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잠녀] 제4부 ‘잠녀, 지키다’ <172> 한수풀 해녀학교

   
 
  한수풀 해녀 학교 실습장에 있는 해녀상  
 
2008년 1기 시작해 2010년까지 수료생 100여명 배출…해외 관심 높아
'젊은'잠녀 수혈보다는 진정성 갖춘 '알림이' 양성, 잠녀문화 보존에 무게

걸음마를 떼고 부터는 저절로 바다로 발이 향했다. 누가 '일부러'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어느 샌가 물을 차고 바닷속을 헤집는 일이 익숙해진다. 묵직해진 망사리에 힘들었던 작업에 대한 기억은 저만치 사라지고 없다. 다시 눈을 뜨면 바다를 향하고 힘겨운 걸음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가족이 편안해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해녀 실습 전문학교 등장

   
 
  한수풀 해녀 학교  
 
제주잠녀의 물질 기술은 사실 크게 알려진 것이 없다. 저마다 주어진 능력에 맞춰 적당한 바다밭을 뒤져 '물건'을 얻는다. 자연이 내준 만큼만 더 이상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제대로 얻기 위해 바다를 가꾸고 변화를 살피는 것은 당연한 일과다. 큰 눈이며 작은 눈, 빗창 등도 자신이 편한대로 선택한다. 몇 발이나 물속을 차내려 가야하는지 어느 여에 물건이 많은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말 그대로 딸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른다.

그렇게 시나브로 대물림을 해오던 잠녀는 이제 '맥'을 걱정할 수준이 됐다.

1970년대만 해도 1만4000여명이었던 제주잠녀는 이제 4995명(제주도·2010년 말 기준)으로 눈에 띄게 줄었다. 10명 중 8명(78.4%)은 환갑을 넘겼을 만큼 세월을 이기지 못하면서 앞으로 10년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책이나 자료 등이 아니면 제주잠녀를 찾아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하나 선뜻 용기를 내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07년 한수풀해녀학교 개교는 이런 분위기에 '심상치 않은'파문을 던졌다.

자치단체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한 일을 현실화한 것은 제주시 한림읍 주민자치위원회였다. 보수 하나 없는 교장직을 맡은 사람은 한림읍 귀덕2리 어촌계장인 임명호씨(54)다.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해녀 실습 전문학교에는 칠판이며 책상 같은 일상적인 교실 풍경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근엄한 표정의 교사는 더더욱 없다. 평생 바다와 함께 해온 잠녀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직접 잠수기술을 가르친다. 매뉴얼은 없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절대 바다를 거스르면 안 된다"는 진리다.

   
 
  한수풀 해녀학교 수업 장면  
 

#물질을 배운 진정한 홍보대사

   
 
  임명호 교장  
 
처음에는 물이 무서워 뒤로 물러서던 교육생도 적잖았다. 매주 토요일 2시간씩 18주의 교육 과정을 3분의 2 이상 소화해야만 수료증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2008년 34명·2009년 34명·2010년 36명 등 1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깊게 호흡을 하고 물숨을 참는 법, 테왁을 가슴으로 짚고 헤엄치는 법, 물속에서 물건을 찾는 요령 등 하나부터 열까지 '낯선 것 투성이'지만 하고 싶다는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4월은 돼야 교육생 모집을 시작하지만 임 교장의 휴대전화에는 이미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해녀학교를 수료한다고 모두 정식 '잠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에는 어촌계에 들어가 물질을 하는 수료생도 있지만 많은 경우 '수료증'과 물질을 했다는 기억을 소중히 챙기고 있다.

임 교장의 생각 역시 분명하다. 임 교장은 "직접 물질을 배우면서까지 학교를 지키는 이유는 고령화로 줄어드는 잠녀의 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잠녀와 잠녀 문화를 지키고 보전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금이야 그저 바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로 비춰지겠지만 해녀학교를 거쳐간 사람들을 통해 잠녀와 잠녀 문화가 알려지다 보면 보존해야할 이유가 생기게 된다"고 강조했다.

귀덕2리 30여명의 잠녀가 조를 짜서 강사로 나서는 이유도 이런 임 교장의 생각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수료생 중에는 잠녀문화 보존의 당위성과 잠녀의 가치를 알리는 모임도 구성됐다.

#잠녀 제대로 지킬 방법 찾아야

"그냥 입으로 잠녀를 떠들어대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배운 사람들이 제대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것이 임 교장의 교육 방침이다.

이런 노력들에도 행정의 관심은 소극적이기만 하다. 벌써 3기 졸업생을 배출했지만 변변한 안내자료 하나 협조 받지 못했다. 다행히 2010년부터 지역특성화사업 일환 2000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고무옷이며 비품, 강사료 등을 지급했다. 올해는 그 예산이 1500만원으로 줄었다.

임 교장은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잠녀가 관광자원으로만 활용되다보니 보여지는데 치중되면서 변변히 평가받지 못해왔지만 이번 해양수산국에서 관리를 맡으면서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임 교장은 "잠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할 수 있는 별도의 기구가 있다면 더 좋겠지만 이 정도도 많이 달라진 것"이라며 "어떤 변화가 있을지 지켜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실 지역특성화사업으로 지원받은 만큼 올해 해양수산국에서 해녀학교를 지원할 방법은 없는 상태다.

별 다른 홍보를 하지 않아도 일본이며 싱가포르 등 외국에서 더 관심을 갖고 조명해준 덕택에 올해도 교육생을 선발하기 위해 적잖이 고민을 해야할 판이다.

임 교장은 "교육생이며 수료생들이 진정한 잠녀 홍보대사"라며 "이들을 통해 잠녀를 제대로 알리는 것 역시 잠녀와 잠녀문화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특별취재반=김대생 교육체육부장·고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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