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이 만난 사람]피아니스트 서혜경

어둠 속에서 쇼팽의 '야상곡'이 흘렀다. 고요했다. 객석은 숨죽여 그가 이끄는대로 이끌려갔다. 피아노 선율은 폭풍같은 삶을 거쳐온 자의 손끝을 타고 물흐르듯 흘러갔다. 지난달 제주 보오메꾸뜨르 부띠끄호텔이 마련한 무료 자선음악회에서였다. 열살에 데뷔, 20대에 세계 정상급 피아니스트에 오른 서혜경. 사람들은 '신이 내린 피아니스트' '피아노의 여제' '건반위의 암사자'라고 부른다. 서혜경이란 이름은 한국의 피아노와 함께한다. 그의 마디진 손가락을 보면서 발레리나 강수진의 으스러진 발가락이 떠올랐다. 그의 손가락 역시 그러한 운명. 하루 열여섯 시간을 혼신을 다해 치다보면 손톱 사이에 피가 나고 못이 다 박히고 그랬다는 손가락. 건반 위에선 연꽃처럼 펴졌다 오무라졌다 아름다운 변주를 하는 손가락. 2006년 벼락처럼 그를 찾아온 암의 사선도 그는 당당하게 넘었다.

 

   
 
 


피아니스트 서혜경은

 서울 출생. 경희대 음대 교수. 1975년 뉴욕 매네스 음악학교 입학. 1982년 줄리아드 음대 졸업. 박사학위. 1970년 이화경향 콩쿠르 특상. 1980년 스무살에 전세계 200명이 겨룬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 1981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상. 1983년 뮌헨 콩쿠르 1위 없는 2위. 2006년 맨해튼 음대 특강. 1985년 윌리엄 퍼첵상 여성 최초 수상, 1988년 뉴욕 카네기홀에 의해 '3대 피아니스트'로 선정, 세계정상급 피아니스트 반열에 올랐다.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독일의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심포니, 영국 런던의 필하모니 등과 수많은 협연을 펼쳐왔다. 지난해 8월 뉴욕에 '서혜경재단'을 설립, 유방암 환자와 형편이 어려운 피아니스트를 돕고 있다.

 
 
"오늘은 너무너무 갖고 싶었던 죽은 사람의 내일이다, 오늘하루도 즐겁고 감사하게 살자 이런 마음으로 살아요." 그만의 독특한 카리스마, 무대 매너, 한바탕 고통의 파고를 지나온 그의 연주는 한결 깊어지고 따뜻했다. 오랜만에 제주 관객과 만난 이 특별한 연주회에서 그는 쇼팽, 브람스, 리스트의 곡 등 10여곡을 연주, 수많은 색감을 풀어냈다. 이 피아노의 파동 앞에서 어떤 이는 세포가 움직이는 감동에 휩싸였다했다. 허나 듣는 행복감을 주려면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예술가는 절대적으로 자기와의 싸움을 견뎌내야 할 일. 정상이 되려면 그러한 안 보이는 뒷모습이 따라야 하는 일.

서혜경, 밝고 활기차다. 그는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켰던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도 동네 피아노학원 선생님 '서혜자'로 변신 3회에 걸쳐 출연, 이목을 집중시켰다. 희망과 치유의 피아니스트로 다시 선 서혜경. 그의 지독한 열정을 만났다.

# 피아노, 시작은 쉽지만 가장 힘든 건반악기
"피아노는 시작하긴 쉽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아름다운 소리를 끄집어내기에는 제일 힘든 건반악기예요. 기계적인 악기예요. 건반을 눌러서 55개의 부속품이 통과해야 소리가 나요." 피아노의 여러 가지 색깔, 그것을 터득하기까지 걸린 시간 45년. 그는 이제야 그가 원하는 소리를 조금 끌어 당기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가 가장 잊지못할 연주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교향악단과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1번을 연주할 때.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딱 만나서 승천하는 느낌. 스스로 소름 끼쳤던 적이 있었다.

피아노 앞에서의 도도함, 장대한 스케일의 서혜경. 완전한 무대를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이 피아니스트. 그는 털털하고 솔직했다. 의외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느낌요? 그렇게 하려면 저희들은 죽습니다." 우울증은 성공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걸까. 그도 그랬다. 아침이면 지독한 연습을 해야한다는 버거움으로 눈을 떴다.

"피아노의 여러 음색이 제 적성에 맞지만, 어떤 때는 피아노가 관으로 보일 때도 있었어요. 독주회 때 매진되고 청중이 꽉 차있는데 여든여덟개 상어 이빨이 달린 괴물같이 보이기도 해요. 너무 외롭고, 무서운, 나 혼자 무대 위에서 벌거벗은 느낌, 뭐하나 까먹으면 저 높은 공중에서 자전거 타다 떨어지는 기분예요. 빨리 잊어먹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더 큰 일이 벌어져요. 완전히 무대 위에 서기 전에는 무대에서 악보가 차곡차곡 넘어갈 정도로 외우지 않으면 안되요."

한 시간 반 연주하면 콩나물대가리가 5만개에서 7만개가 된다. 그 음표를 다 외워야한다. 가슴으로 바늘땀 꽂듯이. 200자 원고지 300장 분량. 끝없는 연습만이 그것을 헤쳐나갈 수 있다. 처음엔 악보를 머리로 외우고, 다음은 가슴으로, 심장으로, 그래도 잊어버릴 때는 손이 자동으로 돌아가도록 외워야하고, 그 다음 손이 멈칫거릴 때는 악보가 그림처럼 넘어갈 정도로 외워야 한단다. 

그의 손은 어느 열성적인 팬에 의해 100만불의 보험에 들어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라고 생각해요. 섬섬옥수는 이런 소리를 내지 못해요. 솥뚜껑같은 이런 손이 아니면 절대로 아름다운 소리가 안나요." 서혜경의 피아노에 매료돼 10년동안 시어머니같은 매니저를 하고 있는 남자, 부산사람 허효길이 하는 말이다.

# 암 극복하고 무대에 선 연주가

"2006년 10월2일. 유방암 3기라는 거예요. 청천벽력 같은 암 선고에 '오진이다'. 나는 믿지 않았어요. 호주 일본 등 빽빽하게 스케줄이 차 있었고. 일본공연은 이미 매진이었죠. 쇼크로 콜레라 걸린 것처럼 48시간 설사를 했어요. 너무 놀래서. 암이라니까. 저완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왜 나한테…. 난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너무나 건강에 자신만만했고 콧대 있는 위치에 있었죠."

거칠것 없이 세계를 무대로 승승장구, 잘나가던 그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충격. 예전에도 16시간 연주 강행군으로 오른팔 근육 마비가 와서 1년 동안 쉬기도 했던 그였다. 이제 그는 담담하다.

"사람은 살다가 이렇게 엉뚱한 일을 당하기도 해요. 살면서 한번쯤 죽음이란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인생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말이죠. 저 역시 아프기 싫었고, 안 아프고 싶었고 그러면서 세계를 누비고 싶었는데. 오래, 지겹게 방황했어요. 하지만 어쩔수 없는 건 받아들여야 하잖아요. 긍정적으로 고쳤어요. 받아들여야 한다면 즐겨야하고. 전 신조가 그래요." 그는 우울증으론 죽어도 암은 살아난다고 생각한다. 단호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삶을 위협하는 것들로부터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그것은 피아노였다. 청중들의 환호가 그를 이겨내게 했다. "사람들이 절대 안된다해도 모든 사람이 다 하지 말라해도 3개월 후에 무대에 선다하니 서혜경 이름에 먹칠할 수 없다해서 무대에서 살아난 거지요." 갓 스물에 인생의 전환점이된 이탈리아 부조니콩쿠르에서 한달동안 10㎏이 빠지면서 혼신을 다해 우승한 그였다. 그때 모든 것을 '올인'하면 초능력도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2008년 1월, 항암치료를 끝낸 지 3개월만이었다. 한국 최초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 3번을 내리 연주하자 관객들은 어깨를 들먹였고, 기립박수로 화답, 피아노 여제의 재등극에 감격해 했다.

# 내년 봄 제주돌문화공원서 연주회

"피아노는 감정이 들어가는 숨길 수 없는 예술이니만큼 많은 것이 담겨있겠죠. 내 음악적 재능을 좋은 일에 쓰라는 뜻이죠. 하늘이 준 기적이죠. 이 지겹고 힘든 클래식 연주를 듣고 어느 유명한 스웨덴 목사 부부가 치유의 피아노, 치유의 힘이 있다고 했어요." 병원에서 탈진했던 한 사람이 예술의 전당 공연에서 그의  음악 '황제'를 듣고 병이 나았단다.

서혜경. 그는 치유의 음악가란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해서 되는게 아님을 안다. 하늘의 뜻이란 것. "힘든 병을 치유한 만큼 에너지가 담긴 연주로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그동안 청중의 박수를 먹고 살았으니 이제 되돌려줘야지요."

얼마전,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차 중국을 방문했을 때, 현지 고아원에 삼익악기에서 출시한 '서혜경 피아노'를 기증하기도 했던 그다.

1년의 반은 뉴욕을 넘나드는 그는 오는 11월에 중국, 내년 4월에 하와이 호놀룰루 심포니와 공연, 내년 10월 프랑크푸르트, 아르헨티나, 내년까지 연주일정이 거의 차 있다. 그는 내년 봄 제주돌문화공원 특별전시관의 공연장 개관때도 무대에 설 예정이다. 건강을 위해 연주회를 1년 50회에서 30회 정도로 줄였다.

# 초등 6년 "세계에서 제일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

"세계에서 제일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 작문을 쓴 때는 초등 6학년 때. 그때부터 야망을 키운 아이. 왜 안그러랴. 가슴은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였다. 숨막히는 삶을 살았던 어린시절. 새벽 5시, 60년대 맹렬 모성 1호 어머니는 잠든 딸을 깨웠다. 줄넘기를 200번 뛰게 하고, 2시간 동안 피아노를 치게 한 후에야 학교에 보냈다. 늦으면 학교에선 왕따가 되던 시절. 떡볶이 먹으러 가면 바로 어머니가 나타났다. "목숨 걸고 연습하라"고. 한 음이 틀려서 예선 탈락한 이화경향 콩쿠르였다. 승부욕에 불탄 딸도 마치 새벽별 보듯 혹독한 연습. 1년 후 재도전한 이 콩쿠르에서 연주한 쇼팽의 녹턴 점수가 너무 높아 대회 12년만에 특상 수상자가 됐다. 대신 사춘기도 없어야 했고, 연애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그 까닭도 작용한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고교생 딸과 중학생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한 그는 자식들에게 우선 '최고'보다 '인생을 즐기라'고 권한다. 또 '한국어를 반드시 쓰라'고 가르친다. 

# 제주도 너무나 사랑하는 곳 자전거 타고 다녀

"제주도에서 연주회도 여러번 했죠. 전 제주도가 너무 좋아요. 너무너무 사랑해요. 육지와 풍경이 다르고. 남국의 느낌이 달라요. '일 포스티노'처럼 바닷길이 예뻐요. 제주도 특유의 풍광을 살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데 흉내내면 안돼요. 제주도의 겉모습은 살리고 속은 편안하게 가도 좋지요. 다들 이국적이고 제주도다운 것을 보러 오거든요. 제주도는 수많은 사람들의 낙원이고 꿈입니다. 에너지를 얻어요. 미국사람들이 하와이 하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주도를 찾잖아요. 제주도는 수많은 사람들의 치유의 섬이지요. 자연을 살렸으면 좋겠어요. 특징을 살리면서 제주도답게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제주도에서 자전거 타려고 들고 와서 해안가 가서 탔어요. 제주어도 너무 재미있죠."

그의 꿈. 일단 암이 완치되는 것, 그래야 하고 싶은 피아노를 열심히 칠 수 있으니까. 동양의 전설적인 최초의 피아니스트로서 최고의 아름다운 소리를 피아노라는 악기에서 끄집어내서 수많은 CD도 남기고 싶은 것, 여전히 피아노의 여제답다. "지금 나는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지금 당장 아프지 않은 것 감사해요. 아름다움의 끝장을 보고 싶은 거죠."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ysun64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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