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원이다] <2부> 제주의 혼을 심는다 : 신용하 이화여대 석좌교수·독도학회 회장
우리나라 근·현대사적 사안인 독도 영유권 문제는 물론 단군 등 고대사에 대한 중요한 사실이 발견 또는 발생할 때마다 언론이나 학계는 신용하 교수(71)의 입을 주목한다. 국내 사학계의 원로이자 독도 연구의 대가인 그를 16일 오후 5시 서울 코리아나호텔 7층 연회장에서 만났다. 2개 대학 교수이자 한성학원 이사장이고 2개 학회 회장으로 엄청 바쁜 그를 1시간 뒤 이곳에서 있을 제주국제협의회의 '제주인의 밤'행사를 앞두고 짬을 내 고견을 들었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주권" 
독도 연구의 대가로 불릴 정도로 독도 연구에 '그렇게' 천착하는 이유를 물었다. 1996년 독도학회, 2005년 한국영토학회의 창립부터 지금까지 회장이고 독도연구보전협회장도 2005년 김학준 동아일보 대표이사에게 인계할 때까지 회장을 맡는 등 독도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만큼 뭔가 멋있는 대답을 기대했던 터였다.
그런데 대답은 "그냥 떠밀려서"였다. 그는 "19·20세기의 민족문제를 연구하던 중 1904~1905년 일제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잘 알면서도 침탈해간 자료를 많이 발굴하게 됐고 이후 일본이 우길 때마다 그걸 반증하는 증거자료를 제시했더니 독도 영유권 문제가 나올 때마다 저에게 답하라고 해서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됐다"는 것이다.
"진짜냐"고 따져 묻자 신 교수는 웃으며 "구한말 일본은 독도 침탈사건 이후 5년뒤 한국을 강점해버렸다"며 "다시는 일본의 침략을 받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독도를 지키는게 한국의 주권을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앞장서서'독도 지킴이가 됐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독도는 한국의 자주독립 주권의 상징이고, 그래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국가의 기본권"이라며 "따라서 독도는 작은 바위섬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한국 독립을 보장하는 상징으로 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학 선택은 시대적 숙명"
그가 사회학을 선택하고 독도문제에 천착하게 된 것은 어쩌면 역사적 숙명처럼 느껴졌다. 많은 학문 분야 가운데 "왜 사회학이냐"는 물음에 신 교수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의 경험을 얘기했다.
신 교수는 "1945년 7월 무렵 일본군의 제주도 진주에 따라 화북지방에 내려진 소개령으로 육지에 나와 4·3의 피해는 면했으나 6·25를 소년의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며 "동족상잔의 참극을 빚은 좌·우 충돌의 이유에 대한 궁금증으로 어려서부터 민족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처음엔 19·20세기 역사를 공부하다 일본의 역사왜곡이 우리 근현대사뿐만 아니라 한민족의 기원·뿌리에 대해서도 극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고대사에도 눈을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명백한 역사적 자료가 있음에도 '일본 것'이라는 망언을 일삼는 일본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그들 주장의 허구성을 밝히는 연구에 착수하게 됐다"고 밝혔다.
△"고조선과 단군은 역사"
고조선과 단군은 아직도 논란이 여전한 화두다. 지난 2007년 역사교과서에 '단군왕검이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라는 종전의 고조선 관련 내용에서 '고 한다'라는 3자를 빼면서 고조선이 역사로 편입되면서다. 이에 대한 그의 학자적 견해를 물었더니 "고조선 단군이 역사인가 신화인가 문제는 고고학적 유물과 함께 증명돼야 한다"면서도 '역사'로 결론지었다.
그는 "한강에서 요동·요서지방에 걸쳐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고인돌, 청동기시대 비파형동검·세형동검과 빗살무늬와 팽이형태 토기 등 문화유물이 상당히 발견된다"며 "이는 이들 지역이 동일한 하나의 단일 문화권·단일 정치권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이어 "유물 연도측정 결과 기원전 3000~2000년 사이에 집중 분포되는 것은 4000~5000년전 국가가 형성됐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으로 "중국 쪽에 '조선'이라는 이름이 기원전 8세기에 나오고 건국도 중국의 하(夏)나라와 비슷하다(기원전 2500~2200)는 기록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중국의 기록은 물론 우리나라 삼국유사도 고조선을 기원전 24세기에 건국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유물 측정연대도 삼국유사 기록과 대체적으로 맞아떨어져 고조선은 늦어도 기원전 24세기, 빠르면 기원전 3000년경에 건국됐다"고 말했다.
단군과 관련, 신 교수는 "단군은 고조선이 건국한 곳으로 추정되는 '강동지방(대동강 상류)'에 단군묘에 대한 기록이 있고 만주쪽에도 '만주족들이 단군의 통치를 받았다'는 기록(백암 박은식의 조사)이 있는 만큼 단군은 실재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관련 있는 모든 사람이 제주인재"
제주도가 전국의 1%라는 한계 극복을 위한 인재육성 대책을 묻자 신 교수는 "사람 수가 전국의 1%라는 것은 낙담할 사항도 아니고 제주도의 결점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는 "사람을 어떻게 교육시키느냐에 따라 역량은 천문학적으로 증대 된다"며 "제주도에 초등부터 대학까지 대대적인 교육 혁신이 전문가에 의해 기획되고 실천돼야 하고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와의 활발한 교류 등 열려있는 마음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내 유태인은 800만으로 전체 인구 2억8000만명의 3%도 안되지만 학계·금융·언론계를 완전히 장악, 미국 전체를 자신들이 원하는 데로 끌고 간다"며 "덕분에 13억 아랍계에 포외된 이스라엘은 300만명에 불과해도 끄덕 없지 않느냐"며 외연의 확대를 주문했다.
신 교수는 "살지 않더라도 제주도를 위해 활동해주면 그가 제주도의 인재"라며 "제주에서 출생했거나 제주를 사랑하거나 제주를 위해 활동하는 등 관련이 있는 모든 이들을 포함하는 제주도의 인재풀로 확대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독도연구의 대가 신용하 교수
사학계의 대 원로이자 독도 연구의 대가로 통하는 신용하 교수, 1937년12월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72세이다. IMF이후 정년퇴직이 몇년씩 앞당겨지고 명예퇴직이 늘어난 한국 사회 통념상 그는 '예비역'이다. 50대 중반에 정년을 맞이하는 곳도 있으니 예비역 중에서도 고참 예비역이어야 한다.
그러나 신 교수는 여전히 현역이다. 그는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이화여대 석좌교수, 독도학회 회장, 한국영토학회 회장과 한성학원 이사장이다. 고희를 훌쩍 넘겼음에도 대학교 강단에선 교수로, 학회에선 학자로서 독도 지킴이의 선봉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한성대와 부속 중·고교를 운영하고 있는 한성재단 이사장으로서 후학 양성의 사회적 책임을 나누고 있다.
제주시 화북 출신인 신 교수는 서울대 문리과대학 사회학과 졸업에 이어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우리나라 민족문제 연구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고향 제주의 발전과 비전에도 큰 관심을 가져 지난 1991년 동료 학자 등과 '제주를 가장 살기 좋은 섬으로 만드는 길을 찾자'며 김영식 전 교육부 장관을 회장으로 김세원 서울대 교수와 함께 부회장을 맡아 제주국제협의회를 태동시켰다.
이어 제주국제자유도시가 본격 추진되기 시작한 2002년에는 관련 전문가들로 창립된 '제주국제자유도시 포럼'에도 공동대표로 참가, 현재도 활동 중이고 지난 13일 제주도가 출범시킨 '제17대 대통령 제주지역 공약실천협의회'의 20여명 위원중 한사람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는 독립협회 연구, 한국 근대사와 사회 변동, 동학과 갑오농민전쟁 연구, 한국 현대사와 민족 문제, 한국 민족의 형성과 민족사회학, 신용하의 독도 이야기, 독도영유권에 대한 일본주장 비판,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 비판 등이 있다.
이 가운데 2004년 출간된 「신용하의 독도 이야기」는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알리는데 평생을 바쳐온 그의 첫 대중서로, '다케시마가 아니라 독도이며,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우리 국민이면 최소한 알고 있어야할' 논리적 근거를 제시해준다.
서울=김철웅 기자 cukim@jem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