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돕는 ‘건강한’ 봉사는 쭉~

   
 
  ▲ 김상철씨가 개인봉사활동을 하면서 헌혈(337회)한 헌혈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민호 기자  
 
“누군가를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64년의 삶보다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꾸릴까. 김상철씨(64·일도2동)는 만남 내내 그런 느낌을 줬다.

김씨는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14년 동안 1만2384시간의 봉사를 했다. “더 열심히 오래 활동한 사람도 많은데…”

매년 884.5시간, 하루 평균 2시간 이상은 봉사활동을 했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자영업을 할 당시에는 자원봉사를 위한 시간을 내기가 편했지만 ‘직장’에 다니는 지금은 짬을 내기 어려워 열심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연설명이 뒤따른다.

성당 관리로 이틀을 일하고 하루를 쉬는 일정을 2년 넘게 이어가고 있지만 그 하루를 남을 위해 투자한다.

14년 전 RCY 활동을 하던 딸을 따라 헌혈을 했던 것이 김씨가 자원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지금까지 한 헌혈횟수만 336회. 도내에서는 두 번째, 전국에서도 7번째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두 달에 한번’ 전혈 밖에 할 수 없었던 때부터 성분헌혈이 가능해진 모든 과정을 온 몸으로 체험했다. 중요성을 직접 학교 등을 다니며 홍보하기도 했다.

그런 그는 요즘 달력을 유심히 본다. 올해 8월이 지나면 더 이상 헌혈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헌혈을 하고 나면 ‘건강하다’는 검사결과가 나온다”며 “성분 등에 이상이 있다는 것도 아니고 나이 때문에 헌헐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 혈액법상 만 64세가 지나면 헌혈을 할 수 없다. 그 때문에 김씨는 보건복지부 등에 몇 번이나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헌혈 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도 이어왔다.

지금까지 헌혈했던 기록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만큼 상실감도 클 터. 하지만 김씨는 ‘건강한’봉사활동을 강조했다.

5년 전부터 일반 봉사를 시작해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호스피스 활동과 어버이 결연·소년소녀가장 결연 등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찾아오는 것 자체도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지금은 ‘많이 기다리고 계셨구나’하는 생각에 미안함이 앞선다”며 “그냥 말을 들어주는 게 전부지만 큰 위안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아쉬운 부분도 많다. 현재 함께 호스피스 활동을 하는 회원은 12명이 전부. 대부분 여성들이다. 남성 환자들도 있고, 남자의 손이 필요한 부분도 많지만 고령이나 생활이 바쁘다는 이유 등으로 활동에 나서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김씨는 “겨우 몇번 눈을 맞추고 난 다음 찾아갔을 때 돌아가신 경우도 많다”며 “80이 넘은 고령으로 혼자 사시던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그냥 장례처리가 돼 가슴 아팠던 적도 있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런 김씨는 그러나 집에서는 ‘죄인(?)’이 된다. 쉬는 날이면 빠지지 않고 봉사활동을 나서는 탓에 부인의 불만이 적잖다. 올해 61살인 부인이 모텔 청소 일을 해야 할 정도로 경제사정이 좋은 편이 아니지만 ‘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김씨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김씨는 “이렇게 봉사를 하다보니 오히려 몸과 마음이 건강해 지는 등 내가 더 도움을 받았다”며 “예전에는 위만 보고 살았다면 이제는 주변과 아래를 보고 지금이 아주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 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김씨는 취재를 위한 찾아간 기자에게 직접 만들었다는 댕유자차를 내밀었다. ‘간’에 좋다는 말을 듣고 직접 만들었는 차다. “이렇게 관리하는데 왜 헌혈을 하지 못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김씨는 봄과 닮았다. 봄과 같이 따뜻한 마음을 그리 큰 것은 아니다. 작은 그릇 안에 담겨 있는 그 만큼의 마음만으로 충분한 것이라는 걸 김씨를 통해 배웠다.

고 미 기자 popmee@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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