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걷는 오름 나그네] <2>다랑쉬오름

 

   
 
  ▲ 중산간동로에서 바라본 다랑쉬오름 남서면  
 

제주시서 37km…자동차 왕복포함 3시간 코스
사방이 탁트인 동북권 오름경관 감상의 명소

다랑쉬오름은 '오름의 여왕'으로 불린다. 오름나그네(1995) 저자 김종철 선생은 "비단 치마에 몸을 싼 여인처럼 우아한 몸맵시가 말쑥하다"며 "빼어난 균제미(均齊美)에 있어 구좌읍 일대에서 단연 여왕"이라고 칭송했다. 다랑쉬는 드물게 좌우 대칭인 원추형에다 분화구를 갖는 전형적인 제주 오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대표 오름'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특히 다랑쉬오름은 사방 시야가 탁 트인 주변 경관과 함께 '다랑쉬굴'의 비극도 함께 한 애틋함이 더해지면서 도민들이 가장 인상 깊어하고 보존하고픈 오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랑쉬오름은 서쪽 일부가 송당리에 걸쳐지지만 행정구역상 구좌읍 세화리(산6번지)다. 잘 정비된 도로망 덕분에 접근이 아주 용이하다. 제주시(종합운동장)에서 번영로와 비자림로·중산간동로에 이어 용눈이오름로를 거치면 37㎞다. 자동차로 다랑쉬오름 탐방로 입구 주차장까지 45분정도 걸린다.

오름이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한 1990년대초 이후 서쪽과 남쪽에 이어 패러글라이딩의 적지로 알려지면서 북쪽으로 오르는 길이 생겼으나 오름 오르기가 일반화되면서 자동차의 접근이 쉬운 동쪽에 타이어매트를 깐 새로운 탐방로가 개설됐다. 탐방로 입구에서 정상입구까지는 600m 내외이나 오르막이어서 18분가량 소요된다.

거의 정동인 정상입구에선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지만 오르막이 가파르지 않은 시계방향, 즉 남쪽으로 도는 게 좋다. 정상부 탐방로를 따라 10여분 가면 남쪽 오름군들을 조망할 수 있는 쉼터가 있다.

   
 
  ▲ 다랑쉬 탐방로  
 

여기서 한 숨을 돌려 다시 시계방향으로 돌면 탐방로 입구를 출발한지 45분되는 시간에 최정상에 도착한다. 거의 정북인 정상은 표고 382.4여서 북쪽은 물론 남쪽의 오름군들도 조망할 수 있는 '명당'이다.

최정상을 지나 동쪽으로 진행되는 내리막길은 가파르지만 5분정도면 정상입구에 도달한다. 여기서 탐방로 입구까지 10여분, 출발한지 1시간이면 탐방을 마칠 수 있다. 이에 따라 다랑쉬오름은 제주시 기준으로 여유롭게 왕복 1시간씩 2시간에 오름 탐방 1시간 등 3시간이며 탐방할 수 있다.

다랑쉬오름은 원형에 가까운 오름으로 밑지름이 1013m에 오름 전체의 둘레는 3391m에 이른다. 표고는 382.4m이나 주변의 지형과 비교한 산 자체의 높이인 비고는 227m이며 분화구 정상을 중심으로 급한 경사면을 이루고 있다.

상정부에 크고 깊은 깔때기 모양의 분화구가 있는데 바깥 둘레가 1.5㎞이고 깊이는 115m로 한라산 백록담 깊이와 똑같다. 이 굼부리는 설문대할망이 흙을 한줌씩 집어 오름을 만들다 다랑쉬가 너무 도드라진 것 같아 주먹으로 탁 치는 바람에 생겼다는 얘기도 있다.

지질학적으로 다랑쉬오름의 생성시기는 신생대 4기로 추정된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은 "제주도의 오름 관련 연대측정이 제대로 된 것이 없지만 모양이 완벽하게 남아있어 수만년 전으로 보는게 좋다"며 "제주도 화산활동역사 5단계인 마지막 기생화산활동기인 수만년에 만들어진 대표작품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다랑쉬오름은 지중해 티레니아해(海)에 있는 스트롬볼리섬의 화산처럼 짧은 간격으로 작은 폭발을 주기적으로 일으키는 '스트롬볼리형 분출(Strombolian type)'로 만들어졌다. 하와이형 분출보다 폭발성이 크기 때문에 많은 화산쇄설물과 용암 덩어리가 화구에서 분출하는데, 이때 솟아오른 분석(Scoria·송이)이 쌓이면서 오름이 형성됐다.

형성시기가 상대적으로 최근의 것으로 침식이 안돼 원형이 잘 보전돼 있어 화산의 원지형을 잘 보존하고 있고, 화산 지형과 침식·풍화에 의한 변화 등을 연구하기 좋은 학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오름으로 평가된다.

다랑쉬오름의 식생은 크게 2차초지대, 침엽수림, 관목림 및 인공림 등으로 구분된다. 이는 과거 지속적인 화입이나 방목 및 조림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은 결과로 보인다. 북쪽 사면이 보다 높은 비대칭의 분화구의 모양과 115m에 달하는 깊은 분화구 형태 등으로 인해 주변의 오름과는 차별되는 식물상을 보여준다.

오름의 하단부에는 삼나무와 편백나무 조림지가 있어 계절별로 색다른 경관을 만들어 주고 있으며 표고가 높아짐에 따라 점차 해송림과 2차초지대 식생으로 이어진다.

오름 상부와 화구내부의 2차초지대에는 참억새를 우점종으로 오이풀·솔나물·미역취·나도고사리삼·낭아초·딱지꽃·엉겅퀴·띠·골등골나물 등이, 해송림과 주변 관목림지역에는 해송과 소사나무를 비롯해 국수나무·예덕나무·쥐똥나무·상산나무·새끼노루귀 등 조림지에는 목본 10여종과 초본 20여종, 초지에는 목본 및 초본 각 7종과 28종 내외의 식생이 분포하고 있다·

지금은 출입을 제한되고 있는 분화구 안에는 2차초지대가 형성돼 있으며, 특히 남동사면을 중심으로 소사나무가 우점하는 관목림이 형성, 다른 오름과는 차별되는 식물분포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특산식물인 소사나무가 제주에서도 매우 드물게 큰 규모로 분포, 학술 및 식물자원적 가치가 매우 높은 자생지로 평가된다. 소사나무는 자작나무과의 낙엽 소교목으로 주로 바닷가를 따라 전남·충남·황해도까지 분포하는 한국특산식물로 산서나무로도 불리기도 한다.

다랑쉬오름은 효자 홍달한(洪達漢)의 얘기도 담고 있다. 정의현 고성리 출신인 홍달한은 효성이 지극했을 뿐만 아니라 1720년 숙종과 1724년 경종이 승하한 국상 때마다 삭망(朔望)에 다랑쉬오름 높은 곳에 제단을 마련, 분향하고 북향재배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그의 집안에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지금도 성산읍 고성리에서 수산리로 가는 길에 효자비가 세워져 있고, 그래서 그 지명을 '효자문거리'라고 한다.

이와함께 다랑쉬오름은 제주4·3사건의 비극적 사건인 '다랑쉬굴'의 집단 학살현장을 곁에 두고 있어 애틋함을 더한다. 사실상 다랑쉬굴은 다랑쉬오름의 끝자락에서 동남쪽으로 직선거리로만도 700m이상 떨어져 있어 오름의 세력권에 넣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다랑쉬'라는 공통분모로 하나로 여겨진다.

다랑쉬로로 들어서 3.8㎞ 들어가다 오른쪽으로 700여m 가면 나오는 다랑쉬굴은 4·3학살의 단면을 세상에 일깨워 준 아픔의 현장이다. 지난 1992년 공개될 당시 겨우 기어서 들어갈 수 있는 10평 남짓한 동굴 속에서 여성 3명과 어린이 1명을 포함한 11구의 유골들이 확인됐다. 구좌읍 종달리와 하도리 피난민들이었고 이미 수습해 간 희생자까지 합하면 다랑쉬굴 희생자는 최소 22명에 이르렀다.

김종철 선생의 '오름나그네' 이후 식생의 큰 변화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해송들이 점유하는 면적이 늘어나면서 당초 초지로 구성, 밝았던 오름의 외관이 나무로 뒤덮이면서 어둡게 색깔이 변하고 있어 '오름의 색' 관리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다랑쉬오름은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가을이 제격이라고 한다. 김창집 탐라문화보존회장은 "억새가 피어나 오름을 온통 뒤덮고 대표적인 가을 들꽃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며 "솔체꽃·잔대·산부추·절굿대·수리취·며느리밥풀·여로 등 많은 가을 들꽃을 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자랑이다.

다랑쉬오름은 정상에선 사방이 탁 트여있고 위치도 좋아 한라산과 동부지역 오름군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능선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오름이다. 알맞은 거리에 일출봉과 해안선을 볼 수 있어 셔터만 누르면 좋은 사진이 나오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수많은 오름의 곡선 너머로 지는 해넘이를 즐기다 다시 고개를 돌려 성산일출봉 너머로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는 '추석날'의 낭만은 오름마니아들의 특권이다. 김철웅 기자

◇기획 ‘다시 걷는 오름나그네’전문가 자문단
▲인문=김창집 탐라문화보존회장·소설가 ▲역사=박찬식 역사학자·문학박사 ▲지질=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이학박사 ▲식생=김대신 한라산연구소 녹지연구사 ▲정책=김양보 제주특별자치도WCC총괄팀장

"다랑쉬 분석구의 대표
침식 적어 전형 유지"

●인터뷰/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

   
 
  ▲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  
 
"다랑쉬는 아주 좋은 오름이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은 다랑쉬오름을 도내 화산체 중에 원형이 잘 보전된 대표적인 것으로 평가했다.

강 소장은 "오름이라는 것은 분석을 분출해서 소복이 쌓여있는 것이고, 정상에는 송이(분석)를 분출한 분화구가 있을 뿐"이라며 "원추형의 모습이 오름 본래의 모습인데, 다랑쉬는 그러한 모습의 '오리지널'이고 다른 형태의 오름들은 변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무암이 흘러 만들어진 화산 평원에 삼각형이 하나 솟은 게 오름이다. 원추형에 안식각 30도를 갖고 평지에서 꺾여 올라가는 부분이 중요한데 다랑쉬는 침식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지형을 전형적으로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강 소장은 이제 오름을 껍데기만 보지 말고 내용을 알고 제대로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이든 지질공원이든 세계7대자연경관이든 기본적인 테마는 화산"이라며 "화산중에 어떠한 자원이냐 했을 때 실은 한라산이 아니고 오름"이라고 밝혔다.

강 소장은 "한라산이 포함되긴 했지만 오름이 제주도를 잘 대표하는 화산자원이자 대표선수, 트레이드마크이자 얼굴인데 오름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름을 트레킹이나 하고 단지 절대보전지구로 지정, '환경섬'같이 고립시켜서 주변 초원지대엔 골프장이 들어서고 있는 실정"이라며 "외국 사람들이 볼 때 화산의 대표주자인 오름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강 소장은 이어 "실제로 유네스코 지질공원에 오름군락은 없다. 다랑쉬 주변 오름들을 오름공원으로 지정하면 얼마나 좋겠냐"며 "외국인들이 제주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세화·송당온천지구도 좋지만 오름이 중심이 되는 관광개발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강 소장은 "국제기구의 오름 보전과 활용의 기본틀은 유산 자체 보존과 교육"이라며 "그 교육은 학교 교육이 아니라 지역민들이 오름을 잘 알고 관광객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도내엔 오름들이 언제·어떻게 나왔는지 등에 대한 자료가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김철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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