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로 유명해지며 바다 안팎 훼손 가속화
‘반농반어’ 뚜렷하지만 바다 가능성 포기 안해

봄 바다는 소리로 온다.

지천으로 흐트러진 향기에 취하는 뭍과 달리 봄 바다에서는 유난히 귀가 예민해진다.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제주의 멋을 찾아오는 사람들에 치여 그 흔한 파도 소리도 저만치 멀어져 있다.

봄 바다는 다르다.

어디서건 파도 소리를 피할 수 없다. 조용조용 모래 해변을 훑어 내리는 소리 옆으로 찰싹 찰싹 장난스레 검은 현무암의 뒤통수를 두드리는 소리가 스쳐간다.

바다에 취해 있다보니 시나브로 사람은 뒷전이다. 아니 인적이라고는 그물을 손질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 전부였다.


# 비취빛 바다의 어두운 그늘

함덕 바다는 도심에서 가까운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특성 때문인지 오가는 사람 누구나 잠깐 발을 멈추고 바다에 취한다.

멀리 해안선은 쪽빛이지만 해안으로 다가올 수록 바다는 비취빛을 발한다. 패사층이 만들어낸 빛깔이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은 그러나 그만한 대가가 치러졌다.

지난 1980년대부터 민박과 호텔 등 관광시설이 하나둘 들어섰고, 찾는 사람도 늘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기 전 일이니 별다른 제한조건이 없었다. 오수나 생활용수가 거침없이 바다로 흘러들었고 바다 어장은 순식간에 훼손됐다.

어장 절반을 해수욕장에 내어 준데다 바다 밭까지 허옇게 변하면서 말 그대로 잠녀들이 들 수 있는 바다는 턱없이 좁아졌다.

어장의 반은 모래밭, 나머지 반은 전작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자갈밭.

잠녀들은 조금씩 바다로 향하던 발을 끊었다.

함덕에서 헛물질을 하는 잠녀는 줄잡아 30여명. 40대 1명과 50대 8명 등 젊은 해녀도 있지만 70대가 14명이나 되는 등 60대 이상이 23명, 역시나 나이를 먹었다.

이중 10명만 함덕 출신이고 나머지는 결혼 등을 통해 함덕에 온 잠녀들이다.

전복 종패를 뿌린 소여에는 4㎝짜리 종패를 뿌려 1년 정도 키운다. 2년전 2만마리를 뿌렸지만 거둔 것은 30%정도가 고작이다.

1년 소라 수확량이 2만㎏ 안팎. 해적생물인 성게가 많이 없는 대신 천초(지난해 30㎏짜리 300포대 수확)나 미역 같은 먹이가 있어 소라 할당량을 채우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 바다를 떠나 살 수 없는 사람들

나지막하고 완만한 서우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유채가 흐드러질 즈음, 허리에 노란 띠를 두른 봄처녀 같다.

함덕 포구에 낯선 풍경이 보인다. 야외 목욕탕처럼 보이는 것을 김운호 어촌계장은 “멸치를 삶는 통”이라고 했다.

함덕에는 다른 바다와 달리 크기가 작은 멸치가 많이 난다고 했다. 매년 5월 중순쯤이면 멸치를 삶고 자연건조하는 것이 일품이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즉석에서 판매도 이뤄진다. 아는 사람이 아니면 ‘모르는’ 일이다.

김 어촌계장 역시 멸치잡이 배를 가지고 있다. 5~8월이 멸치잡이 시기다. 초저녁에 시작해 새벽 어스름에야 그물에서 손을 놓지만 멸치 작업은 계속된다. 예전에는 가마솥에 넣어 삶아 말렸지만 지금은 포구에 2~3대 설치된 스테인레스 통으로 작업을 한다.

‘옛날 함덕에서 배추를 키울 때 모종 당 멸치를 세 마리씩 거름으로 넣어줬다’는 말이 생각난다. 허투루 하는 말은 아닌 듯 싶다.

바다가 좁아졌다고 바다에 대한 의존도까지 적어지는 것은 아니다. 해수욕장은 마을에서 관리하지만 나머지 바다는 어촌계의 몫이다.

함덕어촌계 사무실의 많은 부분은 소라 저장고가 차지하고 있다. 크기가 작은 소라를 키우기도 하고, 풍어제 등 쓰임에 맞춰 잡은 소라를 보관하는 용도다.

바다는 언제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사람들은 계속 다른 자리를 찾는다. 눈에 보이는 바다는 즐겁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다는 조금씩 사람들을 밀어낸다.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멀어지는 것이다.


‘발로 딛는 잠녀들의 삶’ 다음 이야기는 제주시 북촌어촌계이며, 관련 내용은 해녀박물관 홈페이지(www.haenyeo.go.kr)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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