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죽음 준비는 바로 여기서 잘 사는 일"

   
 
 

 노년복지, 죽음준비학교 전문강사 유경

 1960년 서울출생.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복지 프리랜서. 가천의과학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 초빙 교수. 이화여대에서 시청각교육을 전공한 후 CBS 아나운서로 입사, 노인대상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진행하다 노인복지현장에 뛰어들었다. 이화여대 사회복지 대학원 1기로 진학, 본격적으로 노년을 공부했다. 1996년 구립 최초의 노인복지관인 송파노인복지관에서 4년 반 정도 근무. 노인복지에 관심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어르신사랑연구모임'(어사연)을 이끌고 있고, 그 외 칼럼니스트, 죽음준비교육 전문강사 등으로을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여러 지자체 프로그램의 인기 강사다. 저서로는 「꽃 진 저 나무 푸르기도 하여라」(2003) 「마흔에서 아흔까지」 「마흔과 일흔이 함께 쓰는 인생노트」 (공저) 「유경의 죽음준비학교」 등이 있다.

 
 
'늙음' '죽음'은 불온한 언어인가. 철학한다는 저 프랑스에서도 70년대까지 금지된 주제였다. '늙음'은. 등장 인물에 할아버지, 할머니 한 쌍을 집어넣었다가 만화 한편을 온통 뜯어고쳐 다시그려야 했던 만화가가 있었다고 시몬느 드 보봐르는 개탄했었다. '메멘토모리!' 라틴어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웰빙(Well-Being)'이 있다면 '웰다잉(Well-Dying)'이 있지 않은가. 우리사회에 '웰다잉' 바람이 불고 있다. 첫 존엄사 판결, 김수환 추기경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다. 이 '웰다잉'의 한가운데 그는 서 있다. '죽음준비학교'라니! 사회복지 프리랜서이자 죽음준비학교 전문강사 유경. "죽음준비는 죽음을 기억하고 생각하면서 '바로 지금 여기서' 잘 사는 일이란다. 제주가 노년을 보내기에 딱 좋은 땅이라는 그를 제주의 녹음속에서 만났다.

빨간 옷을 입고 나타났다. 노년 혹은 죽음준비학교 강사의 옷이 너무 튀지 않냐고 했다. "어르신들이 밝은 옷을 좋아해요." 표정도 매무새도 환하다. 노년에 대한 그의 첫 저작 「꽃 진 저나무 푸르기도 하여라」를 읽으면서 나는 자꾸 그녀의 나이를 따졌었다. 따스한 감촉이 느껴졌다. 책의 저자는 40대였다. 누구나 내 안의 미래인 노년의 존재를 침묵할 때였다. 유경. 노년이 되지 않고 노년에 대한 몇 권의 책을 쓰더니 몇 년이 지났다. 그동안 그는 자나깨나 '죽음'의 언덕을 넘어간 모양이다. 그는 이제 우리 사회가 터부시하던 죽음을 마음놓고 발언한다.

# 노 전 대통령 죽음 이후 '웰 다잉' 관심 커

그는 요즘 소소하게 전문가 중심으로 시도되던, '죽음'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노년과 죽음을 주제로 한 그를 찾는 공개 강연이 부쩍 늘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더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조각이 아니겠는가'메시지는 너무 컸어요.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난 후, 죽음준비학교엔 원하는 인원수를 넘어 대기자가 있을 정도예요. 충격이 큰 만큼 죽음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늘었어요."

그가 처음으로 공개적인 죽음 강의를 진행한 것은 2006년. 서울 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의 '아름다운 생애마감을 위한 어르신 죽음준비학교' 프로그램. 올해 4년차. 그때는 항의를 많이 받았다. "어른 앞에서 감히 죽음을 얘기하냐. 재수없다. 그런데도 의외로 오신분들은 아주 진지했어요. 죽음 프로그램 수료식때는 많이 울어요. 감사해서도 하고, 섭섭해서도 하고, 내 인생 돌아보고 남은 인생 행복하게 살아야겠다하시고." 수료식의 표어는  '삶의 소중함을 느껴요. 새로운 삶을 준비하신 어르신들 존경합니다.' 

그런데도 '죽음준비학교'란 이름은 너무 완곡하지 않은가? "죽음을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출발일 수도 있다싶었어요. 이대로 간다했지요. 거부감도 있었지만. 하늘소풍도 괄호해서 죽음예비학교 혹은 준비학교라 쓰는 곳도 있습니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게 하는데 일조한 바도 있지요."

처음 죽음준비학교 학생들을 모집할 때였다. 웰다잉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내세웠을 때는. "죽음을 기억하면서 산다는 것은 오늘이 우울하냐? 칙칙하냐? 그것을 기억하고 사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죽음준비교육을 받은 많은 어르신들이 증언하고 계셔요.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어떤 결단을 하게 되더라.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우리가 짜증내고, 뒤돌아보고, 후회하고, 원망할 시간 없더라. 앞을 보면서 남은 시간 어떻게 살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할까? 이런 고민들을 하면서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더라고 해요."

그는 말한다. 어떻든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일. 내 자신의 삶과 화해하고, 존엄하게 사는 방식을 고민하면서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죽음을 기억할 때 생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올 것이라고. 삶은 우리의 앞모습, 죽음은 뒷모습이라 생각한다는 유경. "뒷모습은 거짓말 하지 않잖아요."

# 방송하다 어르신들 내리사랑에 복지사로 전환

7년반 정도, 행복한 아나운서였다. 19년 전이었고,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 많은 이들이 반대했다. 이렇게 노령화가 진행될 줄은 몰랐을 때였다. 그가 방향을 틀기로 했을 때는. "노인대상 프로그램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하세요?'를 진행하면서 내리사랑이 참 좋았어요. 아, 인생의 전환점이 있다면 노인복지를 해보고 싶다. 방송도 어떤 일정 시점에 더 잘할 것 같진 않고, 삼십대 초반에 안온한 생활에 젖기엔 좀 아쉬움이 있었어요. 어떤 도전이 필요했어요." 이리저리 노인복지 현장을 찾았다. 주위에서 많이 반대했다. 봉사는 헌신으로만 되는게 아니란 것을.

본격적인 노년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 느낀 두가지. 아직  노년이 안된 분들에겐 제대로된 노년준비를 돕고 싶었다. 또 노년인 분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끝까지 존엄성을 놓치지 않고 돌아가실 수 있을때까지 잘 살 수 있을까하는 것. "죽음의 문제는 이미 저랑 같이 왔어요. 노인복지의 끝은 죽음이기에." 지금 우리사회가 청소년 자살률을 걱정한다.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청소년한테 제대로된 죽음에 대해 토론하고, 교육해본 적이 없어요. 죽음에 대한 얘기를 꺼낼 수도 없게 하잖아요."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제가 알고 있는 일본 게이오 고교에서는 뜻있는 어떤 교사가 죽음준비를 시켰어요. 처음엔 부모들이 반대하다가 받아들여서 그런 교육을 하고 있고, 독일·미국의 경우 초·중·고에 수업시간이 있는 걸로 알아요. 눈높이에 맞춰서 이런 공부를 하고 있지요. 우리나라는 종교계통의 고교에서 재량시간에 하더라구요. 아이들도 자신이 기르던 강아지가 죽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도 맞닥뜨리잖아요." 

그렇다면 타인의 죽음에서 우리 바로 옆에 존재하는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지난해 그가 펴낸 「유경의 죽음준비학교」는 그런 물음에서 출발한다. 어느새 그의 온라인 '어르신 사랑연구모임'엔 3100명이 참여한다. 오프라인에서 그는 두명 이상이면 공부방 문을 연다. 흥미 있는 주제엔 55명 정도 나온단다.

# 전국민 유언장 쓰기도 할만하죠

두 딸의 어머니인 그는 공개 유언장을 그의 저서에 썼었다. "곧 유언장하면 재산상속을 써놓는다는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유언장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써보는 것, 중간 점검이죠. 나이와 상관없이. 살아온만큼 내가 잘 살아왔나? 그러면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뭔지 드러나게 되는거지요. 어르신들에게 유언장을 써보자했더니 '전교 1등해라' 없어요. '화목해라' '건강하라'가 많았어요.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죠. 사랑하는 배우자, 자녀, 손자녀, 친구, 친지, 내 소중한 사람들하고 시간을 많이 못했구나. 내 인생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 생각해봐요. 전국민 유언장 쓰기해보면 어떨까요." 

죽음준비학교의 핵심은 뭘까? 우선 왜 이별을 준비해야하나, 다음은 용서와 화해와 감사해야할 사람이 있는가? 자기를 받아들이는 것이란다. 세 번째는 존엄한 죽음을 위하여,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기기증 등 죽음의 방식. 네 번째는 남기고 싶은 이야기. 유언장을 쓰고. 장묘문화 견학프로그램도 들어간다. 노년이 버거운 어르신들에게 그는 말한다.

"'끝까지 사는 것이 책무입니다. 사는 모습을 보여주세요.'해요. 개인적으로 흔히 사람이 죽으면 직계혈족으로 여섯명의 유가족 죽음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스물다섯명이라고 해요."

# 제주도는 노년의 최적지…실버 인프라구축 필요

"제주도 노인들하면 강인함, 쾌활함이죠. 노년까지 활동력은 장수와 연결이 되니까. 제주어르신들을 만나보면 확실하게 반응해요. 노년의 무기력함에 대한 편견이 깨져요. 8대 2로 여자가 많은데, 제주도는 남자 어르신들도 적극적인게 인상적이었어요." 그가 생각하는 노년준비의 가장 큰 항목. '어디서 누구와 살것인가'이다. 노년의 삶을 충족시켜주는 터전으로 이주하는 것이란다.

"어디서 살다 죽을까할 때, 제주도가 최적의 도시가 아닐까해요. 노년이 되면 따뜻한 곳을 좋아하잖아요. 제주의 자연을 보면서 아, 노년을 이런 곳에서 보내시면 좋겠다 생각해요. 어르신들 좋아하는 실버 인프라를 구축하고 투자하면 좋겠어요. 해외 이주도 하는데 제주는 최적지일거예요. 여러 요건을 갖춘 곳이지요. 연금세대가 늘어나면서 공기 맑고 물 좋고 언어도 통하는 제주도를 선호하게 될거예요."

결국 누구나 맞이할 그것. 누구에게나 평등한 우리의 뒷모습, 노년과 삶과의 작별아닌가. 건강한 노년에 생각할 일. "자녀와 어떤 거리에 살 것이냐. 자녀와 떨어져 살 것이냐. 복닥거리는 근교에 살 것이냐. 몸이 아팠을 때, 내가 가진 재산을 자녀에게 다 주어서 의탁할 것이냐. 전문가를 쓸 것이냐. 아니면 다 팔아서 시설로 갈 것이냐. 미리 얘기해 놓지 않으면 자식과 부모간 불화의 원인이 되죠."

우리나라 노년 정책이 아직도 미약하다는 유경. 그러나 복지는 스텝처럼 나아진다고 생각한다. "몸이 아픈 노년이 너무 많아요. 혜택 못받는 분은 못받고. 중구난방, 아쉽죠."

노년영화에 관심이 많은 그가 뽑은 영화는 '안토니아스라인' '황금연못' 등. 죽음준비강사 유경. 그는 앞으로도 노년과 인생을 함께 하려한다. 겸허하게. "인생박사들 앞에서 나는 정리해 드린 것 밖에 없어요. 어떤 방법들을 가르쳐드리지만. 어르신들은 전부 우리 앞에 줍니다. 어려운 시절 노동하면서 살아낸 힘, 지혜, 받아들임을. 저희들이 배웁니다."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ysun64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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