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계엄령의 불법여부와 관련한 법정다툼이 원고 승소의 일심 재판과는 다른 판결이 나와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엊그제 이승만 전대통령의 양자 이모씨가 일간지 한겨레를 상대로 한 기사정정보도 청구 등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그것이다.

  사건과 관련,서울고법 담당 재판부는 4·3계엄령이 불법한 것이 아니라는 원고 이씨의 청구 부분에 대해 이유 없다고 받아 들이지 않았다.관심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재판부는 4·3계엄령의 적법성 여부와 관련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첫째,일제시대 사용하던 계엄령이 당시에도 유효했는가에 대해서는 고도의 법률적 판단을 요하는 것으로 학자들 사이에도 논란이 있다.그리고 문제의 계엄령이 유효하게 존속하고 있었는지 여부는 제헌헌법 및 관계법령의 해석문제다.그렇기 때문에 헌법과 법률의 정신에 관한 가치판단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역사적 사실에 대한 가치판단을 전제로 한 의견 표명에 대해 정정보도를 구하는 원고의 주장은 이유가 없다...

  이상과 같은 재판부의 판단들은 일단 원고측이 주장한 계엄령의 불법여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유보한 것으로 해석이 된다.우리는 이같은 판결이 있기까지 재판부의 고뇌가 각별했음을 이해한다.반세기 전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그것도 국가 최고 통치권자의 행위에 대해 불법성 여부를 가리는 것이 결코 예삿일은 아니다.시공을 크게 넘나든 판결이 결과 여하에 따라서는 법적 안정성을 해칠 것이란 우려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그럼에도 우리는 4·3계엄령의 불법성 여부와 관련해서는 사법부 판단에 각별한 기대를 가져 왔다.4·3계엄령이 엉뚱하게도 반세기전 이땅에서 저질러진 반인륜적 집단학살의 법적 근거로 비쳐 졌기 때문이었다.수만명의 죽음을 초래한 초법적이며,불법적인 계엄의 실체에 대한 법적 판단은 과연 어떨 것인가가 관심의 초점이었음은 물론이다.하지만 재판부는 이부분과 관련해서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은 당연히 존중되야 한다.같은 맥락에서 서울고법의 이번 판결을 우리는 존중한다.하지만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실체적 진실에 접근해 있다고 생각되는 4·3의 불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것은 유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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