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전창원의 서귀포, 이중섭을 읽다] 30. 제주도시대(4)

   
 
  「바다가 보이는 풍경」  이중섭 작. 1951년.  
 
「바다가 보이는 풍경」

이 작품은 이중섭이 1951년 서귀포에 피난 와서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서귀포 어느 지점에서 그린 것일까? 최석태 저 「이중섭 평전」에는 "서귀포에서 살던 집 바로 위에서 그린 것"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이중섭미술관 문화유산해설사 강치균은 이중섭이 거주지 마당에서 그린 것이라고 했다. 누구의 말이 옳을까?

2003년, 박영철(당시 서귀포시청 문화공보실 직원)이 이 작품에 대한 해설문을 적어달라고 했다. 해설문과 함께 '여기는 이중섭 화백이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그렸던 곳입니다'라고 적은 안내판을 이중섭 거주지 마당에 설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해설문을 적어주었다.

조선인과 일본인이 결혼한다는 것이 사회 윤리에 어긋난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 민족사상이 투철했던 이중섭이 마사코를 사랑하기까지는 갈등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중섭이 우편관제엽서에 그려 애인 마사코에게 보낸 그림들 중에는 어느 외딴 섬에서 이중섭은 나무가 되고 마사코는 돌이 되어 영원히 함께 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나무로 변한 다프네처럼 이중섭도 나무로 변한 것이다. 이 엽서그림을 그린 지 꼭 10년이 지난 1951년, 이중섭은 아내 마사코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서귀포에 피난 온다. 「바다가 보이는 풍경」은 이때 여기서 그려진 것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화면 왼쪽에 팽나무 두 그루가 서 있고, 그 오른쪽으로 초가집이 나지막하게 자리를 잡았다. 초가집 마당에는 점경인물(點景人物)도 보인다. 돌담 너머로 기와지붕이 보이고 눌과 우영팟과 짙은 녹나무도 보인다. 아직 새잎이 나지 않은 팽나무가 바다에 뜬 흰 돛단배와 함께 봄을 기다리는 듯하다.

이 그림은 이중섭이 그 10년 전에 그렸던 자신의 그림을 패러디 한 것이다. 서귀포를 자신이 그동안 갈망해오던 유토피아라고 생각하면서 마사코와 함께 여기에 두 그루의 나무로 환생한 것처럼 상징 표현한 것이다. 이중섭 나무가 마사코 나무를 껴안고 있는 모습이 주제이다.

그러나 이 해설문이 적힌 안내판은 끝내 설치되지 못했다. 이중섭 거주지 마당에서는 물론이고 그 주변 어디에서도 이 「바다가 보이는 풍경」과 똑같은 풍경을 실제로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있었기에, 나는 지난 12회에서 "「바다가 보이는 풍경」은 이중섭이 서귀포를 떠난 뒤 서귀포를 회상하면서 그린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중섭이 상상해서 그린 그림의 예로서 「청기와」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만일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그린 실제의 지점이 서귀포에서 찾아진다면 "서귀포를 회상하면서 그린 것일 수도 있다"고 한 내 이야기는 잘못된 것으로 지적되어야 마땅하다. 나는 12회에서 했던 내 이야기가 잘못된 것으로 지적되길 바라면서 이 글을 쓴다.

그 명작의 고향

「바다가 보이는 풍경」에 그려진 사물들은 「섶섬이 보이는 풍경」에서도 그려졌던 사물들이다. 다시 말해 「바다가 보이는 풍경」과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똑같은 풍경을 보고 그린 것이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에서는 팽나무와 기와지붕이 화가로부터 30∼40m 전방에 놓여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29회 참조). 그 팽나무와 기와지붕이 이 「바다가 보이는 풍경」에서도 그려져 있다.

그런데 팽나무 왼쪽에 그려졌던 섶섬이 이번에는 팽나무 오른쪽에 그려졌고, 기와지붕도 시계방향으로 20도가량 돌아간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것은 (공중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화가가 팽나무를 축으로 해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20도가량 돌아간 지점에서 그린 것이다. 거리와 각도가 주어졌으니 이중섭이 어느 지점에서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그렸는지를 삼각함수로 계산해낼 수가 있다. 그 지점은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그린 지점에서 서쪽으로 15m가량 이동해간 지점이다.

또 「섶섬이 보이는 풍경」에서 팽나무 꼭대기에 걸려있던 수평선이 이 그림에서는 그보다 4~5m가량 낮은 부분(활처럼 휘어진 가지가 있는 부분)으로 내려온다. 이는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그린 곳보다 4~5m가량 낮은 곳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다.

나는 지난 29회에서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이중섭 거주지 바로 뒤에서 그린 것이라고 했다. 그 지점에서 서쪽으로 15m가량 간 뒤, 비탈 아래로 또 4~5m가량 내려간 곳이 이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그린 지점이 되는데, 이 지점은 지금 이중섭 거주지 내에 위치한다. 따라서 이중섭 거주지 마당에서 그렸다는 강치균 문화유산해설사의 말이 옳았음을 알 수 있다.

   
 
  「잘못 복원된 이중섭 거주지」  사진. 2008년.  
 
복원과 함께 사라지다

이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그린 지점은 서귀포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명작의 고향'을 보여줄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1951년 당시에는 이중섭 거주지 마당이었는데 1997년 이중섭 거주지를 복원할 때 뒷담에 붙어있던 초가집이 여기로 나오는 바람에 집 안으로 편입되었던 것이다.

수평선이나 섬 따위 아주 먼 곳에 있는 사물들은 우리가 웬만큼 위치이동을 해도 '크기나 높낮이'가 변하지 않는다. 반면에 가까이 있는 사물들은 우리가 조금만 이동해도 크게 변한다. 그래서 우리는 화가가 그림을 그린 지점을 찾을 때 멀리 있는 사물과 가까이 있는 사물의 크기가 그림에 그려진 것과 똑같은 비례로 보이는 지점을 찾는 것이다. 지금 이중섭 거주지 마당에서 섶섬과 팽나무를 비교해보면 팽나무가 그림에 그려진 것보다 훨씬 크게 보이고, 이중섭 거주지 뒤에서 비교해보면 팽나무가 훨씬 작게 보인다. 그림과 똑같이 보이는 곳은 그 중간인데 거기에는 초가집이 들어앉았다.

   
 
  「80년대 초의 이중섭 거주지 모습」  종이에 연필. 조관형 작. 2008년.  
 
80년대 초 이중섭 방에서 살았던 화가 조관형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이중섭 거주지는 남향이었는데 지금은 동남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원래는 집이 뒷담에 붙다시피 했는데, 복원할 때 시계 반대방향으로 40도가량 돌려놓았기 때문에 서쪽 부분이 앞마당으로 쑥 나와 그 끄트머리에 있던 부엌문이 예전처럼 정낭에 가 닿지 않고 한참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 또 방향을 바꾸니까 가옥 전체의 길이를 늘일 수 있는 공간이 생겨, 전에 없던 '새로운 방과 부엌'을 하나씩 더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방과 부엌을 '이중섭 가족이 생활했던 공간'이라고 서귀포시가 일반에게 '허위 공개'하고 있으니 이는 예술의 가치와 문화재의 진정성을 우습게보고 임의로 조작한 전시행정의 한 예인 것이다. (27회 참조)

조관형의 그림을 보자. 정낭을 지나 마당 안으로 내려들어가면 왼쪽에 본채가 있고 오른쪽에 슬레이트 지붕의 별채가 있다. (연달아 슬레이트 지붕의 별채도 있다.) 게다가 넓은 마당도 있으니 본채가 지금보다 훨씬 뒤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이중섭 거주지 사진을 보자. 초가집을 시계방향으로 40도가량 되돌려 뒷담에 갖다 붙이면 마당이 보일 것이다. 그 마당에 들어서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팽나무 밑으로 멀리 섶섬이 보일 것이다. "여기는 이중섭 화백이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그렸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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