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제주지법 303호 즉결심판 법정…무임승차·도박·무인단속 이의신청 등 다양
생계형 즉심 적은 대신 최근 ‘선처 호소’늘어, ‘ 개인 사정’놓고 법관·경찰관도 고심

‘힘들다’는 말이 버릇처럼 쏟아지는 요즘 제주지방법원 303호 즉결심판 법정 곳곳에 서민들의 한숨이 배겨 있다.

경범죄로 피고인석에 선 사람들이나 벌금을 부과하는 법관의 표정 모두 밝지는 않다. 팍팍한 생활에 법원의 문까지 두드려야 하는 서민들의 겨울만큼 이의신청을 받고 즉심에 따라나온 경찰관 역시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즉결심판(즉심)은 형사사건 중에서 2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등 가벼운 죄를 처리하는 재판이다.

제주지방법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평균 3~4건, 많을 때는 6~7건 정도 재판을 한다.
무임승차, 무전취식, 도박, 광고물 무단부착 등이 주된 사건이다.

19일 역시 무임승차와 도박 혐의로 5명이 법정에 섰다.

60대 최모씨는 술에 취해 막무가내로 택시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실랑이를 벌이다 법정에까지 왔다. 두 차례에 걸쳐 최씨가 지불하지 않은 택시요금은 3만원이 채 안됐지만 최씨에게는 이날 5만원씩 두 번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지난 16일 함께 전세버스 업체에서 일했던 인연으로 함께 저녁을 먹자고 모였던 30~40대 4명도 이날 법정에 섰다. 죄명은 도박죄. 도박죄는 형법상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법정은 처음인지 입장 때부터 입이 무겁다.

일명 ‘훌라(포커 게임의 일종)’를 했던 이들의 판돈은 줄잡아 30만원 안팎. 이상훈 판사는 ‘동종 전과’가 없고 ‘판돈이나 시간이 중해 보이지 않는다’며 이들에게 각각 5만원의 벌금과 압수된 현금과 카드 모두를 몰수할 것을 판결했다.

지난달 26일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 안내를 하던 사람의 수신호에 따라 무심코 신호위반을 했던 박모씨(35)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법의 기준은 엄정했다.

바이크 동호회원들의 교통 지시를 교통경찰로 ‘착각’했다고는 하지만 잘못은 잘못이라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이 판사는 “억울한 입장은 이해하지만 본인이 신호 위반을 인정하는 만큼 범칙금은 물어야 한다”며 “범행전력이 없는 점 등을 감안해 범칙금 액수대로 벌금 6만원을 선고한다”고 판결했다.

제주에서 광고지 무단부착, 노점, 차량 번호판 가리기 같은 ‘생계형’ 즉심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불경기가 계속되면서 “벌금 낼 돈이 없다”고 선처를 호소하는 일이 적잖다는 게 담당 경찰관의 귀띔이다.

판사의 처분이 내려지기까지는 한 사람 당 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짧은 시간 안에 정확히 판단해야 하는 즉심에선 때로는 피고인의 개인 사정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처벌하자니 너무 가혹한 것 같고, 무작정 봐주자니 법을 우습게 여길 것 같아 판사의 고민은 늘어간다.

올들어 19일까지 제주지법에 접수된 즉심은 373건. 한 주 평균 7.9건이 접수되지만 실제 법정에 들어서는 사람은 이중 절반 밖에 안 된다.

즉심 법정 앞에서 만난 한 경찰관은 “이의신청을 받고 즉심을 결정하는 과정에도 별의별 사연이 다 있다”며 “슬슬 푼돈 도박이나 무임승차나 무전취식 등이 늘어나는 시기지만 올해는 사정이 안 좋아 벌써부터 맘이 안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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