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말로 된 생각들을 시각적인 공간에 배치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작가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도구를 사용해 왔다. 깃촉 펜과 양피지로 글을 썼던 시대는 과거다. 인쇄기, 타자기를 거쳐 컴퓨터가 글쓰기 도구로 대중화 됐다. 디지털 기기 덕분에 작가들의 퇴고가 간편해 졌다. 퇴고는 원고를 수정·보완해 고치는 작업이다.
미국의 소설가로 19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간결한 문장이 일품이다. 헤밍웨이는 소설은 도입부보다는 결말이 더 인상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무기여 잘 있거라」의 마지막을 한 페이지 남기고 여자 주인공인 간호사 캐서린 바클리가 죽는다. 헤밍웨이의 역작으로 평가받는 「노인과 바다」의 결말은 상어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머리만 남은 고기와 함께 평온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헤밍웨이는 일단 소설의 초고를 완성한 후 처음으로 돌아가 고쳐 썼다. 거의 모든 페이지의 내용을 수정, 정확한 단어로 바꾸어 놓는 고쳐 쓰기 과정을 거쳤다. 이를 통해 이야기 구조를 탄탄하게 다듬어 결말을 더욱 돋보이도록 수정,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줬다.
영국의 소설가 D.H.로렌스는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으로 20세기 가장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인물이다. 채털리 부인과 사냥터 지기의 성적인 관계를 세밀하게 묘사해 이들의 흥분과 황홀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단어들을 사용해 당시 미국과 영국을 논란에 휩싸이게 했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세가지 판본으로 출판됐다. 로렌스는 원고의 수정을 거듭했다. 로렌스의 수정 작업은 다른 작가와 달리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썼다. 이야기를 완전히 다시 쓰기도 했다고 한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사냥터 지기와 채털리 부인이 사랑에 빠진 동기가 판본마다 다르다고 평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서울의 예수」 등의 시집을 낸 시인 정호승은 최근 제주를 찾아 연 문학 강연에서 자신의 시창작법을 공개했다. 정호승은 종이에 시를 써오다 디지털 기기인 컴퓨터로 시를 쓴다. 시를 써 이를 프린터한 후 제목만 남겨 놓고 지운 후 고쳐 쓰기를 15~30 차례 반복해 시를 완성한다. 디지털 기기는 작가들의 퇴고 과정을 변화시키고 있다. 디지털 세상이다. 장공남 편집부 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