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이 만난 사람]사진작가 배병우
분명 사람은 안보인다. 흐르는 건 안개와 소나무뿐. 헌데 인간처럼 서로가 의지한 듯한 형상, 저 실루엣에선 기척이 들린다. 언뜻 소나무냐, 인간이냐 눈과 귀를 연다. 아무런 수식이 필요없다. 구불구불한 몸체에 거친 피부, 숨죽인 숲은 수직의 장엄한 생명력으로 꿈틀거린다. 과연 셔터 소리가 났을까? 없다. 비었다. 수묵담채화 같은 그의 소나무에선 얼핏 겸재가 스치기도 한다. 하나에 대한 지독한 열애가 그랬으리. 한 십년이 아니라 이삼십년은 해야지. '소나무 사진가' 배병우.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주자로 그는 소나무에 걸었다. 그 소나무에 대한 생각의 탄생지는 바로 마라도, 그 섬이었다. "사진을 찍지 왜 그림을 그려요?" 그에게 눙을 친 이가 있다. 맞다. 그가 시인한다. "나는 사진을 그림으로, 빛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햇빛 노동자' 배병우. 그는 자유다. 그를 만났다. 작렬하는 제주바다에서.

결국 그런 그의 소나무가 유럽을 매혹시켰다. 깐깐하기로 이름난 유럽인들의 눈도 사로잡았다. 며칠전 그는 모차르트의 고향 짤즈부르그 축제에 초청받아 열흘간 참가했다. 그의 소나무에서 채용한 이미지가 올해 그 도시 축제의 상징 문양이 된 것. 모든 인쇄물엔 그의 사진이 들어갔다. '인간과 신이 만나서 뭘 남겼는가'란 올해의 테마와 맞아떨어졌을까. 인간이 걸어가는 듯 한 바로 그 소나무다.
2005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선 세계적인 팝 가수이자 사진 수집가인 엘튼 존이 그의 소나무를 샀다. 세계 유수의 아트경매에서 고액에 낙찰되기도 했고, 오바마 대통령도 그의 소나무 사진집을 소장해 화제가 됐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 소나무, 운명처럼 다가온 그 가장 한국적인 미
여수 유년시절, 친구네 집 앞 아름드리 소나무 그늘과 바다가 놀이터였다. 섬과 섬을 노 저으며 다녔다. 호남에서 수채화 1등 했던 소년. 타고난 예술적 감성으로 바다를 찍었다. 카메라 대신 크레용과 물감으로. 운동(유도)도 탁월해 체육대학 장학생으로 들어오라 했으나 미대를 택했다.
디자인을 전공하던 그가 카메라를 잡은 것은 1974년. 서울미대 다니던 절친한 형이 카메라 주면서 '사진을 해라'했다. 그때부터 독학. 스물다섯부터 대학강사를 했으나 가난했다. 잡지사 일해주고 건축사진 아르바이트했다. 강의를 하든 알바를 하든 사진으로 먹고 살았다. 결혼식도 서른번 찍어줬다.
이십대 후반, 카메라 들고 무작정 찾은 곳은 거문도와 제주도. 아일랜드의 바다와 산들도 그 바다를 따르지 못했다. "난 본능적으로 바다가 좋다. 소나무가 아버지라면 바다는 어머니이다. 나에게 바다는 고향, 영감의 원천이며, 가장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다."
모든 아름다움은 집중적일 때 발견되는 걸까. 1982년부터 마라도를 찾았다. 한 삼년. "거기서 환경과 아름다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거예요. 마라도에서 소나무를 생각한 거예요." 1984년 낙산사에서 만난 소나무, 그건 그에게 아름다운 한국이었으며, 작가로서의 운명이었다. 때문에 2005년 낙산사 큰 화재 때 타버린 200∼300년 된 소나무는 어찌 복원하나했단다.
다행히 한 길을 갔다. 흔들림 없이. "지지자였던 아내도 이 시대에 무슨 소나무야? 그랬었죠." 한물간 낭만주의라는 이도 있었다. 하나를 잡으면 끝장을 보는 열정. 너무 유행을 따라가는 풍조였던 90년대도 묵묵히 건넜다. 확고했다. 우직할만큼. 그는 책을 좋아한다. 그의 서고는 작은 도서관이다. 미술책은 정확하게 짚는단다. "자기 베이스에 깔고 있는 걸 가지고 예술하는 것, 이게 답이예요. 계속 찍다 보면 평범한 풍경도 자기 해석을 할 수 있어요. 우리 나라 사진작가들이 그 부분이 약해요. 끈기있게 하다보면 최고는 못되더라도 근처는 가지요."
# 소나무, 세계와 소통하다
결국 세계와의 소통은 소나무가 해냈다. 일본 친구들은 그에게 '미스터 소나무'라 칭했다. 환경과 생태를 중시하는 시대, 소나무는 하나의 위안이다. 100살의 소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성 싶다는 작가는 이미 소나무의 내면에 닿아있다. "소나무도 양지바른 곳에서 태어난 부자나무가 있고, 햇볕이 적게 드는 곳에 자리를 잡은 가난한 나무도 있지요." 사람살이와 똑 같다. 솔숲은 정신과 영혼의 숲. 한줄기 광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는 동트기전 출발한다. 흡사 새벽 3시면 깨어나시던 어부 아버지처럼.
"소나무는 구불구불 자라서 역동적인 힘이 있는 안강송을 좋아하죠. 경주 남산의 소나무가 좋아요." 그는 경주와 제주도를 거의 동시에 다녔다.
모든 것의 원천인 자연. 허나 그가 주목하는 대상은 소나무만이 아니다. 고향 여수 바다를 비롯한 제주의 자연, 수십년간 찍어온 창덕궁의 미, 한국건축의 복합적 미학인 종묘도 그를 행복하게 한 작업들이었다.
"그가 자연을 찍으려 하고 있다기보다도, 말하자면 '자연'이 '배병우'를 인간계에 보냈다고 해도 좋다. 자연이 그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이려고, 아니 전시하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한 이는 일본의 미술평론가 치바 시게오다. "필름이죠. 렌즈도 기본으로 하나고, 디지털을 쓰지 않아요. 풀 프레임이예요." 수묵화인듯한 사진 한 장.
"이게 겨울 한라산이예요. 사람들이 난 친다 그러잖아요. 문봉선보고 넌 지리산 그리고 있더라. 나는 제주도 찍고 있는데 그랬어요." 제주출신 한국화가 문봉선은 그의 후배다.
# 오름, 계곡, 수평선 3개의 선 제주도
한라산은 강정천에서 거꾸로 올랐다. 90년대 초. 당시 길이 안 났을 때. 온 숲을 헤맸다. "강정천 바닥을 따라서 올라가다가 4·3당시 굴인 듯한 곳을 발견했어요. 숟가락, 그릇 같은 게 있고, 은신처같았어요. 무서웠죠." 제주도가 깊은 역사의 땅임도 그때 알았다. 눈이 왔을 때와 싹이 막 올라오는 초봄 한라산은 정말 아름다웠다. "어느 순간 걷기가 힘드는 거야. 모든 생명이 다 살아있는 거거든요. 바닥에 생명체가 있어. 요만한 것들이 피어있는 거야. 발을 딛기가 어려워요."
그렇게, 그런 길을 가던 그때였다. 제주도의 미감이 눈에 들어온 것은. "아, 제주도가 간단하구나 하는 거요." 그가 갑자기 "펜 있어요?" 책의 빈 장을 꺼내든다. 능숙하게 그린다. 오름의 선 하나 그 밑으로 오목한 선 하나, 그 가운데 수평의 선. 3개의 선이다. "제주도가 이거더라구요. 볼록의 오름과 오목한 계곡, 그리고 수평의 형상인 바다말이예요. 제주도는 너무나도 단순한 선과 형을 갖고 있어 좋아요." 형태나 선을 중시하는 작가 배병우에게 제주도는 과한 대상인셈. 강정천을 따라 올라간 계곡은 비밀의 경치였다.
'내 사진은 현대의 붓으로 그린 빛그림'이라는 배병우. 그는 경주의 소나무가 남자의 투영이라면, 제주의 오름은 여자의 투영이라고 생각한다. 여자의 섬이라고 단언한다. "오름은 여자 선을 찾아서 찍은 거예요. 40대부터 되물어지는 거예요. 제주도는 뭐지? 많이 오고 무작정 많이 찍다보니 어느 순간 오더라구요." 빛의 오름은 관능적으로 렌즈속에 그려졌다.
# 제주도 길, '올레'처럼 작은 길을 살려야
노란조개와 화살표. 산티아고를 그도 걸었다. 2007년 8월말부터 10월까지. 그는 나무와 꽃이 좋다. 산티아고에서도 늙은 나무만 보면 감동해서 찍었다. 2000m까지 올라가서 일본 동경의 숲도 찍었다.
"선진국이 되려면 자연림이 많아야해요. 경주가 지난 50년 동안 성공한 것이 나무를 키운 거예요. 산림녹화가 된거야. 그런데 제주만 역행한 거예요. 원시림을 베고 골프장을 지은거예요."
제주도? 참 많이도 걸었다. 1976년 신혼여행길 이후, 소주 두병에 카메라 메고 제주 해안길 전부 걸었다. "80년대에 올레길 거의 다 걸어다녔어요." 제주도에 대한 그의 생각은 오래됐고, 우리가 차용해야 할 것들도 있지 않을까. 따끔한 질책, 애정의 대목들.
"제주도 제발 길 크게 뚫지 말라고. 작은 길을 살려야 한다고 계속 말했어요. 자동차 사이렌 소리가 안나는 곳이 이제 제주도에 없어요. 땅 대 비율 통계로 보면 제주도가 제일 높아요. 이 작은 섬에 그런 미친 짓을 하는게 어딨어요? 넓은 길은 자전거 도로나 인도로 해야돼. 20분도 안 차이나. 아일랜드도 이차선예요. 천천히 갈 수 밖에 없어. 죽 언덕을 올라가면 해변이 보이는 거야. 계획을 갖고 천천히 해야 하는데 정말 아름다운 곳이 제주도 길이예요. 걷다가 물속에 들어갔다가 하니까. 사람이 걸어가니까 뒷골목이 살아나잖아요. 딴딴한 흙길을 내는게 답이야. 나무를 치기도 했는데 너무 넓어도 안돼. 그래야 덜 자연을 해치는 거잖아요. 과실수를 심어도 좋지요." 20여년 전부터 생각한 것들도 있다.
"제주도는 길면 일주일을 노에너지 주로 정하는 거예요. 자동차 모두 스톱! 스페인의 시골마을처럼. 전기자동차 외엔 무공해의 날 어때요? 제주도를 한바퀴 도는 코스는 자전거 국제선수들이, 짧은 코스는 아마추어 자전거 선수들이 하고. 올레길 좋죠. 올레길은 다 걸어가고. 제주도가 탄소배출 제로의 날을 일주일 해봐요. 천국일 거예요. 배터리 차 한번 풀어주고." 꿈일까?
학생들을 데리고 해마다 제주를 찾았던 교수 배병우. 그는 작년과 올해 휴직했다. "내 일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기엔 너무 바쁜 거예요."
그는 해외전시로, 계획된 프로젝트로 제주와 여수 한려수도의 바다와 섬 등을 들락날락한다. 얼마전까지 작업하던 인천 옹진군 굴업도는 너무나 아름다운 섬. 이 섬을 사진으로 알려 골프장 건설의 부당함을 알렸었다.
"소나무 숲은 나를 살아 숨 쉬게 하는 것, 요동치게 하는 것, 흐르게 하는 것이다." 시칠리아에서 마주친 에트나 화산처럼 다시 불을 뿜는 청춘으로 돌아가진 못하겠지. 허나 잉걸불처럼 열정적인 작업을 하겠다는 큰 소나무같은 작가 배병우. 사진 앞에서 잘 웃지 않는다는 그가 제주바다의 에너지 앞에 서 있다.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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