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제주 잠녀, 지키다 1-제주해녀박물관

잊혀져가는 제주 삶의 보고로 제주 안보다 제주 밖 관심 높아

‘제주잠녀문화’구심점 역할 불구 기능 강화 소원…역할론 부각

 

 

▲ 제주해녀박물관 전경

 

 

 

 

“어 저기 우리 할머니, 할머니다”

한 무리 가족의 표정이 제각각이다. 우연히 찾은 할머니의 얼굴에 한껏 고무된 어린아이 뒤로, 조금은 무거운 표정의 아버지와 낯 선듯하면서도 존경의 마음을 담아 살펴보는 어머니의 얼굴이 엇갈린다.

아이는 그 모습에서 할머니와 옛날에 대한 환상을 찾았지만 부모는 달랐다. 한 사람은 가족들을 위해 남들은 기피하는 험하고 힘든 일에 평생을 바친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이, 다른 한 사람은 그렇게 한 세대를 이어 업을 지켜온 이에 대한 경외감이 앞선다.

가만히 살피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 제주해녀박물관, 그 존재의 의미기도 하다.

 

 

 

# 잊혀져가는 제주 삶 채워

처음 이름을 정할 때만 해도, 가까스로 문을 열 때만 해도 기대 보다 우려가 많았던 공간이다.

잊혀져가는 제주 어머니 ‘잠녀’로 채우는 공간, 제주해녀박물관은 이제 햇수로 5년을 채우며 제주에는 없어서는 안될 곳으로 각인되고 있다.

곳곳에서 금방이라도 “이여싸나~”하는 노 젓는 소리가 새어나고, ‘휘~이’하는 숨비 소리에 가슴이 욱조일 것만 같은, 깊은 해저와 같은 공간은 이제 제주의 삶을 대표하는 잠녀를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남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시작점이 됐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3204-1번지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공원 내에 위치한 제주해녀박물관은 도심과의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제주 잠녀 문화를 종합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전 세계 유일한 공간으로 관심의 중심이 되고 있다.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제주 발전사에 있어 가계와 지역경제의 핵심적 역할을 하던 잠녀들이지만 이제는 그 문화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더 크다.

그런 잠녀들을 역사와 함께 형성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문화로 인식하는 공간으로 제주해녀박물관이 쌓아온 것은 비단 시간만은 아니다.

개관 5년 동안 3661점의 어촌과 잠녀 관련 민속자료를 수집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어린이체험관과 영상·전시실, 수장고 등으로 이뤄진 4002㎡의 공간은 월평균 1만5799명, 하루 평균 527명으로 북적였다.

 

 

 

# 세계 유일 여성 중심 해양문화의 무게감

해녀박물관은 단순히 자료 수집과 전시기능만 한 것이 아니라 잠녀문화 전승 보전을 위한 자료조사를 통해 자료집을 발간하고 해녀노래교실을 운영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런 노력들은 다 보여 지는 것이 아닌 까닭에 해녀박물관은 전체 도정 운영에서 그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사실상 먼 거리에 있는 사업소 정도로 치부되는 일도 허다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 있는 잠녀와 잠녀 문화, 역사를 이해한다면 그런 행정적 잣대는 부끄러움으로 이어진다.

수집된 자료수가 박물관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흘려버렸던 기억들과 뭔가 아쉬운 조각들이 빈자리를 채우는 느낌에 몇 번이고 발이 멈춰진다.

너무도 친숙해서 흘려보는 우리와 달리 밖의 시선은 세계 유일의 여성 중심 해양문화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꼬박 1년여 전 제주를 찾았던 국립민속관 발행 국제저널 「무형유산」편집위원들은 ‘보호해야 할 독창적 여성 문화’로 제주를 만났고, 지역사회 중심 가치 인정 작업을 당부하기도 했다.

심지어 편집위원장가 “제주는 세계자연유산을 가지고 있는데다 가치있는 무형유산을 함께 보유하고 있는 중요한 코스로 인식된다”고 언급했지만 그에 대한 자치단체와 지역사회의 관심은 잘 해봐야 제자리걸음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해녀 박물관 역할론 부각

그러면서도 1987년 미국 뉴욕타임즈에서부터 지난해 LA타임즈까지 ‘제주잠녀’를 다룬 기사에만 집중한다. 아직도 남아있는 토착민들에 의한 원시적 형태의 어업이나 ‘양성평등’의 상징 등 그들의 시각을 분석하거나 일부 잘못 표현된 부분에 대한 지적은 애써 뒤로 미루는 것도 바뀌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녀박물관의 위치는 보다 견고해져야 한다.

해녀박물관은 장기적으로 정적인 전시 관람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역과 함께하는 생태박물관(ECO MUSEUM)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사이버 뮤지엄 활성화나 전승보전·교육 프로그램 확대, 현대·국제적 감각의 제주 민속 재해석, 일본 등 지역 연계를 통한 국제적 명품 박물관 조성 등의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문제는 ‘누가’, 또 ‘어떻게’에 있다. 제주도정의 ‘잠녀 문화의 세계화’공약으로 기대감은 크지만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축제에 무게감을 싣기 위한 조직 개편이 추진된 만큼 앞으로의 ‘변화’는 분명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박제화한 공간이 아니라 아직 살아있고,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문화의 중심으로 해녀박물관을 견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함천보 제주해녀박물관장은 "제주에서 잠녀의 역할과 그 문화가 갖는 독창성은 그것을 아카이브화해 가치를 입힐 때 빛이 난다"며 "해녀박물관 역시 단순한 인프라가 아니라 제주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