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이 만난 사람] 한문학자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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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학자 정민 1960년 충북 영동 출생. 한양대 국문과,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현재 한양대 국문과 교수. 한양대 한국학연구소 동아시아문화네트워크 연구단 단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비슷한 것은 가짜다」, 「한시미학산책」,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꽃들의 웃음판」, 「다산선생지식경영법」, 「죽비소리」, 「내가 사랑하는 삶」, 「마음을 비우는 지혜」, 「스승의 옥편」, 「탐라문견록」 등 수많은 대중서를 썼다. 특히 무언가에 미친다는 뜻의 '벽(癖)'이란 말은 18세기 지식인의 한 경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나온 「미쳐야 미친다」는 4만권이상 나간 베스트셀러가 됐다. | ||
무엇이 그렇게 그를 탐라 뱃길까지 이르게 했을까. 지난해 세상에 나온 「탐라문견록」을 본 제주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제주표류사에 대한, 제주도로서는 귀한 발견이었다. 그 책을 쓴 이는 「미쳐야 미친다」로 독자들을 사로잡은 우리시대의 저술가 정민. 옛글을 읽다가 쾌재의 문장을 만나면 너무 기뻐 방안을 왔다갔다한다는 사람, 날 것을 찾아낸 다음 갈고 다듬어낸 다음에야 세상에 내보인다는 사람. 조각조각 모아낸 원재료들을 그는 새로운 눈으로 응시한다. 그만큼 제련된 그의 글은 재밌다. 술술 읽힌다. 불광불급. 한때 멍하게 서 있는 사람들에겐 '미쳐라'의 충격을 던진 학자의 연구실. 다소 비좁았다. 빼곡하게 이중으로 채워진 3000여권의 장서. 차의 향기, 젊은 그와 숨결을 함께하고 있었다. 삶 또한 그러하거늘. 자, 미친듯한 열정 없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것인가.
한문학자 정민. 그는 지금 문화사 연구자로 이동하고 있다. 학문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그는 문헌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의미있는 그런 자료들이 말하는 진실을 외면할 순 없지 않나하는 생각에서다. 그의 관심사는 넓고 깊다. 감귤, 차, 새, 호랑이 등. 우리나라 최초의 차전문서 「동다기(東茶記)」를 다산 정약용이 썼다는 풍문이 잘못된 것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진실에 관한 문제를 조금 이야기하자면 거기에는 문학이나 역사나 이런 경계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어지는 거죠."
병원카트에 꽂아놓은 파일 자료첩. 주제별로 정리됐다. 글을 쓸 땐 쉽게 뽑아서 쓸 수 있겠다 싶다. 제주사람의 눈엔 책장에 꽂힌 「제주도실기」, 「남환박물」, 「지영록」 등 제주도가 확 들어온다.
「탐라문견록」에 이어 지난해 그는 1813년 제주도 양제해 모변사건을 이강회의 '상찬계시말'에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고 논문을 발표했다. 어떻게해서 그는 제주바다에 발을 들여놓고 있을까.
# 양제해 사건 18세기 조선지식인 경영 찾다 주목
18세기는 매력적인 그의 현장. 당시 조선지식인이 경험했던 정보화사회가 21세기 정보화사회와 다를 것이 없다고 믿는다. 전무후무한 탁월한 지식편집자 다산은 과연 어떻게 지식을 경영했을까. 양제해에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쓰는 과정에서였다.
"2004년 경, 다산의 제자 이강회 작업들이 신안군에서 있었어요. 관련 자료들 죽 보다가 「탐라직방설」을 보는데 뒤엣 것이 재밌더라구요. 제주도 양제해가 누군지 검색을 했더니 책의 내용과 정반대로 나오는 거예요.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고 봤죠. 관변기록이 흥미롭죠. 양제해 공초기록들이 있는 「일성록」, 이런 자료를 보면 관련자 서른 몇 명을 심문한 기록이 나와 있어요. 다 번역했는데 700매가 넘어요. 날자료만 가지고는 안되니까 쓴 자료들을 정리하고 묶어서 책으로 낼 생각입니다."
그가 양제해에서 본 것은 무엇일까. "양제해가 제주도 자주국가 건설에 대한 히어로, 마치 돈키호테인 것처럼 왜곡 되었어요. 관변의 조작으로 역사가 죽인 것을 거꾸로 해석하게되면 양제해를 두 번 죽이는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진실은 과연 어디에 있나 하는 것이죠. 어떻게 사실이 은폐되어서 엉뚱한 것이 진실로 둔갑이 되는가. 둔갑된 진실이 인간의 사고를 어떻게 왜곡시키고 변화시키는가하는 문제들이죠. 이런 폭력들은 지금도 지속된다는 주제들로 연결되면 현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죠. 권력에 의해서 왜곡되는 진실의 문제는 지금도 있잖아요. 장자연이 죽어봐야 그냥 묻혀버리는 거잖아요."
당시 이강회가 기록으로 남길 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는 생각한다. 언젠가는 양제해를 위해서 누군가 신원해줄 것을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그 기록을 보는 정민 자신도 그 역할을 자신이 좀 감당할 수 있었으면 했다. "양제해를 신원하는 일을 제주도에서 한다면 의미있는 일이 되겠죠."
# 「탐라문견록」 제주도 표류관련 기록 많아
「탐라문견록」으로 돌아가자. 「탐라문견록」 역시 총제적이고 입체적인 그의 학문적 관심사에서 출발한다. 몇 해전 코리아 이미지를 갖고 얘기하는 네덜란드 국제학술회의에서였다. 표류를 연구한다는 한 미국학자를 만났다.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전 방대한 조선인들의 표류사를 연구했고, 미국학자들도 그렇게 연구하고 있는데 너희는 그런 자료 좀 없니? 좀 알려달라는 거예요. 미국학자들이 그런 것을 연구한다는데 정작 우리나라 한문학한다는 사람이 그런 자료가 금시초문이라고 말할래니 하도 기가막히잖아요."
우리나라에도 그런 기록이 있을 거다 들어와서 훑다보니 「탐라문견록」이라는 목록 하나가 들어왔다. 그것을 집요하게 찾기 시작했다. 촘촘하고 치열한 그의 열정을 읽게하는 대목이다.
"타이틀이 다른 제목으로 돼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른 거예요. 연암이 기획한 「삼한총서」중의 하나가 「탐라문견록」이었어요. 내 전공하고 관계없이 너무 귀한 자료고 그래서 안되겠다해서 다음날부터 번역을 시작했죠. 표류기가 거기에 들어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제주도에 관한 정보들이 그렇게 많았죠. 그 책을 보세요. 제주도 사람들이 표류할 때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우리 제주도 사람 아닌거야'로 담합하는 겁니다. 그 표류기를 보면 우리가 보이지요. 유구태자 살인사건도 안남국 태자란 주장도 있어요. 어떤 사람은 상인이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 문제도 제가 탐구해보려고 하는 주제예요. 고상영은 베트남에 가서 너 우리 태자 죽였지하잖아요. 그러면 조선시대부터 헛갈려요."
그는 「탐라문견록」 서문 끝에서 그렇게 썼었다. "앞으로 제주도에 관한 작업들을 계속할 것이다." 그때부터 「탐라직방설」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제 표류관련 논문 3편을 썼고, 두편 정도 더 쓰면 책으로 엮어낼 생각이다. "「탐라문견록」 앞쪽의 이야기는 이전의 탐라기록들을 언어 풍속 복장을 정리한 것이고, 그게 에디터죠. 읽기쉽게 재편집해서 정보를 알아먹기 쉽게 요리를 해줘야 경쟁력있는 시대에 할 일이죠."
# 지금도 영향 미치는 연암…다산은 지혜로운 스승
그를 매혹시킨 정신적인 스승은 연암과 다산. 지금처럼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에 주목하게 된 것도 그들을 만나고서였다. "연암을 만나고 나서 제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연암은 제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연암은 사고의 방법, 문제를 들여다 보는 눈을 주죠. 정신을 번쩍번쩍 들게 하는, 정말 파워풀한 스승이죠. 다산이 저에게 준 것은 인간의 성실성과 방법에 관한 문제죠. 다산은 지혜로운 스승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도 다산이나 연암이나 제목만 배우는 우리 교육현장이 못마땅하다.
"맥락으로 가르쳐주면 아이들이 충격을 받고, 각인이 되고, 방법을 익히게 됩니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야. 왜 좋은 것인지를 가르쳐줘야지 좋다고만 하면 됩니까?"
지난 2월 대만 중앙연구원 간담회자리에서도 그랬다.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를 두고 현대 중국학자들이 정말 놀랍다는거예요. 문장도, 안에 담긴 사고도 정말 대단하다는 거지요. 그 대단하다는 것을 「양반전」 「호질」이니 현실풍자, 이용후생 맨날 이런 얘기만 하는데 우린 사실 제대로된 「열하일기」 번역도 없어요."
그가 내 뒤편을 돌아보란다. 서고에 꽂힌 두터운 3권의 「열하일기」. "50년대말 북한 사람이 번역한 거예요. 우리가 판권 계약하고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유일한 완역 열하일깁니다. 얼마나 한심합니까."
# 글쓸때 절제 중요…불필요한 형용사·부사 질색
그의 책은 쉽고 간결하다. 빠르게 읽힌다. 읽히는 속도만큼 맛이 깊다. 아무 때나 책을 펼쳐도 한 문장을 건질 수 있다. 그의 글쓰기는 예민하고 까탈스럽다. 그에게 좋은 글쓰기란 어떤 것일까.
"제 박사논문이 「조선후기 고문론 연구」예요. 문장이론이죠. 조선의 과거시험이란 것이 논술시험 아닙니까. 논술을 갖고 500년 인재를 뽑았던 나란데 수험생들을 위한 글쓰기 이론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전달의 효용성이거든요. 누가 읽느냐 왜 읽느냐의 문제지요. 글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쓰느냐보다는 무엇을 쓰느냐 왜 쓰느냐의 문제가 항상 먼저가 돼야하는데, 오늘날은 너무 테크니컬한 문제에 집착을 하다보니까 메인 아이디어가 흔들려버리거든요."
그는 불필요한 형용사, 부사는 딱 질색이다. 글을 잘 쓰는 것은 결국은 얼마나 절제하느냐의 문제다. 그러다보니 글이 자꾸 뼈만 남는것 같고 문장도 자꾸 짧아진다는 정민. 그래도 할 수 없다. 퇴고땐 몇 번씩 소리내서 읽고, 마지막엔 아내가 소리내서 읽는다. "남이 내 글을 읽는 것과 제가 제 글을 읽는 것이 느낌이 전혀 달라요. 남이 읽는 것 들으면 상세하게 들어오죠. 읽는 사람이 멈추면 잘못된 거죠. 글쓰기는 자기 사고를 오해없이 명징하게 충분하게 전달하는 것이니까 훈련에 의해서 나아질 수 있는데, 독서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하는게 중요하지요." 책은 어릴 때부터 많이 읽었지만 독서광이었다고 말할 순 없다는 정민. 스스로 오지랖은 넓다고 인정한다.
"내가 왜 제주도에 걸려가지고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재밌는 것은 18세기 전문 여행가들이 있는데 이 여행가들의 마지막 꿈 중의 하나가 백록담입니다. 한라산이란 것이 무엇인가. 목숨걸고 건너가는 곳 아닌가요. 그러면서도 거기를 찾아가봐야 내 여행이 끝난다. 우리나라 한반도를 다니며 봤지만 거기까지 갔다오면 다 갔다왔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런 기록들이 꽤 나와요. 그러나 단편만 가지고는 의미가 없어요.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움직임이 되고 흐름이 될 때 비로소 탐라의 의미가 있어요."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ysun641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