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잠녀를 만나다’ 프롤로그

1부 ‘인류문화유산 제주잠녀’ 2부 ‘발로 딛는 잠녀들의 삶’ 마무리
3부 ‘잠녀를 만나다’ 시작…전승 보존해야할 ‘가치’확인하는 작업


바다, 어머니로 상징되는 ‘잠녀’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심오한 가치를 지녔다.

숨비소리에 세월을 싣는, 제주를 대표하는 여성으로만 접근하는데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지난 2005년 6월 창간 15주년에 맞춰 ‘인류문화유산 제주잠녀’로 그 가치를 인정하는 작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햇수로 5년째다.

처음 1년에 걸쳐 잠녀의 ‘문화유산으로의 가치’(1부)를 이끌어낸 데 이어 지난 2006년 7월부터 시작된 도내 어촌계 탐방(2부-발로 딛는 잠녀들의 삶)이 2년여만에 간신히 마무리됐다.

그리고 이제 사라지고 있는 ‘잠녀’를 기록하고 가치를 인정받는 작업을 시작한다.


#10년 후면…

‘발로 딛는 잠녀의 삶’을 시작하며 서두에 썼던 표현은 다름 아닌 ‘사라지고 있다’였다.

실제 현장에서 만난 잠녀들 조차 10년 후를 장담하지 못했다.

숫자상으로 젊은 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물질을 하지 않는 잠녀는 더 이상 잠녀라 할 수 없다.

직접 타 지역과 바다 건너 일본에 터를 잡은 잠녀들을 찾아가 만났지만 그것은 단편에 불과하다.

삶을 위해 생명의 위협을 안고 제주를 떠나 물질을 했던 잠녀들에 대한 기억은 이제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터다.

지난 6일과 13일 각각 한림읍 협재리와 구좌읍 하도리에 생존해 있는 독도 잠녀들과 만났을 때도 그런 이유에 반가움보다 안타까움이 앞섰다.

함께 독도까지 가 물질을 했던 이들 중 대부분이 유명을 달리했다.

살아있는 잠녀들 중에도 온전히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벌써 50년은 지난 일”이라는 푸념 아닌 푸념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직소 퍼즐을 맞추다

각자의 기억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하나 둘 모아지며 큰 그림 하나가 만들어진다. 서로 ‘먼저’를 주장하는 동·서쪽 잠녀들의 연결고리는 사람의 손이 닿아 모습을 갖춘 ‘물통’과 ‘임순경’이다.

한 쪽은 자연상태 그대로 물이 고이길 기다리느라 몸도 씻지 못했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물만은 부족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주 출신으로 제주 잠녀들에게 유난히 잘해줬다는 ‘임순경’은 하도 출신으로 독도 물질을 간 아내와 젖먹이 어린아이를 동반한 상태였다.

그렇게 맞춰가다 보니 직접 가보지 않더라도 당시 독도의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다.

잠녀들을 만나는 일을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속도를 내야한다는 의지 역시 강해진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을 기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것 보다 지켜 유지하는 쪽으로

잠녀들의 흔적을 찾아내는 작업은 어제를 기억하는 것보다 ‘어떻게 전승 보존할 것인가’의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더 의미가 있다.

유네스코 무형유산 협약 역시 단순한 문화적 가치보다는 전승보존운동 등에 의미를 두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해녀(아마)’문화를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 역시 이의 무형유산 등재를 위한 물밑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잠녀들과 만나 그들을 기억하는 우리와 달리 마츠리(축제)나 노시아비(전복장식) 등 문화적 접근에 치중하고 있는 등 방향이 다르다.

역시 학자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일단 국내 문화재법 등에 이를 지정하고 보존하는 등의 움직임은 아직까지 없다.

제주해녀박물관 좌혜경 박사는 “궁극적으로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접근 방식에서는 차이가 많다”며 “일본에서는 제주 잠녀에 대한 연구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반해 지역적 여론은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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