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 출신 경찰 억울한 희생 막아"

 한국전쟁 때 성산면 지역의 예비검속자 학살명령을 거부한 문형순(文亨淳) 성산포경찰서장은 당시 제주경찰이었던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고 특이한 인물이다.

 한 경찰출신 인사는 “문형순은 배운 게 없어 경찰법규조차 몰랐고,그 때문인지 별명이 ‘문 도깨비’였다”고 말했다.

 4·3 때 서귀포경찰서장이던 김호겸(金浩謙·84·서울시 은평구)씨의 증언에 의하면,문형순의 별명이 ‘문 도깨비’였던 까닭은 단지 그가 무식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시 경찰 중에서는 군대에 맞설 수 있는 드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김호겸 씨는 “문형순 씨는 나보다 20살은 위로 당시 이미 50대의 중년이었다”면서 “그는 글씨도 읽을 줄 몰랐지만,기운이 장사였고 배짱있고 남자다운 멋진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김 씨는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물론 제주지구 토벌대사령관이던 송요찬·함병선 연대장,그리고 나 역시 일제 때 모두 일본군이나 그 앞잡이인 만주군에 있었지만,그때 문형순씨는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이었다”면서 “그런 경력 때문에 군대에서도 문 서장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문형순은 초대 모슬포경찰서장을 역임했고 한국전쟁 때는 성산포경찰서장을 지냈다.이번에 공개된 문서에서 드러나듯 성산면 지역의 예비검속자들이 무사했던 것은 전적으로 문형순의 덕분이었다.

 실제로 제주도의회가 4·3희생자 피해신고 내용을 토대로 1997년에 펴낸 「제주도4·3피해조사 보고서」에는 제주도 전역에서 예비검속으로 희생된 많은 사람들의 인명이 수록돼 있으나,성산포경찰서 관할지역에서는 한 명도 신고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문형순은 모슬포에서도 군인들에 의해 억울하게 죽을 위기에 놓은 많은 주민들을 구했다.이 때문에 지난 1996년 하모리 주민들 사이에서는 문형순에 대한 공덕비를 세우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고춘언 씨(74)는 “주민들을 살리는데 공이 많은 김남원 면장과 조남수 목사의 공덕비를 지난 1996년 대정읍 하모리 진개동산에 세울 적에 문형순 서장의 공덕비도 함께 세우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고 씨는 “아직 희생자 위령비가 없는 상태에서 경찰출신의 공덕비를 먼저 세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 때문에 무산되긴 했으나,문형순 서장의 공을 잊을 수는 없다”면서 “한국전쟁 때 대정읍에서는 ‘백조일손지묘’희생 등 수백명이 예비검속으로 희생됐는데,문 서장이 성산포경찰서로 가지 않고 모슬포경찰서에 계속 남아 있었더라면 그 희생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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