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딛는 제주잠녀의 삶-제주시 구좌읍 한동어촌계

▲ 한동어촌계

한때 700명 이르던 잠녀수 지금은 79명 남아, 60대 이상 고령이 절반 넘어
아이들 부대끼던 바다는 사라지고 물건도 줄어…기록 작업 통해 흔적 남기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에게 바다를 안고 컸다.

둘만 모여도 바다로 향했다. 도심 아이들에게 PC방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바다는 놀이터이자 삶을 배우는 학습장이었다.

지금 아이들은 바다를 체험하러 다른 지역 해수욕장에 가고, 수영장을 찾는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보태져 쪽빛으로 빛나던 바다에는 이제 푸른 멍자국이 즐비하다.


△바다 의존도 약해도, 기억하려는 노력 강해

바다는 늘 그렇듯 고즈넉하다. 해수욕장이라도 있으면 피서객들로 북적이겠지만 이곳 바다는 해안도로를 오가는 차가 눈에 뛸 뿐 인적은 뜸하다.

물질을 하는 잠녀들보다는 쪽파 말릴 자리를 표시해둔 돌맹이가 더 흔하다.

한동리에는 물질만 하는 잠녀는 없다. 쪽파며 마늘이며 감자, 당근까지 뭍 밭과 바다 밭을 오가며 쉴 틈이 없다.

부지런히 손발을 놀리지만 바다가 내주는 것은 해가 갈수록 인색해진다.

지난해 소라 수확량은 1만4000㎏ 남짓. 천초 3만7350㎏·톳 2210㎏에 전복이며 오분자기 같은 패류도 망사리에 담겼지만 잠녀들이 연간 벌어들이는 수익은 3억원 정도다.

마을지 ‘둔지오름’에 따르면 194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동의 잠녀 숫자는 700여명이나 됐다. 96년 12월 현재 늘상 물질을 하는 잠녀가 96명이고 가끔 잠수질을 하는 사람이 170여명이라는 기록도 있다.

그랬던 잠녀의 수는 지금 79명으로 줄었다. 이중 40대가 4명, 50대가 35명이다. 60대 잠녀가 34명, 70대 노령 잠수도 6명이나 된다.

우미(우뭇가사리의 제주말)를 캐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바다밭을 셋으로 나눠 하루씩 교대해가며 바다로 나갔었다. 첫 채취를 ‘초불우미’ , 그 다음은 ‘두불우미’, 또 다음은 ‘막물우미’라고 부르며 구분했던 것이 지금은 다 옛일이 됐다.

먼 바다까지 53곳이나 되는 바다밭 이름을 일일이 기록으로 남겨둔 것이 눈에 띈다. 바다밭은 잠녀들의 돈줄이나 마찬가지여서 딸에게, 며느리에게 살짝 알려두는 것이 전부였다.

잠녀탈의실이 있는 비릿질에서 너븐여까지가 잠녀들이 주로 작업하는 곳이다. 너븐여 동쪽에는 2m폭으로 30m 정도 담을 쌓았다. 톳과 우미가 많이 나는 포인트인 탓에 일부러 바닷풀을 운반하는 길을 만들었다. 예전에는 등짐으로 지고 나르던 것이 지금은 차량을 이용하는 게 달라진 점이다.

△아이들도 떠난 바다…전설은 남아

2003년까지만 해도 이곳 아이들은 마을 서쪽 서알 근처에서 여름을 났다. 마을 초·중학교의 여름 임해훈련 장소로도 곧잘 이용됐다. 지금은 대형 버스가 동원되고, 아이들은 바다를 느끼기 위해 마을을 떠난다.

양어장이 하나둘 문을 열고, 해안도로가 들어서면서 바다는 예전 모습을 잃었다.

그래도 바다는 남아있다. 시체가 많이 떠올라 행원에 넘겨준 ‘쇠죽은이’며 ‘더벵이물’ 이야기도 그랬다.

한동과 행원 마을 경계 바다에선 해조류가 많이 난다. 예전에는 돈이 안되던 것이지만 지금은 제법 수입이 짭짤하다.

죽은 이의 시체가 많이 떠오르는 경계 바다(더벵이물, 쇠죽은이)를 놓고 마을간 책임 미루기가 계속되던 차에 400년 전 범천총이라 불리던 한동리 사람 김용우가 “일로 이렌 너네덜 바당이니 끊어 앗아라”하고 행원 쪽에 시체 처리를 넘기면서 마을간 희비가 엇갈렸다.

한동에는 또 ‘굇눈’이라고 불리는 잠녀들의 물안경 제작 역사도 남아있다.

‘눈’이라고 부르는 잠녀들의 물안경은 크게 족은눈과 큰눈, 엄젱이눈과 굇눈으로 구분된다. 이중 엄젱이눈은 애월읍 신엄리와 구엄리, 중엄리 쪽에서 제작 전승됐고, 굇눈은 이곳 한동에서 이어져 온 것으로 알려진다.

아직도 전승기술자가 남아있는 등 무형문화재 지정 등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제주 생산기술사중 ‘눈’의 비중을 감안하면 당연하게 들린다.

기억 속의 바다는 옛 모습 그대로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구젱이여며 바른알(개), 조픈모살, 반착갯담, 가운딧머들, 돗시린개 같은 정겨운 이름들은 남아있지만 바다는 이미 예전 그 바다는 아니었다.

‘발로 딛는 잠녀들의 삶’ 다음 이야기는 제주시 구좌읍 하도어촌계이며, 관련 내용은 해녀박물관 홈페이지(www.haenyeo.go.kr)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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