 연좌제가 얼마나 반역사적인 것이며 주민들을 옥죄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김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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