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의 대비 통해 '띠' 강조… 가족의 성스러움 표현해

 

   
 
  이중섭 작 「가족」41.6×28.9㎝ 종이에 유채 1953년(37세)  
 

중섭이 1953년 초가을, 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있다.
"우리 성가족(聖家族) 넷이서 단란하게 손에 손을 잡고 힘차게 대지를 밟으면서 정확한 눈으로 모든 것을 분명하게 응시합시다."

이 편지의 구절을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 「가족」이란 그림이다. 다시 말해서, 「가족」은 이중섭이 자신의 가족이 이런 성가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린 것이다. (※ 오른쪽 그림 「가족」 참조. 이중섭 그림 중에는 '가족'이란 명제를 가진 그림이 여러 점 있는데, 이 「가족」은 지금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해후 57'展에 전시되어있다.)

그림을 살펴보자. 이중섭과 마사꼬와 두 아들(태현, 태성)이 그려져 있다. 이중섭은 지게를 지고 노란 꽃다발을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비둘기처럼 생긴 하얀 새가 마사꼬의 머리 위에 앉아있다. (※ 이 새는 우리 눈에 보이는 실제의 새가 아니다.

마사꼬의 '영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새는 이중섭이 바치는 사랑의 꽃다발을 보며 행복해하고 있다. 마사꼬는 손가락 끝으로 새의 꼬리부분을 가볍게 잡고 있고, 다른 손으로는 태성의 손을 붙들고 있다. 태성은 커다란 물고기를 가슴에 안고 낑낑댄다. 화면 맨 위에는 태현이가 그려져 있다.

여기에 그려진 인물과 사물들 중에서 우리 눈에 가장 잘 들어오는 것은 어느 것인가. 물론 이제는 '꽃다발'과 '비둘기'도 눈에 잘 들어올 것이다. 그렇지만 그보다도 더 잘 눈에 띄는 것은 기다란 '띠'이다. 이 띠가 눈에 잘 띄는 이유는 대비(對比)가 강하기 때문이다.

(※ 이 띠의 색깔인 세룰리안블루는 이 그림의 주조색(主調色)인 옐로오커나 시에나 계열의 색깔과 보색대비를 이루고 있다. 또 가늘고 긴 띠는 인물의 여러 부분에서 보이는 동글동글한 얼굴, 가슴, 궁둥이 등과 형태대비를 이루고 있다. 조형예술에 있어서 같은 시각적 요소들끼리 서로 비슷하게 어울리는 것을 '조화(harmony)'라 하고, 그 반대로 서로 충돌하는 것을 '대비(contrast)'라 한다.)

그렇다면 이중섭은 대비를 이용해서 왜 이 띠를 우리 눈에 잘 보이게 그린 것일까. 아니, 그보다도 먼저, 도대체 이 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림을 보면, 날개 달린 태현이가 공중에서 이 띠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다. 엘 그레꼬 작 「목인예배」(※ 오른쪽 그림 참조)에서도 천사가 띠를 받쳐 들고 있다. 이중섭과 마사꼬에게까지 드리워져있는 이 띠는 '천사의 띠'인 동시에 '선녀의 옷깃'이기도 하다. 성가족의 성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눈에 잘 띄게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엘 그레꼬 작 「목인예배」 319×180㎝ 1600년경(59세경)  
 

그런데 이 그림에는 한 가지 놀라운 점이 숨어있다. 그림을 보면 태성이가 커다란 물고기를 가슴에 안고 낑낑대고 있다. 당시 이중섭은 태성이를 철부지 욕심꾸러기로 보았을까. 어떻든 마사꼬는 태성이가 넘어질까 봐 손을 붙잡아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2005년 이중섭 위작사건을 잠깐 생각해보자. 이중섭 & 박수근 미공개작 전시준비위원회가 전시할 그림들을 도쿄에 가지고 가서 마사꼬와 이태성에게 보여주었을 때 마사꼬는 "색깔 면에서 남편 그림이 아니다"라고 했다.

반면에 아들 이태성은 "아버지 그림이 맞다"고 했다. 잘못된 태성을 마사꼬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던 당시의 모 방송사 영상과 이 「가족」의 형상이 너무나도 똑같지 않은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말한 이중섭의 편지에는 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돈 걱정 때문에 너무 노심(勞心)하다가 소중한 마음을 흐리게 하지 맙시다. 돈은 편리한 것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하오. 중요한 것은 참 인간성의 일치요. 비록 가난하더라도 절대로 동요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부부의 사랑 그것이오. 서로가 열렬히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면 행복은 우리들 네 가족의 것이 아니겠소."

이중섭이 바라던 성가족은 바로 이런 것이었는데, 이태성은 2005년 3월 22일 서울옥션 초청의 기자회견에서 「물고기와 아이」는 어머니(마사꼬)가 50년 동안 간직해 온 작품이라며 거짓말을 했다. 이중섭 작품 가격이 호당 5000만 원을 넘는 지금과 같은 국내미술시장에서 왜 위작이 나오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위작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문제는 예술을 예술로 보지 못하고 돈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슴 아픈 일이다.

   
 
  엘 그레꼬 작 「수태고지」320×186㎝ 1955~1600년(54~59세)  
 
필자는 지난 주 44회 글에서 「활 쏘는 남자」를 해설하면서 이중섭은 1941년에 이미 현대회화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현대회화는 구도가 어떠니 색채가 어떠니 하면서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논하는 그런 식의 미술이 아니라고 했다. 화가가 제시한 그림을 매개체로 삼아, 감상자가 자신의 속 안에다 자신이 좋아하는 식으로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현대회화라고 했다.

이중섭이 그린 이 「가족」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따위나 보여주려고 그린 것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그림의 구도는 답답하리만큼 변화가 없다. 그런데도 이 그림을 해설함에 있어서 "구도의 완벽성"이니 "색채의 뛰어난 조화"니 운운한 것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시각적으로도 잘못 보았을 뿐만 아니라, 이중섭 그림을 그렇게 시각적인 요소로 평가해서도 안 된다. 그러한 식의 해설은 엘 그레꼬의 1600년경 그림에나 어울릴까.

예술의 사회적 기능은 사회에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벽을 장식하는 것이 아니다. 이중섭 그림을 문학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는 말이다.

1970년대 서양의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 이 이중섭 그림을 많이 닮았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그만큼 이중섭은 시대를 앞서갔던 전위 화가였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우리들 눈에는 이중섭 그림이 그다지 이상해 보이지 않지만, 밀레의 「만종」같은 자연주의 그림이나 한국전쟁 후 미국을 통해서 들어온 추상화만이 그림인 줄로 여기던 그 시대 사람들은 이중섭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미쳤다고 했던 것이다. 다음 회에는 「가족」과 관련된 작품으로서 「길 떠나는 가족」과 「돌아오지 않는 강」을 해설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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