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본 섬, 그리운 바다 (제주시 추자어촌계-상추자)
![]() | ||
| ▲ 대서리 인근 해녀 물질 지역. 추자지역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 물살이 세다 | ||
#추자도 이야기
'섬' 사정은 들어야만 아는 것은 아니다. 뱃길을 가르고 달려 빠르면 1시간, 늦어도 2시간 10분이면 하추자도 여객선 터미널에 닿는다.
추자도는 추자나무 숲이 무성한 탓에 추자도라고 불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보다 더 유배의 섬으로도 알려져 있다. 바다만큼 순탄하지는 않았다. 1896년 전남 완도군으로 편입됐다 1910년에 제주도에 편입된 이후 1946년 8월 1일 제주도제 실시로 북제주군에 소속됐다. 지금은 제주시 추자면이다.
지난해 섬 속의 섬 추자도에서도 농작물을 재배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한때 벼 재배도 했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는 섬에 혼자 사는 노인들을 위해 농작물 재배를 한다는 것이다.
농작물 재배가 중단된 지 30년이 넘은 섬에 어쩌면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겠다는 의지인지도 모르겠다.
![]() | ||
| ▲ 최성열씨 (영흥 어촌계)가 자신의 물질 지역을 설명하고 있다 | ||
추자도는 비교적 바다어장 관리가 잘 된 편이다. 나이가 많은 잠녀들이 물질을 그만두고 있지만 아직까지 130명의 상시 잠녀가 바다밭을 일구고 있다.
마을마다 조금 차이가 있지만 50~60대 잠녀가 96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40대 잠녀는 3명이 전부. 누가 등을 떠미는 것도 아닌데 이곳 잠녀들 역시 하나둘 바다를 떠나고 있었다.
#대서리 이야기…횡간도 그리고 최영장군 사당
상추자도에는 본섬인 대서리와 영흥리가 포함돼 있다.
추자도라고 섬 하나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상·하추자도와 횡간도, 추포도 등 4개 유인도를 포함해 42개나 되는 섬이 하나의 섬을 이룬다. 이중 39개 섬에서 조업을 한다.
대서리의 상시 잠녀는 23명.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가까운 작은 섬을 바다어장으로 삼아 물질 작업을 한다.
대서어촌계에서는 대서리 지선 어장과 함께 횡간도와 수령섬·낙생이·악생이·공여·노린여·문여·검은가리·오동여·직구도 등을 관장한다. 열두물에서 네물, 보통 때는 열서물에서 서물까지 작업하고 부속섬은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작업을 한다.
상군잠녀 5명이 연 30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 정도로 소라 물건도 좋고 겨울에는 몸을 봄에서 초여름까지는 톳 수확을 한다.
횡간도 작업은 조류가 세 쉽지 않다. 지난해도 상시 잠녀 중 4명만이 겨우 작업을 했다. 양식장인 후포에는 전복과 홍해삼 종패를 뿌렸다.
![]() | ||
이곳에는 특히 묵호의 난 진압을 위해 제주에 왔다가 풍랑으로 추자도에 머물며 섬 사람들에게 어강편법을 가르쳐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도록 도왔다는 최영장군 사당이 있다.
상추자 풍어제의 일환으로 치러지는 최영 장군 사당제는 영흥리 뒷산(산신당)의 산신제를 시작으로, 중심이 되는 본제인 추자초등학교 윗편의 사당에서 치러지는 장군제와 바다로 내려와서 치르는 해신제의 순으로 진행된다.
대개는 음력 2월 15일을 전후하여 택일, 제를 지낸다.
#영흥리 이야기…해남(海男), 사수도 그리고…
영흥리에는 사수도가 있다. 전라남도 완도와 소유권을 가지고 아직까지 분쟁중인 곳이다.
사수도에는 '지킴이집'이 있어 잠녀들이 물질 작업을 할 때 쉬는 공간으로 활용되지만 '외침'에 바다 자원과 동백나무 등을 지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
외침이라는 말이 궁금해진다.
사수도 물질을 하는 잠녀들을 실어 나르는 일을 수년째하고 있는 원용순씨(76)는 "수시로 뭍에 올라 동백나무를 불법으로 채취해 가고 스킨스쿠버 교육을 한다며 십수명씩 무리를 지어 와서는 물건을 쓸고 가버린다"며 "사수도 물건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바다가 황폐해서가 아니라 무분별한 불법 채취 때문"이라고 혀를 찼다.
사수도는 1960년대 이후 이곳 추자초등학교 운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수도에서 물질을 하는 잠녀들은 2년 기한으로 입찰을 거쳐 일정한 돈을 내고 사수도 채취권을 얻는다. 영흥리와 대서리 잠녀 누구라도 사수도에서 작업을 할 수 있지만 지금은 5명이 사수도행 배를 탄다.
오가는데 힘이 드는 데다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달에 두 번 작업 가는데 사리 물때에 주로 가며 겨울 때는 조금 물때를 이용한다. 배를 빌어서 가면 한번 오가는데 70만원의 많은 돈이 들어 물과 음식을 싣고 가서 7일간 작업을 하고 돌아온다.
영흥리에서 상시로 작업을 하는 잠녀는 19명. 이중 사수도 작업까지 하는 이들 몇 안되는 무리에 유독 눈에 띄는 이가 있다.
해남 최성열씨(43)다. 누나·어머니뻘 되는 잠녀들 사이에서 제법 능숙하게 작업을 한다. 최씨가 물에 들기 시작한 것은 어촌계원 자격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17살이었던 최씨는 당시 돈 5만원을 내고 가입신청서를 냈다. 천초 작업부터 차근차근 바다와 인연을 맺은 최씨는 이제 바다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아들네집 고동은 쓰기나 쓰고 딸네집 물먹으믄 달기나 달다"
여성 중심의 문화를 구축했던 추자도의 특성을 잘 드러낸 옛 말에 최씨는 어쩌면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발로 딛는 잠녀들의 삶' 다음은 제주시 추자어촌계-하추자입니다. 관련 내용은 해녀박물관 홈페이지(www.haenyeo.go.kr)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