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은자의 '예술작품 기행'] 19. 박정민의 ‘청보리 축제’
섬의 시간, 성숙하기 이전의 원초적 본능 일깨우는 수행의 시간
자연 안에서 인간과 만물이 사랑으로 교감하는 화평한 세계 꿈꿔
서정적인 아름다움
미(美)에 관한 논의는 역사 이래 줄곧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미란 어떤 논의를 거쳐 합의에 이를 사항은 아니다. 미의 문제는 개별성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확장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에 관한 개인적인 담론들이 무성하다. 개별적으로 미를 인식하고, 미에 대한 감성과 이성의 작용들이 그만큼 다양하다는 말이다. 화가의 미학적 시선 역시 화가 자신의 인생 경험의 총체로서 작용하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의식의 결과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개인은 사회적으로 교감하는 사회적 인간이다. 화가 또한 사회적 예술가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 화가 자신이 느낀 아름다움이 다시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개인의 미학이 사회와 교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그림은 논리적인 차원의 인식 이전에 형상을 통해 세계를 보는 방식의 예술이다. 그림을 보는 방식 역시 논리적인 방법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정서적인 문제를 논리적으로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정(抒情)의 사전적 의미는 '주로 예술 작품에서, 자기가 느끼거나 겪은 감정이나 정서를 나타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서정이란 주관적으로 생각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의 주관적 힘은 상상력의 기초가 돼 창의적인 예술을 만들어낸다.

박정민은 2011년 한 해 동안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작가였다. 그는 화려한 색채를 구사하는 작가다. 서울 출생인 박정민은 동국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93년 첫 개인전(관훈미술관)을 시작으로 단성갤러리(1994), 가나아트 스페이스 등 모두 7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MANIF "거기 꽃이 있었네(예술의 전당)",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서(갤러리 상)"등 다수의 단체전에도 참가하였다.

박정민이 주로 다루는 주제는 '사랑'이다. 그의 그림에서 사랑은 모든 생명의 '불씨'가 되어 따뜻하고 행복한 세상을 일구어 낸다. 그는 자연 안에서 인간과 만물이 사랑으로 교감하는 화평한 세계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봄바람처럼 유연하고 훈훈하다. 여름의 태양처럼 뜨겁고, 가을의 하늘처럼 고고하다. 겨울의 눈송이처럼 포근하다.
박정민에게는 또 다른 섬의 시간이 있었다. 홀로 섬을 거닐면서 바다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섬의 고독한 노을과 한라산의 그늘도 보았을 것이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목을 길게 늘인 말, 노란 감귤나무, 분홍 빛 작은 섬, 하얀 포말의 폭포 등이 연민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 안에 그려 넣은 그의 섬의 시간의 흔적 때문이리라.

색채를 살리기 위해서 형태를 단순화하는 것은 색면 그림과 유사한 발상이다. 면을 색으로 분할하게 되면 색과 색의 조화가 생명인데, 아무리 고운 색이라도 색의 배치를 잘못하게 되면 화면은 촌스럽게 된다. 박정민의 색의 비밀은 바로 단순한 형태에 더해지는 색의 배열에 있다. 넓은 면 속에 다시 작은 면으로 분할되는 색들은 아기자기하게 누빈 한국의 전통 보자기를 연상시킨다. 나뭇잎이나 나뭇가지, 파도, 구름, 사람, 동물, 꽃 등 작은 면들은 단순한 구조를 이룸으로써 색 자체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박정민의 그림 가운데 <청보리 축제>란 작품이 있다. 여기에서 청보리는 가파도 보리를 말한다. 제주의 작은 부속섬 가파도는 사방이 짙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녹색의 보리는 바다와 시각적으로 혼합되어 더욱 푸르게 보인다. 실제로 가파도 사람들은 봄에 '청보리 축제'라는 이름으로 마을의 잔치를 열고 있다.
그러나 <청보리 축제>라는 작품에서 박정민의 시선은 청록색 물결의 보리들에 닿아 있다. 이 그림에서 축제를 벌이는 주체는 사람이라기보다 청보리에 있다. 청보리들이 바람의 결을 타며 축제를 벌이는 동안 관객은 달랑 두 명. 양산 쓴 소녀와 강아지 한 마리가 관객의 전부다. 멀리 새가 지나가고 바다 넘어 송악산이 보인다. 그 너머에 산방산은 우직한 청년처럼 서 있다. 박쥐 모양의 단산은 침묵을 지킨다.
왜 박정민은 단조로운 구도와 녹색 주조(主調)의 가파도 보리밭을 <청보리 축제>라는 이름으로 지었을까.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바람, 바다의 내음, 산의 묵시,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 두런거리는 수풀, 작은 정자, 기웃거리는 물결이 모두 청보리와 하모니를 이루며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소녀와 강아지는 그 축제를 느끼고 있다. 그 소녀는 어쩌면 박정민 자신이 돼 자연을 관조하면서 축제에 참여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사람에게는 그리워 할 대상이 있는 것만큼 소중한 것이 없을 것이고, 기다릴 것이 있는 것만큼 사랑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박정민의 가파도 <청보리 축제>는 바라 볼 수 있고, 그리워 할 수 있고, 기다릴 수 있는 섬의 시간과 공간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자연이 벌이는 축제, 그 속에서는 인간마저 축제의 구성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특별연구원


