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예비검속(豫備檢束)’은 법률적 용어가 아니다.아무런 일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어떤 상황에 대비해 사람들을 구속한다는 것은 일제시대 때나 있던 일이다.

 한국전쟁 때 전국적으로 벌어진 ‘보도연맹원(保導聯盟員) 학살’은 예비검속의 대표적인 예이다.해방공간에서 좌익활동을 했던 사람들을 보도연맹에 가입케 해 관리하다가 전쟁이 벌어지자 ‘적에게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자’로 분류해 집단 총살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벌어졌을 때 제주는 ‘4·3’이라는 엄청난 희생을 치른 후의 상황이었다.이미 젊은이들이 대거 희생됐기 때문에 새삼스레 예비검속할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 벌어지자 4·3의 광풍을 구사일생으로 헤쳐 나온 사람들까지 예비검속으로 끌려갔다.이번에 공개된 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과거 한번이라도 집회나 시위에 참석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그 명단이 남아 예외없이 예비검속됐다.일부 지역에서는 돈을 받고 예비검속된 사람을 빼 주는 바람에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마구잡이로 끌고갔다는 증언도 있다.

 그런데 한국전쟁 직후 전국적으로 벌어진 이 학살극은 누구의 명령에 의한 것인가.

 이와 관련,한국전쟁 당시 서귀포경찰서장이던 김호겸 씨는 본사와의 인터뷰에서 “예비검속은 경찰 수준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나 역시 경찰서장임에도 불구하고 예비검속 당한 친구를 살려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전쟁 당시 해군 포항경비부 사령관이었던 남상휘 예비역 준장(미국 뉴욕 거주)은 최근 “1950년 7월초 자신의 명령으로 경주·포항·영덕 일원에서 예비검속된 주민 200여명을 군함에 태워 바다로 나가 총살한 후 모두 수장했다”며 “이 일로 평생을 자책감 속에 살고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런데 남상휘 씨는 개인적 판단 아래 독자적으로 명령을 내린 게 아니다. 남씨는 이에 대해 “신성모 당시 국방장관으로부터 예비검속자를 총살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경찰은 당시 조병옥 내무장관을 통해 명령이 내려진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국방장관과 내무장관에게는 누가 명령을 내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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