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이 만난 사람] 오지여행가 도용복

 지금 대기중! 분쟁지역의 바람아, 잠시만 기다려라. 그의 시선은 지금 오지 중 가장 위험하다는 곳, 콜롬비아 아마존의 열대를 향한다. 카메라, 수첩, 배낭을 꾸려놓고. 열정 그 자체. 일년의 65일은 오지 탐험의 길에 시간을 바치는 사람. 당신인들 누군들 꾸지 않으랴. 여행! 가슴뛰는 이름. 시간과 돈이 받쳐줘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이다. 그 역시 이 꿈을 십년 이상 꾼 자였다. 해서 그가 터득한 한마디. "그보다 의지가 문제다. 당장 하지 못할 것은 영원히 하지 못한다." 여기 오기까지? 물론 그만의 인생지도가 놓여 있었다. "오지일수록 사람의 순수한 본성이 남아 있지요. 여행의 매력은 그런 인간의 심연을 보는 것. 외로움이 사람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 오지에서 그는 발견한다. 인간의 희망을. 137개국을 누빈 60대 청춘의, 음악과 함께 하는 오지탐험가. 도용복. 그다.

 1944년 경북 안동 출생, 부산 거주. 오지여행가. 시인. 사업가, 라틴음악해설가, 주 부산 엘살바도르 명예영사. ㈜사라토가 대표이사 회장. 대구예술대 특임교수, 신라대, 동서대 겸임교수. BBS 부산중·고등학교 교장 역임. 부산시 골프협회 이사,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시민의 모임 부회장, 부산 재즈클럽 고문, 부산합창 올림픽 조직위원회 이사. ㈔부산문화예술진흥회 이사장. 사업가에서 1993년부터 오지여행을 시작, 현재까지 세계 137개국을 누볐다. 저서로 아프리카 남미 20개국 탐험기 「엘 콘도 파사 콘도르는 날아간다」 「중앙아시아의 보물창고 신비한 나라-투르크메니스탄」. KBS '세상은 넓다', MBC, KNN 각종 라디오프로그램에서 오지 소개 여행 전문가로 진행을 맡기도 했다. 2003년부터 전국 곳곳을 다니며 음악이 있는 오지여행 강의를 한다.
 그렇게 오대양 육대주 누빈 이 오지탐험가의 말씀! 제주도는 신의 작품이란다. "한쪽으로 보면 아시아, 한쪽으로 보면 하와이, 갈라파고스. 갈라파고스는 제주도 같아요. 아름다운 풍광에 제주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음악이 흘렀으면 좋겠습니다."

 60세까지 100개국 목표로 해서 다녔는데, 지금까지 건강에 별 탈 없다. "70세가 넘더라도 200개국을 목표로 하기로 했어요." 매 오늘은 인생의 마지막날로, 매 오늘을 살아야 할 첫 날로 생각한다니. 삶이 경이롭다. 제주 바람은 나뭇잎 하나의 떨림마저 드러나는, '보이는 바람'이라는 오지여행가 도용복, 그 사람이다.

 # 오지일수록 그들의 문화 먼저 알고 떠나야

 "여행은 나의 제일 큰 스승이죠. 마음의 샘물을 늘 퍼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문명의 세례를 덜 받은 오지일수록 사람의 순수한 본성이 남아있어요. 거기서 늘 배웁니다." 허나 상대의 문화를 마음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에 유의하라.

 "서울이나 동경이나 파리나 거기선 누릴 것이 없어요. 문화자체가 똑 같잖아요. 사람냄새가 안납니다. 오지에 가면 일주일 10불이면 되는데, 사람냄새가 나지요. 그러니까 여기에 매료되지요. 마사이족은 아침에 소를 불러요. 소의 피에 우유를 놓고 30∼40명 줄 서서 먹어요." 사자가 제일 겁내는 사람은 마사이족. "4명의 아내와 살길래 왜그러냐하니 맹수들과 싸우다 죽은 용사들의 아내를 어떡하냐는 거지요. 그들은 대지의 신을 믿기 때문에 땅을 파서 나오는 물도, 이삭도 안먹어요. 올리브, 과일, 물고기 먹어요. 항상 강이 흐릅니다. 중남미는 대서양·태평양을 끼고 사니까 풍요롭죠." 그의 예술적 감성과 낙관이 늘 위험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게 하는 걸까.

 "분쟁지역 투르크메니스탄에선 4시간 붙잡혔다가 살아났어요. 아랍국에서는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해친다고 못 찍게 해요."

 # 안동 부잣집 소년시절에 몰락 자수성가

 안동 10대 안에 드는 부잣집 3남1녀 중 둘째. 어려서 '명심보감'은 달달했다. 집엔 풍금, 벽에는 바이올린이 걸려 있었다. 허나 가정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몰락. 마지막 풍금은 형의 고교 입학금으로, '언젠가' 그가 눈독 들이던 바이올린은 어느날 보이지 않았다. 중학교만 마치고 단신 부산으로 진출했다. 막막했다. 밑바닥 아르바이트, 거의 거치지 않은 것 없다. DJ는 그 중 고급 목록. "음악마니아였죠. 선조들이 기본으로 좋아했고, 저는 교회에 가서 풍금을 배웠어요." 야간 고교에서 라디오 만들어 팔면서 공부했다. 20세. 음악적 재능에다 손재주 또한 타고나 기술이 좋았다. 가난했으나 낙천적이었다. "살다보면 한번은 철저히 망가져야 돼요. 부속을 만원어치 사면 10만원 짜리가 되고 1000원 짜리 부속 사면 만원되니까 돈이 됐죠. 그래도 사업자금이 안되는 거예요."

 고교 마치고 당시 월남을 자원했다. "70%가 죽는데 집안에선 미쳤다고 야단났지요. 쑥대밭이 됐어요. 지원이 있을 수가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3년간 월남에서 돈을 좀 모으고, 음악 원판 2000장을 가져왔다. 이때부터 조그맣게 전파상과 전자대리점을 차렸다. 3년 만에 부산경남에서 랭킹 1위. 1980년대 들어서는 제조업으로 진출, 핸드백 회사를 설립했다. 골프볼 사업까지 탄탄대로. 벌었다 할 만큼 벌었다. 30대, 부산 불우청소년 가장을 위한 학교인 BBS중·고등학교 교장을 7년 하면서 음악선생, 윤리선생도 했다.

 # 50세에 시작 137개국…70대까지 200개국

 행복하지 않았다. 사업은 불처럼 일어서는데 몸에 오만가지 병이 온 것을 알았을 땐 40대. "갑자기 이건 돈의 노예다. 이러다 내 명에 못간다. 50세까지만 유지하고 떠나자했지요. 이후엔 사업 책임자를 잘 앉히자." 꿈의 분기점, 그 나이가 왔다. 약속된 여정은 1993년 여름. 홀로 떠났다. 떠나니 지금까지 걸어온 자신이 보였다. 케냐, 우간다, 스와질랜드, 보츠와나,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로부터 시작된 길. 다음은 남아메리카, 북유럽, 중앙아시아로.

 왜 안그러랴. 매번 유서 쓰고 떠난다. 갈 때마다 쓰는 내용도 다르다. 지도에 없는 곳도 있으니 예측할 수 없는 길. "오지 탐사할 때 처음엔 멋모르고 다니면서 구사일생 살아오죠. 자꾸 다니면 위험하고 두려움이 오죠. 점점 더 깊이 들어가니까." 그랬다. 밤길에 코끼리떼를 만나 압사당할 뻔하거나, 이름모를 토인에 잡혀 짐을 빼앗기거나, 히말라야 5000 지점에서 두번씩 쓰러져 실려 내려오거나. "에콰도르 키토에서 강도를 만나 카메라를 뺏겼습니다. 돈보다는 사진을 잃었다는 게 더 안타까웠죠."

 오지에서는 그도 그들과 맨 몸이 된다. 그들의 음식을 먹는다. 일주일 정도 살다가 헤어질 땐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그는 준비해간 한보따리 옷도 선물한다. "할렘가에 절대 못들어가게 할 때도 겨우 들어갈 수 있었어요. 마음이 녹으면 통하죠." 주고받는 한국식 인정. 거기서 신뢰의 싹이 튼다.

 그런 그가 가장 가슴에 닿은 나라는 어디일까. "우즈벡은 100번째 들른 나라예요. 중국에서 이란,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우즈벡으로 가는데. 아프간도 전쟁중이어서 위험했지만 좋았어요. 실크로드의 로터리라 할 만한 우즈벡은 아, 여기다 했어요. 공기가 얼마나 좋은지 들어가니까 과일이 너무 풍성한 거예요." 이런 여행이 계기가 돼 2007년에는 우즈베키스탄 레이크사이드 골프장 대표이사로 취임하기도 했다. 우즈벡의 학교엔 매월 4000불 지원해준다.

 그는 마야문명의 전도사다. 1980년대 초부터 12년간 내전을 겪던 엘살바도르의 명예영사를 맡자 2004년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 중미 8개국을 47일간 떠난 이후의 변화다.

 # 갈라파고스 같은 제주도는 신의 작품

 "제주도는 자연풍광이 넘치잖아요. 무궁무진해요. 올렛길 걸어보니 돌 하나를 봐도 낙타 같고, 말 같고. 스토리텔링이 되잖아요. 빠삐용이 탈출한 곳 같은 해안이 보여요. 지금 제주도가 제품이라면 문화예술의 옷을 입히면 작품이 됩니다. 스티브잡스가 말한 감성을 터치하지 않으면 안돼요. 건물 가지고 뉴욕 따라갈 수 있나요?"

 외국인들을 오게 하는 데는 제주도가 최고의 조건이란다. "이런 데 없어요. 제주도는 천연 무대잖아요. 공항에도 무대가 있어야 해요. 야, 제주도구나하는 감동적인 무대가 되면 좋지요." 인생은 예술같이, 예술은 사랑같이, 사랑은 노래같이 하는 것. 화향백리. 인향천리. 락향만리. 꽃향기는 백리고 사람 향기는 천리, 음악의 향기는 만리라는 도용복.

 "공무원들 고정관념 바꾸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주도는 섬 전체가 자연보호구역이다 하는 것이 있어야해요. 갈라파고스는 공항자체가 자연입니다. 스페인 식민지에서 독립해서 어렵게 사는데, 문화는 우리보다 월등합니다. 자연에 다른 것 덧대면 안되지요. 안내판도 사람 시선 위로 가면 안돼요. 왜 바다를 가립니까. 아이들은 더 못보고. 갈라파고스제도는 엄청납니다. 그 사람들이 그 것 하나로 먹고 사는데 그들은 손을 안댑니다. 동식물을 해친다하면 그 사람은 바로 추방이예요. 물개들이 어부들 한테 올라와서 고기 주면 받아 먹고. 황새고 뭐고 자연의 세계에서 같이 노는 거예요."

 # 매일 만보 걸으며 육체와 정신 다져

 "하루도 빠짐없이 만보 걸으면서 육체를 다지며 1000자 읽고 항상 100자를 가슴에 담자. 시, 샹송, 아리아 이것을 매일 시작합니다. 걸으며 40대 50대 얻은 병 전부 해결했습니다." 스스로 노력가라는 그의 사업 성공 비결은 마음을 사는 것. 최선을 다하는 것.

 인생 이모작을 연 그의 수첩은 빽빽하다. 소문난 예술이 있는 오지 여행이야기. 한달 50여 건의 강연 요청. 그래도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즐겁다. "137개국 다니면서 얻은 자료가 많잖아요. 가슴에 꽉 찼잖아요." 4시간 수면. 여행은 그를 다른 삶으로 인도했다. 1995년 부산시향의 특별연주회 독창부문 오디션을 거쳐 성악가로 데뷔하기도 한 그답게 강연 도중 노래도 한다.

 자신의 얼굴이 인디언같다는 말도 있고, 미국이 영국과의 독립 전쟁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둔 곳이 인디언 말로 '사라토가'라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회사이름을 땄다는 도용복. 그 이름을 딴 딸 사라토미(도진미)는 세계를 무대로 연주하는 열정적 바이올리니스트. 유니세프 음악특임(홍보)대표이며 국가보훈처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이따끔 아버지는 강연을, 딸은 공연으로 이색 부녀무대를 연출한다. 그의 시선은 지금 아마존을 향해 있다. "분위기가 풀리면 곧 떠날 채비를 하고 있어요. 삶 자체가 감동이예요." 2011년. 이제 가슴뛰는 인생 3모작을 꿈꾼다. 세월이 비껴간 그의 도전은 새해 초 막이 열린다. 아마존을 향해. 그가 환하게 웃었다. 제주바다 앞에서. "삶 자체가 감동이예요".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ysun64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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